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그들아, 내 모든 걸 아낌없이 주련다”
▲ “타이거즈 정신이 필요해” 애리조나 KIA 타이거즈 훈련 캠프에서 만난 선동열 감독은 선수들에게 개인보다 팀을 먼저 생각하는 ‘타이거즈 정신’을 강조했다. 사진제공=KIA |
빨간색 KIA 유니폼을 입은 선 감독을 보면서 그가 이전에 파란색 유니폼을 입은 사람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그와 빨간색은 잘 어울렸다. 이미 한국에서부터 마무리훈련을 시작으로 선수단을 진두지휘했던 터라 스프링캠프에서의 선 감독은 타이거즈 사령탑, 그 자체로 다가왔다. 아무래도 투수 출신이다 보니 선 감독의 관심은 KIA 마운드 쪽에 상당히 쏠려 있었다. 이미 타격 부문은 이순철 수석코치에게 일임하겠다고 밝힌 터라 그가 투수들을 집중 조련하는 부분이 이상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타이거즈 정신?
선 감독은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타이거즈 정신’을 언급했다.
“내가 선수 시절 감독님으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얘기가 타이거즈 정신이었다. 그건 즉 개인보다는 팀을 먼저 생각하는 희생 정신을 뜻한다. 고참들이 솔선수범해야 한다. 훈련도 중요하지만 선수들의 마인드를 재정비하는 시간도 필요했다. 다행히 선수들이 잘 따라오고 있고, 지금까지는 내가 강조했던 부분들이 잘 이행되고 있는 것 같아 만족스럽다.”
▲ 선동열 감독이 윤석민 구위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제공=KIA |
때마침 기자가 선 감독을 인터뷰하는 날, 윤석민이 스프링캠프 시작 이후 처음으로 불펜피칭에 나섰다. 윤석민의 피칭을 유심이 지켜보던 선 감독이 이런 얘기를 꺼낸다.
“KIA 감독으로 취임한 이후 석민이가 공 던지는 모습을 직접 본 게 처음이다. 역시 팀의 에이스답다. 볼 던지는 걸 보니까 왜 윤석민을 최고의 투수라고 부르는지 알 것 같다. 그런데 첫 불펜 피칭하면서 너무 전력 투구를 한 것 같아 걱정이다. 전반적으로 훈련이 잘 되고 있는 것 같아 내심 흡족하다.”
#선동열 애제자 김진우?
선 감독은 투수들이 훈련하는 장소에서 거의 두 시간을 꼼짝도 않고 서서 선수들의 피칭을 꼼꼼히 살피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윤석민과 함께 불펜피칭을 한 김진우에 대한 평가가 궁금했다.
“김진우는 마무리훈련 때부터 지금까지 조금씩 발전돼 가고 있는 걸 보여줬다. 마무리훈련 때는 밸런스가 좋지 못했는데 여기 와서 그 부족한 부분이 상당히 보완됐다. 선수들 중 가장 의욕적으로 훈련에 참가하고 있는 것 같다. 진우가 지금처럼만 해준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정도다.”
선 감독은 투수들에게 하반신을 이용해서 볼을 던지라고 자주 주문했다. 젊은 나이에는 주로 상반신을 이용해 공을 던지는데, 선수 생활을 길게 가져가려면 하반신을 이용해서 볼을 던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 김진우가 온 힘을 다해 근력강화 트레이닝을 하는 모습. 사진제공=KIA |
KIA의 한기주가 기자에게 “지난해에 비해 훈련량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말한 얘기가 떠올랐다. 선 감독에게 훈련량에 변화를 준 이유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글쎄, 이전에는 훈련량이 많았던 반면에 선수들이 의욕적으로 훈련에 임하지 못했던 것 같다. 즉, 마지못해서, 기계적으로 훈련을 한 선수들이 많았다고 들었다. 그래서 난 훈련 시간이 짧더라도 집중력을 갖고 훈련하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전에 비해 훈련량을 반으로 줄였다. 프로는 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잘 쉬느냐도 중요하다. 무조건 훈련 강도만 높이는 것보다 짧고 굵게 훈련을 하고, 또 휴식도 잘 취해야 스프링캠프에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올 시즌 선발 라인업은
스프링캠프 기간 동안 대부분의 감독들은 선발 라인업을 언급하기 꺼려한다. 연습경기와 시범경기를 치른 후에 구체적인 주전 멤버들이 드러날 것 같지만 선 감독은 거침없이 선수들 이름을 끄집어냈다.
