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40차례 넘게 찌른 ‘놈’ 토막시체 나눠 먹은 ‘놈’ 쇠망치로 21명 살해한 ‘놈’ 그때 그 공포가 스멀스멀
대법원에서 사형 확정 판결을 받고 아직 집행되지 않은 사형수 숫자다. 이들은 보복과 금전적 이익, 또는 성욕 충족을 위해 타인의 생명을 빼앗았다. 우리나라는 지난 1997년 ‘지존파’ 등 23명에 대한 사형 집행 이후 단 한 차례도 집행되지 않아 사실상 ‘사형 폐지 국가’로 분류돼 사형제 존폐에 대한 논란이 이어져 왔다. 최근 사형수가 한 명 더 늘면서 이 논란이 재점화된 가운데 현재 사형 집행 대기 중인 국내 사형수들의 면면을 뜯어본다.
최근 잔혹범죄가 늘어나면서 다시 사형제 존폐 논란이 일고 있다. 연합뉴스
헤어진 여자친구의 부모를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장 아무개 씨(25)의 사형이 지난 8월 28일 확정됐다. 이는 지난 2013년 1월 강화도 해병대 총기 난사 사건으로 동료 4명을 살해한 김민찬(23)의 사형이 선고된 이후 2년 7개월 만에 처음 나온 확정 판결이다.
법무부와 국방부에 따르면, 장 씨의 사형이 확정되면서 국내 교정시설에 수감된 사형수가 총 61명으로 늘었다. 이 가운데 58명은 일반인이며 나머지 3명은 군 사형수다. 이들은 사형집행시설이 있는 교정시설에 분산 수감돼 있다. 서울·부산 구치소에 22명, 대구 교도소에 11명, 대전·광주·부산 교도소에 25명, 국군교도소에 3명이다.
연령대별로는 40대 사형수가 28명으로 가장 많았고, 30대와 50대가 각각 10명으로 그 뒤를 이었다. 60대는 7명, 70대는 2명이었다. 20대는 앞서의 장 씨가 유일했다. 이들의 평균 수감기간은 약 13.9년이다.
최고령 사형수는 오종근(77)이다. 어부였던 그는 지난 2007년 8월 전남 보성군으로 여행 온 10대 남녀 2명을 자신의 배에 태운 뒤, 여성을 성추행하기 위해 남자를 먼저 바다로 밀어 살해하고 저항하는 여성도 빠뜨려 죽게 했다. 그는 같은 해 9월에도 여대생 2명을 같은 방법으로 살해했다. 최연소 사형수는 지난 2011년 해병대 해안 소초에서 총기를 난사해 장병 4명을 살해한 김민찬(23)이다.
원언식(58)은 최장기 수감자다. 24년째 광주교도소에 구금돼 있다. 원언식은 지난 1992년 10월 원주의 한 종교시설에 불을 질러 15명을 살해했다. 당시 공무원이었던 그는 종교에 빠져 가정을 등한시한다는 이유로 아내를 찾아 나섰다가 홧김에 불을 질렀다.
최장기 수감자 원언식부터 최근 사형이 확정된 장 씨까지 총 61명의 범행 내용을 보면, 시간이 갈수록 범행이 잔혹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범행 동기도 금전적 이익을 거쳐 사이코패스형으로 진화(?)하기도 했다.
금전적 이익을 노리고 범행을 저지른 사형수는 거액의 유산을 상속받으려 자신의 부모를 살해한 박한상이 대표적이다. 박한상 사건은 지난 1994년 5월 19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 고급 주택에 화재가 발생하면서부터 시작됐다. 당시 진화 작업 중인 소방대원들 옆에서 “부모님이 안에 계시다”며 구해 달라고 울부짖는 젊은 남자가 있었다. 그는 화재 신고자이자 숨진 부부의 외동아들이었다. 문제는 화재가 모두 진화된 뒤 불거졌다. 부부의 온몸에 40군데가 넘는 칼에 찔린 상처가 있었고, 주변 바닥이 피로 물들어 있었던 것. 단순 화재 사건이 살인 방화 사건으로 바뀌었다.
