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나의 구원투수… “인생역전 보여줄게”
▲ 올 시즌 마치고 유부남 대열에 합류할 예정인 황덕균(왼쪽)과 정성기. |
생활 터전이 달랐던 두 선수한테 공통점이 생겼다. 바로 올 시즌을 마치고 유부남 대열에 합류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선수 57명이 전부 미혼인 NC에서 두 선수의 결혼 소식은 구단 전체의 경사로 받아들여질 정도다. 그러나 결혼식을 올리기 전까지 반드시 그들이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 바로 성적이다. 정성기는 팀의 마무리 투수로 김경문 감독의 눈도장을 찍어야 하고, 황덕균은 결혼 선물로 선발 10승을 약속한 탓에 자칫 개인 성적이 좋지 않으면 결혼 일정에 차질이 빚어질 수도 있다. ‘절박’ ‘절실’이란 단어를 가슴에 품고 사는 예비 유부남 선수들을 새롭게 단장한 마산야구장에서 만났다.
#정성기 “허점투성이인 날 받아준 여자를 위해 도전”
“미국에서 연습 경기할 때만 해도 괜찮았는데 한국에 돌아온 뒤로는 밸런스가 무너져 고전하고 있어요. 공의 구질도 코스도 모든 게 정확하지가 않아요. 왜 그런지 이유를 모르겠어요. 주위 사람들 말로는 한국 야구에 적응 중이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글쎄요…, 이 적응 기간이 언제까지 갈지 모르겠네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마이너리그 팀에서 마무리 투수로 활약했던 정성기는 올 시즌 개막 후 마운드에 올라 경기를 벌인 게 고작 3이닝밖에 안 된다. 그런데 3이닝도 본업인 마무리가 아닌 중간계투로 투입됐었다. 헝클어진 밸런스를 맞추려다 보니 이도 저도 안 되는 상황의 연속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3년 만에 다시 오른 마운드에 대해 이런 소회를 밝힌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온 후 거의 3년 만에 마운드에 오르다보니 긴장도 되고 설렘도 있고, 묘한 기분에 사로잡히게 됐어요. 마치 미국 진출 후 처음 마운드에 올라가는 그런 비슷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다 좋았어요. 경기장도, 관중들도, 선수들도…. 그런데 제 공만 안 좋더라고요(웃음). 정성기가 이런 선수라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제대로 해보이지도 못하고 내려온 셈이죠.”
정성기는 시즌 개막 직전에 5일 동안 2군 성격의 잔류군으로 내려간 적이 있었다. 처음엔 김경문 감독의 지시를 받고 어안이 벙벙했다고. 왜 자신이 그곳으로 가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됐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항상 위로 올라가기만 했지, 밑으로 떨어진 적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한국에서 처음으로 내려가 본 거예요. 2군도 아닌 잔류군으로요. 처음엔 ‘내가 뭘 잘못했지?’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팀의 최고참인데 후배들 보기에 창피한 부분도 있었고요. 그런데 막상 가보니까 감독님의 의중을 헤아릴 수 있게 되더라고요. 아마 바닥을 보고 오라는 의미 아니었을까 싶어요.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그래서 기회를 잡지 못하면 팀을 떠날 수도 있는 그런 환경을 직접 보고 느끼고 오라는 무언의 메시지였다고 받아들였습니다. 비록 5일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저한테는 1년도 더 되는 듯한 힘든 시간이었어요. 다시 동료들과 함께하면서 지금 제 자리의 중요성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정성기는 지난 12월, 동갑내기 초등학교 동창인 이여진 씨와 약혼식을 올렸다. 이 씨는 미스유니버시티 2위에 오를 정도의 재원. 메이저리그 문턱을 넘지 못하고 귀국했던 정성기는 소속팀이 없는 상태에서 ‘백수’ 신분으로 친구 손에 이끌려 초등학교 동창 모임에 나갔다가 몰라보게 예뻐진 이 씨를 만난 후 운명의 여인임을 직감하고 끈질긴 구애 끝에 이 씨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처음엔 두 사람의 교제를 반대했던 예비 장인, 장모도 정성기의 인간성과 성실하고 착한 마음 씀씀이에 반해 나중에는 결혼을 서두르라고 재촉했을 정도라고.
“미국에서 보낸 6년 동안 돈을 모은 것도 없고 내세울 것도 없는 허점투성이의 남자한테 선뜻 딸을 주시겠다는 장인어른과 장모님께 정말 감사드려요. 지금은 약혼녀보다 더 절 챙기시고 응원을 보내주세요. 부족한 게 많은 사람을 사위로 받아들여주셨으니 앞으로 야구 잘해서 하나둘씩 갚아나가야죠.”
정성기는 최근 일부 구단에서 NC다이노스의 2013년 1군 진입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을 때 혼자 속앓이를 했다고 털어놓는다.
