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체 없는 ‘제주 복합환승센터 사업’ 속아서 투자…투자 권유한 다른 강사들에 사기혐의 피소
국어 1타강사로 유명한 정지웅 씨가 사기 혐의로 피소됐고 경찰에서 기소의견으로 검찰로 송치했다. 정 씨는 이 아무개 씨를 고소한 상태다. 사진=정지웅 제공
2015년 정지웅 씨는 고등학교 후배 소개로 이 씨를 만나게 된다. 이 씨는 ‘제주도에 복합환승센터를 짓는 사업을 한다’면서 투자를 권유한다. 정 씨는 “이 씨가 이 건물은 2017년 인가가 나와 착공을 시작해 2019년에 완공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정 씨는 1억 5000만 원을 투자했고, 지분 관계에 따라 복합환승센터 사업을 진행하는 M 회사 지분 2%를 받는다.
이 씨는 2016년 지하 3층, 지상 4층, 6만 7000㎡(약 2만 평) 규모 제주도 복합환승센터를 짓고 이곳에 렌터카 회사를 입점시키겠다는 청사진을 보여줬다고 한다. 2019년 3월 이 씨는 이 회사 가치를 ‘오늘 3000억 원에 팔라고 했는데 거절했다’고 말했을 정도로 전도유망한 회사로 포장했다. 그 대표적 이유가 ‘최초 제안자’ 지위였다.
정 씨는 “이 씨는 제주도에서 렌터카를 빌리거나 반납하는 사람들이 모두 이곳을 들르기 때문에 유동인구가 많아 유명 식음료 업체와 백화점급 명품관, 면세점도 입점시켜 큰 수익을 거둘 수 있다고 설명했다”면서 “특히 이 씨는 ‘이 사업은 내가 운영하는 M 회사가 최초 제안했기 때문에 국토교통부에서 ‘최초 제안자’ 지위를 획득했고 이 지위 때문에 복합환승센터 사업은 M 회사에서만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고 말했다.
인가가 날 것으로 예상됐던 2017년이 됐지만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다만 투자자가 한 명 더 추가된다. 갑자기 이 씨는 정 씨에게 “주변에 투자할 만한 사람 없느냐”고 물었고 정 씨는 유명 입시컨설턴트 A 씨를 소개한다. A 씨도 총 1억 5000만 원을 투자하게 된다. 2017년 중순 이 씨가 ‘제주도 부지가 선정됐다’고 말해 이들은 곧 사업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 씨는 정 씨에게 여러 명의 투자자를 모은 공로를 인정한다며 계약서를 새로 쓰자고 했다. 기존 지분 2%를 6%로 바꿔 계약서를 체결하기로 했다. 이때쯤 정 씨는 이 씨와 집안 식구끼리 만날 정도로 신뢰가 쌓였다고 한다. 정 씨는 계약을 할 때 계약서를 제대로 보지 않고 서명을 했다. 그런데 이때 계약서 내용을 보면 복합환승센터는 노외주차장(토지 위에 조성된 주차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민형사상 처벌을 하지 않겠다는 조항도 삽입됐다. 정 씨의 투자금이 이 씨의 생활비 및 경비로 쓰인다는 조항도 들어갔다.
사업은 진전이 없었다. 곧 난다던 인가는 계속 늧춰지기만 했다. 시간이 지나고 지난해 3월 18일 이 씨가 정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 씨가 제공한 녹취록에 따르면 이 씨는 ‘형님 큰일났다. 부지가 경매로 넘어갈 것 같다’고 말했다. 정 씨가 ‘그럼 어떡해?’라고 묻자 이 씨는 ‘폭망이죠’라고 답했다. 정 씨는 땅이 경매로 나온다면 최초 제안자 지위도, 사업도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 씨는 “하지만 우리는 더 좋아졌다. 안 그래도 땅 주인 때문에 힘들었는데 더 좋은 투자자인 수천억 원대 재산가 ‘채 회장’이 있다”고 했다. 이어 이 씨는 ‘제주시청과 이야기가 거의 다 됐다’고 말했다.
이 씨의 말과 달리 사업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2018년엔 하수종말처리장 문제로 인가가 나지 않았고 2019년엔 땅이 경매로 넘어가면서 인가가 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는 동안 사업 진행과 별개로 투자자들의 사이가 개인적인 감정 문제로 벌어져 갔다. 이로 인해 정 씨는 입시 컨설턴트 A 씨 지분을 다른 투자자에게 넘기도록 했다.
