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에 욕 하지마” 안티 정면돌파…위기서 기회 찾기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사진=임준선 기자)은 제네시스에 이어 신형 쏘나타의 수출용 모델과 내수용 모델에 대한 품질 차이 논란이 계속되자 소비자들을 초청해 비교 충돌 테스트를 가졌다.
# MK의 역작 ‘제네시스’마저…
회사 내에서는 이번 충돌 테스트도 아예 제네시스로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고 한다. 현대차 관계자는 “쏘나타가 현대차의 주력모델이라는 점에서 (충돌 테스트를) 실시했지만, 오해를 아예 불식시키기 위해 제네시스를 동원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도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제네시스 충돌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염두에 두고 있으며, 실제로 정 회장이 결심할 경우 실행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사실 현대차에 대한 의혹 제기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1988년 2세대 쏘나타가 출시되면서 현대차가 개발한 중형 세단 모델로는 처음으로 미국에 수출됐는데, 이때부터 수출용과 내수용의 품질에 차이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핵심은 자동차를 만드는 데 사용하는 철판이 수출용은 내수용보다 두껍고 더 단단하며, 안전사양도 훨씬 좋으면서 가격은 내수용보다 싸다는 것이었다. 입소문으로만 돌던 의혹은 신문과 방송 등에서도 거론하면서 범국가적으로 확산돼 해외에서도 우려할 정도가 됐다.
악소문은 초반에 잡지 못하면 큰 사태로 번진다. 당시 현대차는 소문의 확산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열심히 잘 만들면 된다는 기술자적인 생각의 틀을 깨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수출용·내수용 논쟁은 ‘안티 현대’ 여론으로 발전돼 지금까지 현대차의 발목을 잡고 있는 아킬레스건이다. 쏘나타는 현대차 역사에서 최고의 성공작이다. 반면 이러한 논쟁의 가장 큰 피해자가 바로 쏘나타였다. 가장 많이 팔리면서 칭찬과 욕을 이렇게 많이 먹기도 드물 정도다.
그런데 쏘나타에 대한 험담이 제네시스에게까지 확산된 것이다. 현대차로서는 더 이상 참고만 있을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제네시스이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 출신 전직 임원은 “제네시스가 어떤 차인가. 지난 2000년 9월 25일 현대그룹에서 독립한 현대차그룹 출범식에서 정 회장은 ‘2005년에 세계 5위의 품질을 확보하고 2010년에는 5대 자동차업체로서 거듭나도록 노력하자’는 GT5 비전을 발표했다. 목표를 위한 무기는 ‘품질’과 ‘서비스’였다. 그의 의지대로 10년 만에 현대차그룹은 세계 5위 자동차기업의 위상에 올랐고, 이의 상징이 바로 ‘제네시스’였다. 제네시스는 가격이 아닌 품질로 ‘2009년 미국 최고의 차’에 선정된 최초의 현대차다. 현대차의 역사를 제네시스가 출시된 2008년 이전과 이후로 나누는 이유다. 제네시스 덕분에 현대차가 최고의 차를 만들 수 있는 기업이라는 것을 입증했다. 또한 제네시스는 정 회장이 현대차그룹 출범 직후 처음 만들어낸 완전 신차다. 모든 것을 쏟아부은 회심의 역작 제네시스는 정 회장의 얼굴이나 다름없다. 그런 제네시스가 욕을 먹을 줄은 현대차로서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고 강조했다.