“나이가 있다 보니까 내년이 아닌 내후년에 1군으로 들어간다는 것 자체를 상상조차 하기 싫었어요. 그런데 그 부분에 신경 쓰다보면 야구하는 데 지장을 받을까봐 애써 귀를 닫고 있었습니다. 잘 해결될 것이라고 믿어요. 많은 분들이 NC를 1군에서 빨리 보기를 바라고 계시잖아요. 야구에만 집중하면서 살고 싶어요.”
▲ 정성기와 약혼녀 이여진 씨. 오른쪽은 황덕균의 예비 신부 신선영 씨. |
처음 NC다이노스 유니폼을 입을 때만 해도 황덕균은 두려울 게 없었다. 팀에서 방출도 당해보고 공익근무요원으로 전역 후 LG, 한화를 돌며 테스트를 받기도 했었다. 마지막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도전한 NC다이노스 공개 트라이아웃에서 합격 판정을 받았을 때, 오히려 담담해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막상 시즌이 시작되자 마음 속 그리움의 대상이었던 마운드가 서서히 부담으로 작용했다고 털어 놓는다.
“오랜만에 많은 관중들 앞에서 공을 던지는 게 이상하리만치 불편했어요. 자꾸 위축되는 느낌만 들었고요. 팬들이 제 이름을 불러주는 것조차 어색하더라고요. 그런 변화된 환경이 자신감 상실로 이어졌고 투구 밸런스 붕괴와 황덕균도 사라지고 만 거죠.”
잘못 채워진 첫 단추가 제자리로 돌아오는 데에는 다소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다. 뭔가 될 듯 될 듯 하면서 되지 않는 게 지금 그의 상태인 것.
“전 아직 신고선수 신분이에요. 오는 7월이 돼야 정식으로 계약을 맺는 선수가 될지, 아니면 등록이 안 될지가 판가름 나요. 그러다보니 한 이닝 한 이닝이 소중하고 그 결과에 대해 신경을 쓸 수밖에 없더라고요. 자칫 잘못하면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으니까요. 어쩌면 그런 조급함, 두려움 때문에 컨트롤이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머리 속에 생각이 많아지니까 야구에 집중하기가 더 어려운 것 같기도 하고요.”
만약 황덕균이 1군 소속이었다면 경기 결과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성적 여하에 따라 그의 인생이 좌우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다 보니 공 한 개를 던질 때마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희망이 없지는 않다. 김경문 감독이 그를 눈여겨보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시즌 시작 전에 선발로 나서 10승을 거두면 김 감독한테 결혼식 주례를 부탁드리겠다는 공약을 내건 바 있다.
“어휴, 그거 원래 7승이라고 말한 게 잘못 알려진 거예요. 처음에는 감독님 등번호인 ‘74’를 따서 7승4패를 약속하려 했다가 7승으로 말했는데 언론에는 10승으로 부풀려져 나갔더라고요. 그런데 7승이든 10승이든 마운드에 나가야 성적과 싸워보죠. 지금은 기대치에 한참 못미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감독님께 주례를 부탁드리기는커녕 돈을 주고 사서 해야 할 것 같아요.”
황덕균의 예비 신부는 선린상고 동기동창인 신선영 씨. 야구경기를 할 때마다 응원을 주도했던 응원단장 신 씨와 당시 마운드 에이스로 군림했던 황덕균의 교제는 학교 안에서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을 정도로 두 사람의 연애 스토리는 흥미진진하다. 졸업 후 한동안 헤어지는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인연의 끈을 놓지 않고 연락을 해온 황덕균의 지고지순함에 신 씨가 마음의 문을 열게 됐고, 양가 집안의 허락을 받아 오는 12월 9일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다.
“우리 팀 최고참이 (정)성기 형이라서 형을 먼저 결혼시켜 보내고 제가 장가가야 하거든요. 그런데 형이 (결혼)날짜 잡을 생각을 안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먼저 날짜를 공개하는 거예요. 12월 9일보다 빨리 가셨으면 해서요. 총각들이 득시글거리는 선수단에서 형과 제가 먼저 장가를 가는 터라 책임감도 크고 가정도 잘 꾸려갔으면 좋겠지만 지금 상태로는 어려울 것 같아요. 예비 마누라 기세로 봐서는 야구 못해 밥도 못 얻어 먹을 판이거든요(웃음).”
황덕균은 두산 시절 절친이었던 고영민이 자주 전화를 걸어 용기를 주며 힘내라는 말을 전한다며 고마워한다.
“지난번 롯데전에서 제가 첫 홈런을 맞았어요. (고)영민이가 그때 전화를 해선 좋은 말을 많이 해줬어요. 제 작은 소원이라면 내년에 1군에 올라가서 영민이를 비롯해 두산 선수들과 맞대결을 펼치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 제 방어율이 6점대라, 과연 그런 날이 올까 싶긴 하네요.”
너무나 짧았던 두산에서의 생활. 이젠 2군이 아닌 1군에서 동료들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며 잠실을 비롯해 대전 부산 광주 대구 등을 돌고 돌아 멋진 승부를 펼쳐 보일 수만 있다면 ‘덕구’ 황덕균의 인생에 ‘좌절’이란 단어는 영영 사라질 것만 같다.
마산=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