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구자극 LG상사 미주법인 회장 일가가 우회적인 방법으로 국내 코스닥 시장에 입성해 관심을 끌고 있다.
구자극 회장은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의 막내 동생이자, 구본무 그룹 회장의 삼촌이다. 그러나 구 회장은 구씨 집안의 직계이기는 하지만, 대부분 해외에서 경영활동을 해온 탓에 재계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베일 속의 인물. 그는 그룹에 입사한 직후 LG상사(당시 반도상사) 뉴욕지사에서 근무를 시작해 무려 20여 년 동안 국내가 아닌 미국지사에만 머물러 왔다.
구자경 명예회장의 형제들이 그간 LG전자, LG유통 등 그룹 계열사를 하나씩 맡아 경영해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의 행보는 다소 이색적이었다. 특별히 자기 몫을 챙기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런 그가 이번에 장남 본현씨와 함께 중소기업을 인수, 본격적으로 국내에서 사업을 벌일 예정이어서 관심을 끌고 있다.
이번에 그가 인수한 회사는 코스닥 등록업체인 ‘이림테크’라는 회사다. 최근 이림테크는 공시를 통해 구본현씨가 대주주로 있는 예림인터내셔널과 합병키로 했다고 밝혔다.
구본현씨는 지난 98년 사무자동화 가구업체인 예림인터내셔널이 부도를 맞자 회사를 인수, 그동안 경영을 해왔다.
코스닥 등록법인인 이림테크와 비상장회사인 예림인터내셔널이 합병하게 된 것. 방법은 이림테크의 최대주주인 이승배씨와 특수관계인 3명이 보유주식 2백만 주(30.3%)를 구자극 회장과 구본현씨에게 매각하는 형태다. 이 합병을 통해 구자극-본현 부자는 회사 지분 38% 가량을 보유하게 됐다.
겉으로 보면 코스닥 등록법인인 이림테크가 예림인터내셔널을 흡수 합병한 것으로 돼 있지만, 사실 그 속내를 보면 비등록회사인 예림이 상장회사를 역합병한 셈이다. 어쨌거나 구자극 회장 일가는 이번에 상장법인의 최대주주가 됨으로써 활동이 외부에 알려지게 됐다.
국내 재벌그룹 오너일가가 드러내놓고 중소기업을 인수한 것은 드문 케이스라는 게 업계 관계자의 시각.
업계 관계자는 “재벌 오너 중 드러내놓고 중소기업을 M&A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며 “재벌 오너 친인척이라는 허울보다는 유망한 중소기업을 경영해 실속을 챙기자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구자극 회장 일가가 ‘실속 찾기’에 나선 데에는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사실 이번에 합병한 이림테크와 예림은 사업영역에서는 딱히 겹치는 부분이 없다. 회사 관계자들 스스로도 “업종이 완전히 다른 회사끼리 합병한 케이스”라고 말할 정도다.
이림테크는 TV모니터 등 디스플레이에 들어가는 전자부품을 생산하는 업체고, 예림은 파티션 등 사무 인테리어를 주력으로 하는 업체다.
▲ 이림테크 건물. 임준선 기자 | ||
구 회장 일가가 인수한 이림테크는 지난 1991년 (주)이림무역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중소기업. TV모니터 등에 들어가는 디스플레이 전자부품 생산과 수영장 물 등을 최신 방법으로 살균처리하는 물처리 플랜트를 주력으로 하는 업체다.
이 회사는 지난해 말부터 정부에서 신성장산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RFID’(전자태그)라는 물품을 개발 중이다. 이 사업은 각종 물건에 찍힌 바코드의 업그레이드 형으로, 전자칩이 내장된 바코드.
이 회사 관계자에 따르면 향후 이 바코드가 상용화될 경우 기존 슈퍼마켓 등에서 일일이 물품 하나하나의 바코드를 찍어 계산했던 번거로움이 없어지고, 물건 전체를 한 곳에 담아 인식기가 있는 공간을 통과하면 한 번에 계산이 끝나게 된다고 한다. 물류, 유통의 획기적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이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림테크는 이처럼 신기술 분야 개발에 열을 올리는 등 그동안 내수 시장을 뚫기 위해 노력했으나,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는 처지였다고 한다. 이림테크 관계자는 “주력사업인 디스플레이어 부품사업의 경우, 기존의 삼성, LG 등 대기업이 이미 여러 협력업체를 보유하고 있어 납품 판로를 뚫기가 어려웠다”며 “그렇다 보니 생산제품 대부분을 해외에 수출하게 됐다”고 말했다.
기존 사업이 이런 처지다 보니 현재 추진중인 ‘전자칩 내장 바코드’의 향후 판로도 불투명한 상황.
바로 이때 합병을 제안한 사람이 구자극 회장 일가였다.
구 회장의 장남인 본현씨가 이끄는 예림인터내셔널은 사무실 인테리어 사업과 함께 첨단소재 공장에 필요한 청정실(클린룸) 설치사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구 회장 일가는 예림을 기반으로 신규 사업에 진출, LG그룹과 별도의 납품 비즈니스 그룹 건설에 욕심내고 있던 차였다. 결국 납품 판로가 절실했던 이림테크와 기술력을 앞세운 신규사업에 목을 매던 예림은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무사히 합병 절차를 마치게 됐다.
구자극 회장 일가의 본격적인 경영발판이 마련된 것이기도 하다.
합병 직후 구자극-본현 부자는 야심찬 행보를 보이고 있다. 오는 10월1일 이들 부자는 회사 이름을 ‘엑사 EnC’로 바꾸고 새로운 비즈니스 그룹 출범을 선포할 예정. ‘EnC’는 두 회사의 주력업종인 전자(Electronics)와 건설(Construction)의 준말. 벌써부터 이 회사는 그룹으로서의 면모를 갖춘 분위기다.
회사 합병을 통해 자연스레 ‘아이리사아이디’라는 회사도 계열사에 편입됐다. 이 회사는 과거 LG그룹의 R&D센터에 있던 연구진이 지난 5월 분사해 설립한 보안 시스템 회사로, 눈동자의 홍체 확인을 통해 출입을 통제하는 시스템 회사다.
구자극 회장 일가의 비즈니스 그룹은 향후 LG그룹과의 거리 좁히기에도 나설 예정이다. 회사 관계자는 “향후 LG필립스LCD그룹이 조성하는 파주LCD단지 공장에 ‘클린룸‘ 세팅작업을 비롯, 부품을 납품할 예정”이라며 “LG그룹과의 유대관계를 통해 매출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속 차리기’에 나선 구자극-본현 부자가 최근 LG그룹에서 연달아 분가해 독자노선을 밟고 있는 희성, LG전선, GS그룹과 맞물려 행보를 내디딜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