이때 이 씨는 계약서 양식을 바꾼다. 2019년 3월 A 씨 지분을 넘기는 주체를 정 씨로 해서 계약서를 쓰게 했다. A 씨 지분 일부는 정 씨 제자이자 학원강사인 B 씨, C 씨, 그리고 유명 학원 원장 D 씨 등에게 넘어갔다. 이때 계약서에서도 지분을 넘기고 돈을 받는 주체는 정 씨로 돼 있었다. 이 씨는 정 씨가 받은 돈을 빌려가는 구조를 만들었다. 이때는 몰랐지만 단순 투자자였던 정 씨는 이 계약서 때문에 사기 혐의를 받게 됐다. 반면 이 씨는 A 씨의 지분이 정리된 만큼의 책임을 덜게 됐다. 그렇게 새로운 투자자들이 합류한다.
이후 이 씨는 땅을 인수하려고 했던 조선소 하청업체 채 회장이 “잔챙이 지분은 정리하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정 씨에게 알려줬다. 정 씨는 “당시 곧 성공할 회사로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정리될 잔챙이 지분이 내가 되는 건 아닌지 두려웠다”고 설명했다. 2019년 11월 이 씨와의 연락이 끊겼다.
제주도에 복합환승센터를 짓는다는 사기에 학원가 여러 명이 투자를 하게 됐고 고소전에 이르게 된다. 사진=이 씨가 투자자에게 보여줬던 조감도
더군다나 2019년 12월 30일 학원강사 B·C 씨와 원장 D 씨 등이 정 씨를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정 씨는 사건 조사를 받기 위해 경찰서로 향했다. 그 자리에서 M 회사 사업이 사실상 실체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오히려 정 씨는 자신이 사기 업체 회사인 걸 알면서도 적극적으로 지분을 넘겼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정 씨는 그제야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변호사를 선임하고 이 씨를 고소했다.
사기범으로 몰린 정 씨에게 천만다행인 건 그동안 이 씨와의 대화 내용이 모두 녹취가 돼있었다는 점이다. 정 씨는 “수사기관에서도 ‘M 회사 믿음이 워낙 컸고 주변에도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다녔기 때문에 녹취가 없었다면 당신이 사기꾼인 줄 알았을 것 같다’는 말을 했다”고 수사 당시를 회상했다.
정 씨는 자신이 권유했던 투자자들 지분을 책임지기로 결심한다. 학원 원장 D 씨 투자 대금도 원금 1억 원에 이자 2000만 원을 계산해 1억 2000만 원으로 입금하면서 정리했다. 정 씨는 “결국 돈을 받은 사람이 누구고, 돈을 물어준 사람이 누군지 생각해보면 내가 사기를 쳤다는 게 말이 안되는 이야기란 걸 쉽게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씨는 수사기관에 “나는 노외주차장이라고 말했을 뿐 복합환승센터라고 한 적이 없다”고 말했지만 녹취록에는 복합환승센터라는 단어가 여러 번 등장했다. 2019년 이 씨는 “유명 식음료 업체 S 사 아무개 개발팀장이 입점하고 싶다고 했다. 주차장 관리 업체가 입점 의향서를 보냈다”고 말했지만 사실과 달랐다.
일요신문이 S 사에 문의한 결과 해당 이름으로 근무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주차장 관리 업체도 “2016년쯤 건물이 만들어진다는 가정하에 입점의향서를 보냈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 씨가 제공한 문서는 2019년 입점의향서로 시기가 맞지 않았다. 국토부에서 부여했다는 최초 제안자 지위도 실재하지 않았다. 또한 제주시청은 “(이 씨가 개발된다고 했던) 지번으로 개발 계획이 진행되거나 문의가 들어온 적이 없다”고 말했다.
M 회사 대표 조 아무개 씨에게 이 씨 관련 질문을 했지만 “사업은 이 씨가 진행하고 나는 틀을 짜줬을 뿐이다. 2018년 이후 따로 비용을 들이거나 일을 진행하지 않았다”면서 “자세한 일은 이 씨가 알고 있다. 나는 모른다”고 답했다.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이 씨는 관련 질문에 “답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현재 경찰은 이 씨를 사기 혐의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상태다. 이 씨가 정 씨를 무고 혐의로 고소한 사건은 9월 불기소 처분이 나왔다. 합의로 소를 취하한 D 씨를 제외하고 학원강사 B·C 씨가 정 씨를 고소한 사건은 경찰에서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정 씨는 “경찰이 편집된 녹취록 일부만 듣고 기소의견으로 송치한 것”이라며 “검찰 수사 단계에서 억울함을 풀겠다”고 답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