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농사 여기에’ 한화 분위기론 짱 먹었다^^
▲ 한화 하나마스 코치가 박찬호에게 선물받은 모자와 신발을 착용하고 기뻐하고 있다. 박찬호는 코치의 낡은 신발을 보고 이벤트를 기획했다고 한다. 사진제공=한화이글스 |
▲ 애리조나 피오리아 구장에서 훈련 중인 두산 선수들. 사진제공=두산베어스 |
“캠프 분위기요? 지난해와는 완전 딴판이에요.” 미국 애리조나주 피오리아 두산 스프링캠프를 찾았을 때 두산 내야수 김동주는 그렇게 말했다. 지난해까지 두산 스프링캠프는 엄숙함과 비장함이 지배했다. 훈련 중 웃거나 떠드는 선수가 없었다. 선수들은 오전부터 오후까지 입을 꽉 다문 채로 훈련했고 김경문 전 감독은 타격, 투구, 수비, 주루 훈련장을 돌아다니며 선수들을 독려했다.
그러나 올해 두산 선수들은 백팔십도 바뀌었다. 그들은 훈련 중에도 잡담을 주고받았고, 캠프 분위기는 시종일관 여유가 넘쳤다. 신임 김진욱 감독 역시 선수들의 훈련을 멀리서 지켜볼 뿐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하지만 훈련 강도는 지난해보다 강했다. 김동주는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점심, 저녁 식사 30분씩을 제외하곤 쉬는 시간이 없을 정도로 빡빡한 훈련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다”며 “선수들의 긴장이 풀어진 것 같지만, 실상은 반대”라고 설명했다. 김 감독도 언뜻 팔짱을 낀 채 수수방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각 파트 코치에게 훈련을 맡기고, 대신 책임을 지우는 총괄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김 감독은 “우리 전력이 다른 팀보다 강하지 않다”고 겸손한 자세를 취하면서도 한편으로 “몇 가지 단점만 보강하면 좋은 성적이 기대된다”고 밝혔다.
김 감독이 꼽는 보강 부문은 역시 투수진이다. 지난해 두산은 김선우, 더스틴 니퍼트 두 선발투수가 30승을 합작했다. 그러나 나머지 선발들의 부진과 불펜진의 난조로 정규 시즌 5위에 머물렀다.
투수 출신인 김 감독은 “올 시즌 김선우, 니퍼트가 35승을 합작하길 기대한다”며 “이용찬, 홍상삼, 진야곱, 서동환 등 젊은 투수들이 선발의 한축을 맡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가운데 김 감독이 가장 크게 기대를 거는 투수는 진야곱이다. 좌완 강속구 투수인 진야곱은 2008년 프로에 데뷔한 뒤 고질적인 허리부상으로 지난해까지 2군에 머물렀다. 그러나 올 시즌 허리가 완쾌되고 잃어버린 투구밸런스를 되찾으며 스프링캠프에서 가장 뛰어난 구위를 자랑한다. 진야곱이 제 역할을 한다면 두산은 오랜만에 수준급 좌완 선발투수를 배출하는 것이다.
한편 두산은 2월 11일부터 메이저리그 시애틀 매리너스와 공동으로 구장을 사용한다. 현재 쓰는 구장이 원래 시애틀 소유이기 때문. 이 바람에 두산 선수들은 시애틀 선수들이 훈련을 마치는 오후 1시부터 구장을 사용할 예정이다. 두산은 “자칫 훈련 템포에 지장을 줄 수 있지만, 빅리그 선수들의 훈련과정을 지켜보며 한 수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팀의 젊은 선수들에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했다.
▲ 주로 일본에서 스프링캠프를 차렸던 KIA는 이번엔 미국 애리조나를 찾았다. 사진제공=KIA 타이거즈 |
KIA는 전신인 해태 시절부터 일본에 스프링캠프를 차렸다. 설령 미국에 캠프를 차린다 해도 본토와 한참 떨어진 하와이를 선택했다. 신임 선동열 감독도 삼성 사령탑 때부터 일본 오키나와를 선호했다. 하지만 올해 KIA가 선택한 전지훈련지는 미국 애리조나주 서프라이즈였다.
