왕의 남자들 ‘대선까지 함께’ 찡긋?
▲ 9월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한나라당 최고, 중진의원 초청 조찬간담회에서 이명박대통령이 정몽준 대표와 이야기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새내기’ 정 대표는 지난 9월 8일 당의 수장에 취임하자마자 대선 후보급의 타이트한 스케줄을 소화해 일단 여론의 주목을 받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당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저평가된 정 대표의 진가를 알아보고 더 많은 기회를 주려고 한다”는 이야기가 퍼지면서 그를 보는 눈들이 새삼 달라지고 있다.
특히 친이그룹 일각에서는 인사청문회에서 생채기가 많이 난 정운찬 총리에 대한 기대를 일찌감치 접고 정몽준 대표에 대한 ‘재발견’에 적극 나서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향후 이원정부제로의 개헌을 전제로 ‘정몽준 대통령-이재오 총리 밀약설’ 시나리오까지 나오고 있다. 집권 2기를 맞은 이명박 대통령이 대권 구도 세팅을 끝내면서 더욱 부각되고 있는 ‘정몽준-이재오 신 밀약설’의 이면을 따라가 봤다.
정몽준 대표는 한나라당에서 “‘굴러온 돌’에 ‘귀족 이미지’까지 겹쳐 대권주자로서 낙제점에 가깝다”는 평가를 자주 들었다.
그런 그를 두고 요즘 당내에서는 ‘정몽준 디스카운트’라는 말이 유행한다고 한다. 이는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기업 가치에 비해 주가가 저평가되어 있음을 나타내는 말)에 빗댄 말로 정몽준 대표의 정치적 가치가 그동안 저평가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9월 8일 박희태 전 대표의 ‘대타’로 새롭게 타석에 선 정 대표는 취임식 직후부터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는 정치입문 20여 년 만에 맞은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본인의 ‘작심’이 작용하고 있다는 게 참모들의 전언이다.
그는 대표 취임식 직후 첫 행보로 서울 노량진수산시장을 찾은 이후 거의 대선 후보와 맞먹는 살인적 스케줄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다.
한 참모는 이에 대해 “대표 본인이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인다. 국정감사(10월 5~24일) 전에 각계각층의 여론을 청취하고 동시에 당을 조기에 안정화시키려는 정 대표의 의중이 담겨 있다”라고 말했다.
이런 정 대표의 쾌속 행보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도 “최근 들어 당이 젊어진 것 같다”라며 그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있다.
당 안팎에서도 “정 대표가 소리 소문 없이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 나가는 모습에 신뢰가 간다”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전임 박희태 대표에 비해 젊어진 당의 얼굴 역할에 여론도 긍정적이다.
하지만 정 대표의 ‘정몽준 디스카운트’ 탈출은 본인의 자구책에서 기인됐다기보다 그를 둘러싼 대외 환경이 호전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평가가 더 설득력을 얻는다.
우선 이명박 대통령과 여권 핵심부의 절대적 지원을 들 수 있다. 그는 박희태 전 대표가 취임 뒤 한 달이 넘어서야 청와대에 들어간 것과는 대조적으로 취임 다음날 바로 이 대통령과 독대를 했다.
또한 여권 실세인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등도 그에게는 든든한 우군이 되고 있다. 최 위원장은 그가 지난 2007년 입당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당시 최 위원장은 정 대표에게 “보수-진보 세력이 극단적으로 충돌할 때는 무소속으로 장외에 남아 있는 게 낫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보수층이 집권해 향후 15년 동안은 계속 집권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정 의원 같은 사람도 한나라당에 들어와 역할을 해야 한다”라고 설득했다는 후문이다.
이런 양측의 ‘교감’이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가 정몽준 의원과 차기 대권을 밀약했다”라는 얘기로까지 확대 재생산될 만큼 두 사람의 관계는 긴밀했다.
그리고 그 관계가 이 대통령의 ‘정몽준 밀어주기’에서 나타나듯 정 대표가 여당의 수장에 오른 뒤에도 계속되고 있다는 게 주변의 시각이다.
여권 내부의 도움에다 외적 환경도 정 대표에게 우호적이다. 먼저 이 대통령의 지지율 고공 행진이 정 대표 체제 안착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또한 여권 내 최대 실세인 이재오 전 최고위원이 최근 국민권익위원장에 임명되면서 정 대표 체제의 앞날을 좌지우지할 가능성이 컸던 장애물 하나가 제거된 셈이 됐다.
이 위원장의 행정부 입성으로 친이그룹의 내년 2월 조기전당대회 주장이 쑥 들어갔고, 정 대표는 내년 7월까지 안정적 당 운영을 보장받게 된 것이다.
정운찬 총리가 인사청문회에서 상처를 입은 점도 정 대표에게는 상대적 반사이익을 가져다주고 있다.
“외부 영입 인사의 최대 강점이 깨끗한 이미지와 도덕성인데 그것이 무너졌으니 차라리 기존 정치인이 낫다”라는 공감대가 당내에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10월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이 선전하게 되면(현재 여론조사 상 한나라당 3곳 우세, 민주당 2곳 우세) 정 대표는 내년 7월까지 확실하게 임기를 보장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 이명박 대통령은 9월 30일 청와대에서 신임국무위원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이재오 국가권익위원장이 임명장을 수여받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특히 이 대목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의 CEO적 인재 발굴 효과도 빼놓을 수 없다. 이 대통령은 사석에서 종종 “지난 2007년 정 대표를 ‘영입’해놓고 지금까지 그가 일정한 역할을 하지 못해 아쉬운 점이 많다”라는 말을 측근들에게 했다고 한다. 이는 이 대통령의 인재 기용 철학과 맞물린다.
