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선수가 사는 법

허허실실 ‘몬스터’ 뒤에선 자가 채찍질

[일요신문] 류현진은 지난 13일, 뉴욕 메츠와의 경기를 통해 12승을 챙기고, 2.91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면서 그가 밝혔던 올 시즌 목표를 상회했다. 류현진의 이런 놀라운 성적의 비결은 무엇일까. 그는 여전히 담배를 피우고 있고, 불펜피칭을 거르면서 정해진 로테이션을 따른다. 그가 새로운 구질을 위해 특별히 훈련하는 일도 없고, 정해진 훈련량 외에 더 많은 노력을 쏟아 붓지도 않는다. 한국과 비교해서 크게 달라진 생활을 하고 있지 않으면서도 류현진은 분명 달라져 있었다.

류현진이 메이저리그에서 별다른 어려움 없이 적응할 수 있는 배경에는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이 한몫한다. 류현진은 한국에서 야구할 때도 특별히 두려워하는 선배가 없었다. 이승엽, 봉중근 등 대표팀에서 선배들을 만날 때는 ‘형님’도 아니고 ‘형’으로 다가갔다. 한화에서 ‘영혼의 콤비’로 불렸던 김태균은 친형처럼 가깝게 지냈다. 대표팀에서 친분을 맺은 추신수의 신발이 마음에 든다고 추신수에게 말도 안 하고 그냥 신고 나가는 넉살도 류현진의 장기였다. 그런 여유로움이 다저스 선수들과 특유의 친화력을 선보인 비결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마냥 아이 같고 순진할 것만 같은 류현진도 정작 야구와 관련해서는 철저히 프로다운 자세를 유지한다. 다저스가 시즌 초 연패의 늪에 빠져 힘든 시간을 보낼 때, 그는 단 한 번도 팀을, 또는 동료를 원망하는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모든 걸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동료들을 감싸 안았다. 타선의 뒷받침이 적어, 또는 수비 실책으로 승수를 챙기지 못했을 때도 그는 자신이 더 잘 던졌어야 하는 일이라고 선수들을 두둔하고 나섰다. 이런 행동은 다저스 선수들한테 그대로 전달됐다는 후문이다.

류현진은 굉장히 영리한 선수이다. 겉으로는 허허실실 전법을 구사하면서도 속으로는 할 것 다 하는 남자이다. 즉, 시험 앞두고 학교에서는 공부 안하는 학생이 친구들 없을 때 밤새 공부하는 것처럼 류현진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웨이트트레이닝을 열심히 소화했고(한국에서는 웨이트트레이닝을 게을리했다고 한다) 감독이 정한 4일 쉬고 5일째 던지는 로테이션에 적응하기 위해 지친 몸을 채찍질하며 일으켜 세웠다.

류현진은 지난 번 LA에서 추신수를 만났을 때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한국보다 하루 덜 쉬고 선발로 나가야 하는 시스템을 소화하다보니 어느 날은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려고 하는데 팔이 올라가지 않는 걸 실감한 적이 있었다”라고. 기자들 앞에서 쉽게 말하지 못하는 고민을 친한 형한테 털어 놓으면서 류현진은 메이저리그에 적응하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는 사실을 토로했다.

가끔 LA의 어느 술집에서 류현진이 술 마시고 있는 모습을 봤다는 제보가 들리기도 하지만, 설령 그가 술을 마신다고 해서 뭐가 문제 되겠나. 그도 스트레스 쌓이면 풀고 싶은 사람이고, 마땅히 풀 방법이 없을 때 폭탄주 서너 잔 마시며 긴장을 놓고 싶은 남자인데….

이영미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