사망한 박한상의 아버지는 한약재상으로 대한한약협회 서울지부장을 맡고 있었고 재산이 100억 원대에 이르는 부자였다. 당시 경찰은 화상을 입은 채 화재 신고를 하고 부모님을 살려 달라고 오열하던 박한상을 용의자로 쉽게 지목하지 못했다. 소식을 듣고 달려 온 박한상의 고모 등 친척들도 화상 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 중인 그를 감쌌다. 박한상에 대한 직접 조사를 뒤로 미룬 형사들은 주변 수사를 통해 돈 문제와 방탕한 생활로 부모와 갈등을 빚던 중이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후 박한상이 입원한 병원의 간호사에게서 “박 씨가 사건 직후 병원에 도착했을 때 상처가 없는데도 머리에서 피가 많이 흘렀다” “박 씨의 발목에 물린 듯한 이빨 자국이 선명하게 있었다”는 진술도 확보했다.
경찰은 박한상에게 정황 증거를 제시해 범행 일체를 자백받았지만, 그는 검찰로 송치되면서부터 돌연 범행을 부인했다. 박한상은 자신의 자백은 경찰의 강압과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이라고 주장했고, 사회 일각에서도 “가만히 있어도 수백억 원을 상속받을 엘리트 유학생이 그런 범행을 했을 리가 없다”며 동정 여론이 일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박한상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지난 1995년 8월 22일 사형이 확정돼 현재 대구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이 사건은 영화 <공공의 적>의 모티브가 됐다.
사기로 수억 원을 가로챈 뒤 일가족을 살해한 사형수도 있다. 서울대 명예교수, 미국 벤처사업가로 위장한 정운하가 그 장본인. 그는 지난 2002년 3월 경기 양평군 중미산 휴양림 방갈로 안에서 부부와 그들의 자녀 2명을 살해하고 불을 질렀다. 당시 경찰은 빚에 쪼들린 가족의 동반 자살로 여겼으나 ‘자살할 이유가 없다’는 주변 진술을 토대로 수사를 확대했고, 용의자 정운하를 검거했다. 그는 신분을 위장하고 피해자에게 투자금 명목으로 2억 원을 가로챈 뒤, 사기 행각을 감추려 피해자 일가족을 망치와 칼로 살해하고 방갈로에 불을 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2000년에는 ‘사이코패스 살인’이 처음 부각됐다. 사건은 지난 2000년 10월 25일 전북 고창군의 한 마을에서부터 시작됐다. 하교 중이던 초등학교 5학년 여학생이 사라진 것. 오후 6시 10분께 강아지 인형 두 개를 산 뒤 친구와 나눠 들고 헤어졌다던 아이는 밤이 깊도록 돌아올 줄 몰랐다. 다음날 아침, 아이는 인근 야산의 무덤 위에 발가벗겨진 채 십자가 형태로 누워 숨져 있었다. 경찰은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발자국과 모발, 체모를 발견했지만 용의자를 찾지 못했다.
첫 사건 발생 55일 뒤, 귀가하던 한 여고생과 남동생이 동시에 사라졌다. 남동생은 운동화 끈으로 손이 묶이고 목이 졸려 숨진 채 발견됐다. 여고생은 소나무 밑동에 손이 묶여 있었고, 입고 있던 치마가 얼굴을 덮고 있었다. 입에는 재갈이 물려 있었으며 온몸이 흉기에 찔려 있었다. 경찰은 주변 민가를 수색한 끝에 용의자 김해선을 검거했다. 모 대학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김해선의 범행으로 ‘사이코패스형 성욕살인’이 조명받는 계기가 됐다. 이후 등장한 강호순 등 연쇄살인범들이 김해선과 같은 부류”라고 분석했다.
살인죄로 복역한 뒤 출소해 또다시 살인 범죄를 저지른 사형수도 있다. 부산, 울산과 충남 천안을 돌며 23건의 강도사건을 일으켜 9명을 살해하고 8명에게 중상을 입힌 혐의로 지난 2000년 사형확정 선고를 받은 정두영이 대표적이다. 그는 지난 1987년 18세 때 처음 살인을 저질러 11년 동안 복역했다. 출소 직후 절도로 다시 6개월을 복역한 뒤, 지난 1999년 3월 출소 이후 본격적으로 강도 살인을 시작했다.