“지금은 예상일 뿐이지만 어느 정도 주전 선수들의 윤곽이 잡혔다. 타순은 이용규가 1번을 치면서 2번은 안치홍이, 3번 이범호 4번 김상현 5번 나지완, 6번 최희섭 순으로 생각 중이다. 투수 부문에선 선발은 윤석민, 서재응, 그리고 용병 투수 중에서 한 명이 맡았으면 한다. 그 외에 투수들 중에서 키플레이어는 좌완 박경태이다. 양현종이 부상으로 귀국하면서 박경태의 중요성이 더 부각되고 있는 상황이다. 마무리 쪽은 김진우, 한기주, 용병 선수 중에서 고민 중이다. 마무리를 먼저 결정해야 중간계투 등의 보직을 정할 수 있는데, 아직 확실한 마무리감을 찾지 못했다. 오키나와에서 연습 경기를 치르며 그 해답을 찾을 계획이다.”
선 감독이 키플레이어로 꼽았던 박경태는 오키나와 주니치 전에 선발로 나와 가장 많은 4이닝을 던지면서 14명의 타자를 상대로 2피안타 3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KIA 마운드의 ‘믿을맨’으로 급부상했다. 투수를 보는 선 감독의 눈이 정확하다는 걸 증명해준 셈이다.
#우승 청부사 SUN?
선 감독이 지난 연말 마무리훈련 차 광주에 머물렀을 때, 광주 팬들이 선 감독을 보고 가장 많이 했던 말이 “KIA를 꼭 우승시켜 주세요”라는 얘기였다고 한다. 롯데와 함께 ‘전국구’ 팬을 확보하고 있는 KIA 사령탑으로선 팬들의 간절한 염원을 몸소 느끼면서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고향으로 돌아오니까 만나는 사람들 마다 우승을 거론한다. 지인들, 선후배들 모두 나한테 거는 기대가 크더라. 솔직히 부담된다. 우승을 못하게 되면 모든 화살이 나한테 돌아올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두렵거나 걱정되는 것은 없다. 우승을 하면 되는 게 아닌가. 캠프를 시작하면서 구상했던 팀의 전력이나 틀이 있었다. 그런데 그게 잘 맞아 떨어지고 있어 너무 기분이 좋다.”
#투수들 경쟁 치열
선동열 감독의 모든 걸 닮고 싶은 걸 넘어서 모든 걸 빼앗고 싶다고 말하는 김진우. 이에 질세라 선 감독의 모든 걸 넘어 서고 싶다는 한기주. 마무리 후보로 거론되는 투수들의 존경을 넘어선 싱크로율 경쟁 소식에 선 감독은 ‘허허’ 하고 큰소리로 웃음을 터트린다.
“아무래도 투수 출신 감독이 오니까 투수들이 더 긴장하고 경쟁심을 갖게 되는 것 같다. 모두가 나한테 뭔가를 배우려는 눈빛을 보인다. 김진우가 나의 모든 걸 빼앗고 싶다면, 정말 그럴 수만 있다면 다 전수해 주고 싶다. 한기주가 날 넘어서겠다고 얘기했다면, 정말 그럴 수만 있다면 진심으로 박수쳐주면서 그렇게 할 수 있도록 격려할 것이다. 내 모든 걸 아낌없이 주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리고 최희섭…
인터뷰 말미에 조심스럽게 ‘최희섭’이란 이름을 꺼냈다. 개인적인 문제로 인해 선수단에서 이탈했다가 복귀한 최희섭에게 전지훈련 제외라는 극약 처방을 내린 선 감독이었다.
“글쎄, 최희섭에 대해선 내가 말할 수 있는 게 없다. 내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 선수단에서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 필요한 게 아닌가 싶다.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다. 행동으로서 선수단에게 사죄를 구하고, 선수단이 그 선수를 받아들인다면 나도 더 이상 이 문제를 끌고 가지 않을 것이다. 어떠한 처벌도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그 선수는.”
선 감독의 목소리가 단호했다. 아무리 최희섭이 팀 타선을 이끄는 중요한 선수라 해도 선 감독은 냉정하게 생각하려 했고, 또 실제 그렇게 행동했다. 무엇보다 그가 KIA 사령탑으로 부임 후 처음 겪은 불미스런 일이었던 만큼 그가 안고 있는 감정은 예상보다 훨씬 크고 묵직했다. 선 감독이 인터뷰 내내 ‘타이거즈 정신’을 강조한 대목을 떠올린다면 최희섭이 선 감독의 시선을 자신한테로 돌리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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