# 현대차 상징은 포니가 아니다
정몽구 회장이 생각하는 현대차가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 주는 일화가 있다. 미래창조과학부가 발표한 ‘광복 70년 과학기술 대표성과 70선’에 ‘고유모델 국산차 포니’가 선정됐다. 현대차로서는 영광스러운 일일 터. 그런데 정작 현대차 분위기는 정반대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왜 아직까지 현대차를 말할 때 포니가 거론되는가. (정 회장은) 이걸 싫어한다. 포니 이후에 우리가 이뤄낸 자랑스러운 성과가 훨씬 많은데 여전히 과거를 이야기한다. 정 회장은 미래를 말하고 싶어하는데…. 포니가 국내 최초 고유모델이라는 상징성을 무시할 순 없지만 흘러간 과거다. 21세기 현대차는 다르다는 것을 주장하고 싶은데, 그게 바로 제네시스다. 제네시스를 통해 정 회장은 명품기업 현대차를 만들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2013년 10월 출시된 2세대인 ‘신형 제네시스’를 출시했다. 신형 제네시스를 통해 정 회장은 고로 건설을 통해 쇳물을 뽑아 최종 판재를 만드는 상·하공정 일관제철사업 체제를 완성한 현대제철과 현대차가 공동개발한 초고강력 철판을 적용해 자동차 전문 기업으로서의 위상도 과시하고자 했다. 정 회장이 무한애착을 갖고 만들어낸 신형 제네시스는 정말 좋은 차다. 하지만 정 회장의 의도와 달리 여론의 반발에 부딪쳤다. 초고강력 철판을 적용하고도 차체 중량은 더 무거워졌고, 연비도 나빠진 것에 대한 불만을 제기한 것이다. 이 비난은 정 회장이 자부심으로 강조했던 강판 문제로 확산돼 결국 수출용 모델과 내수용 모델의 충돌 테스트를 검토하게 된 것이다.
# 판매량 감소에 속수무책
여론의 비난이 끊임없이 제기되자 현대차는 기업 블로그와 언론 홍보를 통해 오해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하지만 노력에 비해 성과는 미미하다. 특히 자동차 판매량 감소는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올해 1~7월 현대차의 내수 판매량은 39만 6000여 대, 기아자동차는 29만여 대의 차량을 팔았다. 기아차는 전년 동기 대비 11.4% 증가한 반면 현대차는 3.5% 감소했다.
최근의 판매량 감소를 모델 풀체인지 시기 도래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라고 보기도 한다. 실제로 현대차는 신형 제네시스와 LF쏘나타에 이어 아반떼와 대형차인 에쿠스 신형 모델 출시를 앞두고 있다. 하지만 예전과 같은 신차 출시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국내외 경쟁사들의 견제는 물론이거니와 현대차에 대한 반감 여론 때문이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에게 닥친 문제는 차의 품질 때문은 아닌 것 같다. 소비자들과의 소통 문제가 더 크다. 현대차가 초기 진압을 등한시했던 악소문의 파장이 판매량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오해를 바로 잡아야 하는데 현 시점의 여론은 현대차에 전혀 우호적이지 않다. 현대차가 신형 제네시스의 수출용·내수용 모델의 충돌 테스트 실시를 고민 중에 있지만 이 테스트가 오히려 현대차에 대한 악감정을 키워낼 수 있다며 반대하는 임원들도 많다고 한다. ‘안티 현대차’ 이미지를 어떻게 개선하느냐를 놓고 현대차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해 7월 보도를 통해 현대차의 성공을 이끌어온 4가지 요인, 즉 △디자인·연비·상품성을 향상한 모델 다수를 단기간에 투입 △매력적인 상품을 파격적인 가격으로 제공하는 원가 경쟁력 △정몽구 현대차 그룹 회장의 리더십 △자유무역협정(FTA), 공적개발원조(ODA) 등 정부 정책과 연계한 경영전략이 한계에 도달했다고 진단했다. 특히 현대차의 기세에 눌려 전전긍긍했던 일본 자동차 업계가 “이제 위협이 아니다”고 단언하며, 정 회장으로부터 아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으로의 후계경영 구도가 가시화하는 오는 2018년이면 현대자동차의 경쟁력이 지속될지의 여부가 판가름 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정우 언론인
