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밖 견제구에 ‘사심’ 있나 없나
야구계 인사들은 지난해 9구단 창단 때만 해도 ‘홀수 리그는 안 된다. 10구단 창단을 유도해 양대리그 체제로 개편하자’고 주장했던 구단들이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10구단은 절대 안 된다’고 태도를 바꾼 이유를 의아해하고 있다. 특히나 10구단 창단 반대의 중심이 어째서 삼성인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입장이다.
“9구단으로는 정상적인 리그 운영이 어렵다. 8개 팀이 싸울 때 한 팀은 놀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럴 바엔 한 팀을 더 만들어 10구단으로 리그를 늘리고, 일본처럼 양대리그로 운영하는 게 좋다. 한쪽 리그는 지명타자 제도를, 한쪽 리그는 투수가 타석에 서도록 한다면 더 큰 인기를 끌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 3월 NC가 창단했을 때 모 구단 단장이 한 말이었다. 이 단장은 “결국 한국 프로야구가 가야 할 길은 미국과 일본처럼 양대 리그 방식으로 운영되는 것”이라며 “프로야구 주체들이 기득권을 버리고, 리그 확장에 협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단장만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었다. 롯데를 제외한 단장 대부분이 리그 확장에 동의했다. 수도권 지역의 모 단장은 “팀이 늘어나야 더 많은 아마추어 선수를 스카우트할 수 있고, 프로야구 선수를 꿈꾸는 학생선수도 늘어날 것”이라며 “아마추어 선수들의 프로 취업률이 최소한 10%는 돼야 학부모들도 조금은 안심하고, 아이들이 야구하는 걸 지켜볼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롯데는 반대의 입장이었다. “무분별한 리그 확장이 ‘제2의 유니콘스’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며 9구단뿐만 아니라 10구단 창단에 대해서도 부정적 입장을 취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10구단 창단은 거부하기 어려운 시대적 요구처럼 보였다. 롯데의 우려에 귀를 기울이는 이도 거의 없었다. KBO는 10구단 창단 유도를 위해 지자체를 방문하기 시작했다. 경기도 수원과 전라북도가 10구단 유치 경쟁에 뛰어든 것도 KBO의 설득 때문이었다.
가장 먼저 10구단 유치에 나선 곳은 전북이었다. 지난해 8월 전북은 10구단 유치위원회를 발족했다. ‘전북야구의 대부’인 이용일 전 KBO 총재대행을 위원장으로 영입하고서 도민 지지서명을 받는 등 열정적으로 움직였다.
전북에 자극받은 수원은 경기도와 손을 맞잡고 곧바로 10구단 유치위를 조직하며, 활발한 유치활동에 들어갔다. 수원은 과거 현대 유니콘스의 연고지였다는 점과 풍부한 시장성을 들어 유치 당위성을 설명했다. 수원 염태영 시장은 “2007년까지 현대가 수원구장을 홈구장 삼아 활동하면서 수원시는 풍부한 프로야구단 운영 노하우를 축적한 상태”라며 “인구 110만 명이 거주하는 수원이야말로 프로야구단이 안정적인 수익 창출을 꾀할 수 있는 최적의 지역”이라고 강조했다.
기존 프로야구팀들이 내심 수원을 지지했던 것도 이동하기에 교통망이 편하고, 경기당 1만 명 이상의 관중이 들어올 수 있는 인구 때문이었다.
수원과 전북은 KBO 이사회에서 10구단 창단 승인만 하면 바로 창단 주체 기업을 발표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사회에서 10구단 창단 논의가 연기되면서 망연자실한 상태다.
4월 이사회가 열리기 전까지 10구단 창단은 무리 없이 승인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사회를 앞두고 줄곧 ‘10구단 불가 방침’을 내세웠던 롯데를, 삼성과 2개 팀이 지원하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삼성은 왜 10구단 창단 승인에 부정적 입장을 나타낸 것일까.
표면적 이유는 ‘시기상조론’이다. 삼성은 “지금 프로야구 인기가 높다고 팀을 무작정 늘리는 건 전체 프로야구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모 구단 사장은 삼성이 NC의 1군 합류에 딴죽을 걸고, 10구단 창단을 반대하는 숨은 배경을 알 필요가 있다고 귀띔했다.“삼성이 반대하는 건 10구단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A 그룹이다. A 그룹이 10구단 창단을 준비한다는 소문이 돌며 삼성의 태도가 ‘확’ 변했다. 삼성은 ‘A 그룹과는 절대 프로야구를 함께 할 수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안다. 가뜩이나 불편한 관계인 A 그룹이 삼성의 텃밭인 수원에 10구단을 창단한다면 삼성으로선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 것이다.”
삼성이 A 그룹의 프로야구 참여를 의식해 10구단 창단을 반대했다면 어째서 NC의 2013년 1군 합류마저 딴죽을 걸었던 것일까. 두 건은 별개가 아닌가.
이 사장은 “시간을 벌려는 작전인 것 같다”고 했다. “NC의 1군 참여가 2014년에 이뤄지면 10구단의 1군 합류는 2014년 이후가 될 것이다. 몇몇 구단 입장에선 3, 4년 뒤면 기존 구단 가운데 한 개 팀 정도가 사라질 것으로 예상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10구단을 창단하지 않아도 8구단 짝수 체제가 유지된다. 몇몇 구단이 바라는 건 더는 구단이 늘어나지 않고, 기존 파이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다.”
모 구단 인사는 “롯데를 제외한 10구단 창단을 반대하는 2개 구단은 특별한 이해관계 없이 삼성을 지원사격하는 것”이라며 “구단을 넘어 그룹 고위층들 사이에 암묵적인 협력 관계가 조성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삼성이 A 그룹의 10구단 참여를 우려한다는 소문은 야구계에 파다하다. 하지만, KBO 관계자는 “A 그룹이 10구단 창단을 계획한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A 그룹은 10구단 창단과 관련해 어떤 의사도 KBO 측에 전달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모 야구 인사는 “삼성도 이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이 A 그룹의 10구단 참여 여부를 백방으로 알아본 것으로 안다. KBO에 직접 문의하기도 했다. 결국 ‘A 그룹은 10구단 창단 의사가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이때부터 삼성의 자세가 다소 부드러워졌다.”
<일요신문>의 취재 결과 실제로 A 그룹은 10구단 창단 의사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10구단 창단에 깊이 관여 중인 모 야구 관계자는 “통신업체 한 곳과 이름만 대면 알만한 기업이 10구단 창단에 관심이 나타내고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두 기업은 KBO 이사회에서 10구단 창단을 승인하고, 연고지만 결정하면 바로 창단 의사를 밝힐 태세”라며 “두 기업 모두 NC보다 총매출과 규모가 큰 편이라, 10구단을 창단했을 때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전유물인 프로야구 시장에 참여했다’는 반론은 나오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한편 수원과 전북은 10구단 창단 승인을 차일피일 미루는 KBO 이사회에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수원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막대한 행정력을 투입해 10구단 유치 분위기를 조성했는데, KBO 이사회에서 별다른 이유 없이 창단 승인을 미루는 건 잘못”이라며 “‘KBO도 이제 와서 ‘나 몰라라’하는 건 도리가 아니다”라며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수원은 조만간 10구단과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는 전북 역시 마찬가지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강민 스포츠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