KIA 관계자는 “미국은 날씨가 따뜻하고 강수량이 적은 데다 야구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어 상대적으로 일본보다 훈련하기 좋다”며 “전지훈련비도 일본에 비해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KIA는 스프링캠프에서 투수진 조련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선 감독이 직접 나서 젊은 투수들의 투구자세를 바로 잡고 있다. 효과도 좋다. 김진우, 한기주, 박경태는 선 감독의 조언으로 자기 몸에 맞는 투구 폼을 찾았다.
하지만 어쩐지 KIA 캠프 분위기는 밝지 않았다. 트레이드를 요구하며 팀을 이탈했던 최희섭은 미국이 아닌 광주에서 재활훈련을 하고 있다. 지난해 극도의 부진으로 올 시즌 재기를 다짐했던 좌완 선발 양현종도 왼쪽 어깨부상으로 조기 귀국했다. 무엇보다 외국인 선수 영입에 애를 먹고 있다.
KIA는 좌완 불펜요원으로 기대를 모았던 알렉스 그라만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왼쪽 팔꿈치 부상으로 정상적인 투구를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건 표면적인 이유일 뿐이고 정작 큰 이유는 양현종의 부상 영향이었다.
KIA 김조호 단장은 “그라만의 팔꿈치 부상이 심하지 않았다. 충분히 투구를 소화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양현종이 어깨부상으로 5~6월에나 등판할 수 있는 상황에서 선 감독은 불펜요원보다 선발 외국인 투수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선 감독의 이러한 사정을 눈치 챈 구단은 급히 그라만을 내보내고, 새로운 선발 외국인 투수를 물색하게 됐다.
하지만 마땅한 투수가 없다는 게 문제다. KIA는 백방으로 선 감독이 원하는 좌완 선발을 찾고 있지만, 실력 있는 외국인 투수들은 2월 20일부터 열리는 메이저리그 캠프에 참가하기 때문에 당장 영입하긴 곤란한 실정이다.
KIA의 한 코치는 “감독님이 의욕적으로 팀 정비를 하려는데 갖가지 악재가 튀어나와 몹시 힘들어 하신다”며 “캠프의 악재가 새 시즌을 앞두고 액땜으로 작용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광주에서 훈련 중인 최희섭의 캠프 합류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선 감독은 “최희섭보다 팀워크가 중요하다”며 최희섭의 캠프 합류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 한화
캠프 분위기로 치자면 한화를 따라올 팀이 없다. 메이저리그 구단의 스프링캠프 현장 같다. 그만큼 선수들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훈련하면서, 제 할 일을 다하고 있다. 그 중심엔 ‘야왕’ 한대화 감독이 있다. 좋은 예가 있다.
6일 한화 캠프에 텍사스 레인저스 스카우트가 찾아왔다. 그는 짧게 “류현진을 보러왔다”고 했다. 마침 구장에선 한화의 자체 청백전이 열리고 있었다. 이미 이 스카우트의 정체를 파악한 류현진은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그의 뒤에서 “저리 가”하며 농을 던졌다. 류현진의 장난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 스카우트는 한시도 류현진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를 지켜보던 한 감독은 “류현진이 유명하긴 한 모양이네. 나 보러 온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말이지”하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때였다. 연습투구를 위해 불펜으로 이동하던 김혁민이 한 감독 곁을 지나갔다.
이때 한 감독이 “어이, 김혁민. 너 보러 메이저리그 스카우트 왔으니까 잘 던져. 알았지?”라고 말하자 김혁민은 “네, 그렇지 않아도 명함 받았습니다”고 받는다. 그 순간 훈련장은 웃음바다가 됐다. 감독과 선수가 농담을 주고받는 건 한국 야구계 정서상 좀체 기대하기 힘든 장면이다. 하지만, 한화 캠프는 감독과 선수가 격의 없이 어울리며 훈련을 즐겁게 진행하고 있었다.
메이저리그 출신 박찬호가 한국 야구에 적응하는 것도 한화 특유의 팀 분위기 덕분이 크다. 한 코치는 “만약 박찬호가 팀 기율이 강하고, 감독 중심의 야구를 펼치는 팀을 만났다면 지금처럼 적응하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박찬호 자신도 ‘한국 구단의 분위기가 모두 한화 같으냐’라며 매우 만족해 한다”고 귀띔했다.