이 대통령은 기업 CEO 출신답게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해 그 사람이 자신의 능력을 100% -아니면 그 이상의 능력도- 발휘하게 하는 데 천부적인 기질을 가졌다는 게 참모들의 전언이다. 그래서 그들을 모두 쉴 새 없이 경쟁체제로 몰아넣어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정 대표의 국제적 외교 인맥과 그 경험을 높이 평가하고 있고, 어떻게 해서든 그 능력을 발휘하도록 해야 한다고 믿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사실 정 대표는 이재오 권익위원장이 1년 동안 수학했던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당내 최대 ‘미국통’이다. 이명박 정권 인수위원회 시절에는 대미 특사단장으로 미국을 다녀오기도 했다. 정 대표가 역대 대권 주자들과는 확실하게 차별화되는 ‘글로벌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그래서 친이그룹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정 대표의 글로벌 이미지의 장점을 차기 대권 구도와 연결시키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연장선상에서 보면 대통령-총리의 이원정부제 개헌을 전제로 ‘정몽준 외교 대통령-이재오 내치 총리’라는 페어(조)가 환상의 드림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친이그룹 의원들과 교감이 깊은 여권 인사 A 씨는 이에 대해 “그동안 정 대표는 입당 뒤 ‘김문수 카드 등이 소멸하면 자연히 친이그룹이 나를 원하게 될 것’이라며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래서 우리 측에서는 정 대표의 고자세가 못마땅했던 것도 사실이다.
오죽했으면 ‘적어도 우리 계파 가운데 몇 명에게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협조 요청을 했어야 하는데 전혀 그러지 않아 저 사람 도대체 대권에 도전할 의사는 있는가’라고 의심하는 의원들도 있을 정도였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 대표는 자신에게 찾아온 여당 대표라는 기회를 맞아 친이그룹과의 적극적인 연대추진 쪽으로 돌아서고 있고 친이그룹도 호응도를 서서히 높여가고 있다.
최근 기자가 접촉한 친이그룹 의원들의 정 대표에 대한 반응은 불과 몇 달 전에 비해 상당히 달라졌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청와대의 힘이 정 대표에게 실리면서 자연스레 형성된 결과일 수 있다.
또한 정 대표가 주말마다 꾸준히 골프모임을 하면서 의원들과의 스킨십을 넓혀나가는 점도 한몫하고 있다. 이런 교감은 결국 친이그룹이 그를 이원정부제 개헌을 전제로 한 ‘러닝메이트’로 삼을 아이디어로까지 발전되고 있다.
그리고 그 징후의 하나가 이재오 전 최고의 국민권익위원장 입성이다.
친이그룹의 한 핵심 전략가는 이에 대해 “이 위원장이 재보선 출마에 실패하면서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뗀 것도 사실이다. 어떤 사람들은 내년 7월 전당대회까지 잠시 의탁할 곳을 마련했다는, ‘임시정거장’ 얘기도 있다.
하지만 (이원정부제 개헌을 전제로) 차기 ‘총리’를 꿈꾸는 그가 이번에 행정부에 입성해 관료 경험을 쌓는 것도 미래의 정치지형 급변을 대비한다는 측면에서 충분히 고려했던 사항인 것으로 안다.
정 대표와 15대 국회 때부터 인연을 맺은 이 위원장으로서는 정 대표의 잠재력을 이명박 대통령 이상으로 평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라고 말했다.
차기 대선에서 ‘정몽준-이재오’의 러닝메이트 가능성은 지난 2008년 열렸던 전당대회 결과를 보면 어느 정도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30%가 반영되는 일반 국민 여론조사에서 정 대표는 46.77%(환산 득표수 2896표)를 얻어 박희태 전 대표(30.13%, 환산 득표수 1865표)를 1000표 넘게 따돌렸다.
하지만 대의원 투표에서 정 대표는 박 전 대표보다 1873표 뒤진 2391표를 얻는 데 그쳤다. 당시 박희태 전 대표를 밀었던 친이그룹의 표가 모두 정 대표에게로 포개질 경우 ‘정몽준-이재오’ 조합은 여권의 대권 구도를 뒤흔들 돌풍으로 작용할 게 틀림없다.
그리고 그 돌풍의 일단은 지난 7월 23일 서울시당위원장 선거 때 드러나기도 했다. 당시 정 대표와 가까운 전여옥 의원을 이재오 전 최고 쪽이 지원하는 대신, 박근혜계가 반대하는 9월 전당대회를 성사시키기 위해 정 대표가 박희태 전 대표 등 다른 최고위원들의 사퇴를 압박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른바 ‘이재오-정몽준 밀약설’이 그것이다. 결과적으로 전여옥 의원이 경쟁자인 권영세 의원한테 지는 바람에 9월 전당대회를 통한 이재오 위원장의 복귀는 물거품이 됐지만 양측 사이에 일어난 최초의 ‘반박연대’였다는 점에서 향후 이들의 행보가 주목된다.
또한 정 대표는 친이 직계인 조해진 의원을 대변인에, 이재오계인 정양석 의원을 비서실장에 앉혀 향후의 ‘연대’에 대한 자락을 깔아두고 있다.
사실 ‘정몽준 디스카운트’는 정 대표의 뼈를 깎는 자기 변신의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불임세력으로 내몰리고 있는 친이그룹의 차기 대권 만들기 프로젝트의 연장선상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그 경쟁력은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굴러들어온 돌’인 정 대표에 대한 친이그룹 의원들의 본능적인 거부감도 여전히 읽힌다. 그럼에도 호기를 맞은 정 대표가 자신의 잠재력에 대해 저평가된 부분을 국민들에게 일깨우기 시작한다면 친이그룹의 새로운 권력 재창출 프로젝트도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