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살해위협 참다 프라이팬 들고 반격
손 아무개 씨(46)를 가장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남편이다. 20년 가까이 셀 수도 없이 죽음의 위협을 느꼈다. 목에 서늘한 칼과 가위를 들이댄 것도 여러 번. 얼굴과 몸은 누렇고 푸른 멍 자국으로 성할 날이 없었다.
결국 손 씨는 우울증과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각장애 4급을 판정받았다. 눈물 흘리며 남편을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지난 4월 협의 이혼했다. 이제 아들들과 새로운 삶을 찾으리라 기대했던 손 씨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이혼 절차가 모두 끝난 후에도 신 씨는 찾아와 폭력을 휘둘렀다. 손 씨는 법원에 접근금지명령을 신청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신 씨에게 손 씨와 두 아들 100m 반경 이내로 접근하지 말라고 결정했다.
하지만 법원의 결정에도 신 씨는 막무가내였다. 전 아내의 조치에 화가 난 신 씨는 아들의 학교에 찾아가 “내 아들이니 퇴학시키라”며 행패를 부렸다. 자신을 말리려 찾아온 전 아내에게 신 씨는 또다시 칼을 들고 위협했다.
손 씨는 이렇게 해서는 악몽이 끝나지 않겠다고 직감했다. 신 씨에게 맞서 프라이팬을 들고 온 힘을 다해 휘둘렀다. 분노가 서린 일격을 당한 신 씨는 갈비뼈가 부러져 골절상을 입었고 과다 출혈로 숨졌다.
법원은 손 씨의 ‘인고의 세월’을 인정해줬다. 비록 현장에서 피할 수 있음에도 신 씨에게 폭행을 가해 숨지게 한 점은 정당방위에 해당하지 않지만, 지속된 살해 위협을 받았던 점, 이혼 후에도 전 남편의 가족을 보살폈던 점을 들어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그야말로 ‘사필즉생’의 결단으로 전 남편에게 맞서 18년 만에 얻어낸 자유였다.
서윤심 기자 hear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