한마디의 농담으로 선수단의 윤활제 역할을 담당하는 한 감독은 NC에게도 은인이다. 담 하나 사이로 함께 훈련하는 NC는 연습상대를 찾지 못해 자체 청백전만 할 참이었다. NC 김경문 감독은 “우린 올 시즌 2군 리그에서 뛰어야 한다. 그러나 나머지 팀들은 1군이다. 먼저 연습경기를 하자고 청하기가 미안해 입도 열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한 감독은 김 감독의 입장을 알고는 먼저 연습경기를 제안했다. 그리고 친분이 두터운 KIA 선동열 감독에게 연락해 “김 감독과 고대 선후배 사이 아니냐. 이럴 때 도와주지 언제 도와주냐”며 연습경기를 먼저 제안하라고 일렀다. 선 감독은 한 감독의 조언을 흔쾌히 받아들여 김 감독에게 먼저 연습경기를 제안했다.
두산과 넥센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두산은 김 감독의 친정팀이고 넥센은 신생구단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아는 처지였다. 두 팀 역시 NC에게 연습경기를 청했다.
언론이 이른바 ‘애리조나 리그’로 부르는 한국 구단들의 연습경기 일정은 이렇게 탄생한 것이다. 하지만 김 감독은 한 감독의 노력을 알지 못한다. 한 감독이 이야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감독은 “성경에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구절이 있다. 그렇잖아도 왼손이 근질근질해 죽겠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 넥센은 애리조나 서프라이즈 구장에 터를 잡았다. 사진제공=넥센 히어로즈 |
9개 구단 가운데 재정적으로 가장 빈약한 넥센이지만 훈련장은 가장 좋은 곳을 잡았다. 넥센이 사용하는 애리조나 서프라이즈 전지훈련장은 텍사스 소유의 특급 훈련장이다. 넥센은 이곳을 싼값에 이용하는 데다 앞으로 몇 년 더 다른 팀과 경쟁 없이 사용하기로 협약을 맺었다. 영어에 능통한 넥센 이장석 사장이 텍사스 고위인사와 만나 협약을 이끌어냈다. 좋은 훈련장에서 몸을 만들어선지 넥센 선수들은 부상 없이 정해진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그 가운덴 ‘핵잠수함’ 김병현도 있다.
올 시즌부터 넥센 유니폼을 입는 김병현은 쾌활한 표정으로 선수들과 어울려 훈련을 받고 있었다. 한 선수는 “대스타 출신임에도 후배들 농담을 잘 받아주고, 스스럼없이 선수들과도 잘 어울린다”면서 “(김)병현이 형이 이렇듯 정상적인 사람인 줄 몰랐다”고 말했다.
김시진 감독도 김병현의 팀 적응력을 ‘놀라울 정도’라고 표현했다. “모르는 게 있으면 다가와 조언을 구한다.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코칭스태프의 지도를 흔쾌히 받아들인다. 큰물에서 놀던 선수답게 통이 크다는 느낌이다.”
김병현의 가세로 넥센 투수진은 2008년 창단 이래 가장 탄탄해졌다. 김 감독은 “심수창, 문성현, 김성태의 몸 상태도 최상이다. 투수진은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며 환하게 웃었다.
정작 김 감독이 신경 쓰는 건 타력이다. 지난해 스프링캠프에서 넥센은 타격이 좋지 못했다. 테이블세터진의 출루율은 턱없이 낮았고, 중심타선은 허무하게 무너졌다. 아니나 다를까 넥센은 정규 시즌 가장 빈약한 팀 타율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는 게 김 감독의 생각이다. 김 감독은 “이택근 영입이 큰 힘이 됐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3번 이택근, 4번 박병호, 5번 강정호로 이어지는 중심타선은 삼성과 KIA 못지않다. 여기다 조중근, 오재일 등 거포 유망주들의 성장세가 빠르다는 것도 희소식이다.
김 감독은 “1번 타자 장기영의 몸 상태가 나쁘지 않다”며 “누구를 2번으로 기용하느냐에 따라 팀 타선이 극적으로 살아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감독은 “최희섭만 영입했다면 8개 구단 최강의 타선을 구축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KIA와 최희섭 트레이드와 관련해 모든 계약에 합의했다. 양도계약서에 도장까지 찍은 걸로 안다. 미국으로 넘어올 때까지 최희섭이 우리 팀으로 오리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하지만 갑자기 트레이드 정보가 밖으로 새나가며 KIA가 돌연 트레이드를 ‘없었던 일로 하자’고 했다. 만약 최희섭이 우리 팀에 왔다면 로또를 맞은 것과 똑같은 일이었다. 두고두고 그때 트레이드 불발이 아쉽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