서른 살 ‘쏘나타’ 운명은? ‘잘난 아우 때문에…’ 5년전 악몽 또? 쏘나타가 또 다시 굴욕을 겪을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것도 남(경쟁사)이 아닌 동생에게서다. 완성차 업계에 따르면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는 지난 7월 2일과 15일 각각 신형모델을 출시한 쏘나타와 K5의 출시 첫 달 판매량은 구형 모델을 포함해 쏘나타 8380대, K5 6447대를 각각 기록했다. 2016년형 LF쏘나타가 폭발적인 신차 효과를 보이고 있는 K5 탓에 판매량이 기대를 밑돌고 있다. 판매량으로는 쏘나타가 앞섰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현대차로서는 웃을 수 없는 상황이다. 쏘나타의 판매량은 전년대비 16.5%, 전월대비 12.7% 감소한 수치로 3가지 엔진을 추가해 라인업을 강화한 효과가 거의 없었다. 신형 K5는 7월 판매량 6447대 중 신형 판매가 4200대에 달하며 5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폭발적인 신차효과를 발휘한 것으로 나타났다. K5의 판매량은 전년동기대비 62.4%, 전월대비로는 68.6% 각각 늘어난 수치로 지난해 7월 이후 최다 판매 실적이다. 현대차로선 5년 전 악몽이 되살아나는 듯한 위기감을 맞고 있다. 당시 ‘패밀리 스포츠카’를 표방하며 획기적인 디자인을 채용한 YF쏘나타는 출시 1년여 만에 기아차의 K5가 나오면서 판매량이 급감하는 상황을 맞이했다. 기아차 관계자는 “영업망은 기아차가 현대차의 3분의 1 수준밖에 안됐다. 그런데 우리 영업직원이 앉아서 고객을 맞은 것은 프라이드 이후 기아차가 처음이다. K5가 너무 잘 팔리니, 현대차그룹은 K5의 생산 확대에 제동을 걸었고, 마케팅 예산도 줄였다. 또한 YF쏘나타 차 값을 300만 원이나 할인해 주며 K5 고객을 빼앗아갔다. 올해 신형 K5가 나오자마자 예전과 비슷한 분위기가 재현되는 듯하니, 현대차는 긴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쏘나타는 올해로 탄생 30주년을 맞는 국내 최장수 자동차 브랜드다. 현대차가 오늘날의 지위에 오르기까지 가장 큰 기여를 한 모델이자, 한국 자동차산업의 역사를 대변한다. 한국사회를 이끌어가는 40~50대들에게 쏘나타는 자동차가 아니라 인생의 동반자로 여길 만큼 친숙한 존재다. 한국 중형차의 표준을 제시하는 쏘나타는, 그랜저, 제네시스, 에쿠스를 만들기 위해 현대차가 시도했던 수많은 도전을 적용했던 차종이기도 하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쏘나타를 탄생시킨 것은 아니지만 2000년 현대그룹에서 독립한 뒤 ‘품질경영’을 모토로 한 그의 경영철학이 가장 먼저 적용된 것이 5세대 모델인 ‘NF쏘나타’였다는 점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대목이다. 그런 쏘나타가 시장에서 밀리고 있다. 7세대 모델인 LF쏘나타는 전작의 화려한 디자인 대신 쏘나타의 고정팬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보수적인 디자인으로 복귀했다. 지난해 출시 후 내수 판매 1위에 오르면서 현대차의 전략은 먹히는 듯했다. 하지만 2세대 K5가 나오면서 상황은 또 다시 반전됐다. 그래서일까. 현대차그룹 내부에서는 쏘나타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30년 전 첫 출시 때는 상위 브랜드였던 쏘나타는 지금은 ‘에쿠스-제네시스-아슬란-그랜저-쏘나타-아반떼-베르나’로 이어지는 현대차 브랜드 가운데 하위권으로 내려앉았다. 명품 외제차들이 단일 브랜드로 평생을 이어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현대차 또한 쏘나타 브랜드를 바꾸지 않고 있다. 덕분에 ‘중형차=쏘나타’라는 강한 인식을 소비자들에게 심어준 것은 큰 성과다. 문제는 너무 오랫동안 입에 오르내리다 보니 ‘쏘나타’에 대한 싫증, 피로감 또한 크다는 것이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쏘나타의 이미지가 다소 낡아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아무래도 아버지 때부터 불리다보니 과거의 잔상이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고 설명했다. 이러다보니 현대차 내부에서 쏘나타를 대체할 새로운 중형차 브랜드 도입 필요성을 조심스레 제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현대차 내부에서는 “그동안 쌓아온 쏘나타 브랜드 인지도가 큰데 쉽게 버리겠느냐. 그런 일은 없다”고 펄쩍 뛰었다. 하지만 또 다른 현대차 관계자는 “쏘나타에 대한 소비자들의 매력도가 과거에 비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브랜드 교체 문제는 그래서 제기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