그는 온몸을 밟아 장기파열로 죽게 하거나, 머리를 집중적으로 공격해 살해하는 등 과도한 공격성을 보였다. 당시 정두영은 “10억 원을 모아 성인 오락실이나 실내 야구장을 차려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정두영은 지난 2005년 사형 확정 판결을 받은 유영철이 자신의 ‘롤모델’이라고 밝혀 재조명되기도 했다. 정두영은 범행 도구로 야구방망이 등 둔기를 사용했고 유영철도 그를 따라 쇠망치와 같은 둔기로 범행을 저질렀다.
지난 1989년 살인죄로 징역 12년을 선고받은 이순철은 10년 만에 가석방돼 사회로 돌아왔다. 과거 소년원에서 만난 친구들과 ‘영웅파’라는 조직을 결성해 두목이 된 그는 집 근처 편의점 앞에서 조직원들과 술을 나눠 마시다 조직원이 불손한 행동을 하자 합숙소로 끌고 가 폭행했다. 이 조직원이 정신을 잃자 이순철은 범행을 숨기기 위해 칼로 찔러 살해했다. 그는 피해자의 시신을 수백 개로 토막낸 뒤 “범행을 누설하면 죽인다”며 다른 조직원들에게 장기 일부를 나눠 먹게 했다. 이순철은 지난 2000년 사형 확정 판결을 받았다.
법무부에 따르면 현재 사형수 중 가장 많은 피해자를 낸 이는 유영철이다. 그는 지난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서울 신사동 명예교수 부부와 출장 마사지 여성 등 21명을 쇠망치로 때려 살해했다. 앞서의 최장기 수감자 원언식은 15명의 희생자를 냈다. 부녀자와 초등학생 13명을 연쇄 살해한 정남규는 지난 2009년 말 구치소 안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
‘아침에 죽고 저녁에 사는’ 그들의 일상 사형수 한 명 먹여살리는 돈 ‘2000만원’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을 보면 사형수는 원칙적으로는 독방을 사용한다. 교정시설 관계자들에 따르면 현재 서울 및 부산구치소에 있는 22명의 사형수는 모두 3.3㎡(약 1평)의 독방에서 지내고 있다. 반면 대구교도소에 있는 11명의 사형수는 다른 죄수들과 한 방에 있다. 대전·광주 교도소 등은 독방을 사용하는 사형수와 혼방을 사용하는 사형수가 섞여 있다. 보통 사형수는 독방을 쓰지만 작업을 위해 혼방을 쓰는 경우도 있다. 한 교정시설 관계자는 “보통 사형수는 독방을 쓰지만, 일부는 작업을 위해서 혼방을 쓰는 경우가 있다”며 “수년 전에 구치소에 구금 중이던 일부 사형수가 스스로 ‘무위도식 하기보다는 작업을 하고 싶다’는 의지를 밝혀 작업장이 있는 교도소로 옮겨오기도 했다. 이들은 목공이나 자동차 정비 등 기술을 배우고 싶어 했다”고 말했다. 다른 교정시설 관계자는 “지난 2008년 법이 개정되면서 희망자에 한해 사형수도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작업 시간은 하루 5~6시간, 종류에 따라 1600~8000원을 받는다”고 전했다. 사형수와 면담, 종교 활동을 하고 있는 한 교정위원은 “작업을 하지 않는 사형수는 하루 1시간의 운동시간을 제외하면 독방에서만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서울구치소의 경우 운동도 약 30m의 좁은 원형 운동장에서 혼자 해야 한다. 교도관이 2층에서 지켜본다. 일부 사형수는 운동장 옆 화단에서 채소나 꽃을 가꾸고 있다”고 전했다. 사형수들이 접견을 제외하고 외부인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는 종교 상담 시간이다. 앞서의 교정위원은 “사형수들이 종교를 선택하면 일주일에 한 번, 5시간 정도 교도관이 입회한 가운데 종교인들과 만나 기도를 하고 면담도 한다. 과거에는 외부인과 대화도 하고 간식도 먹을 수 있어 종교를 몇 번 바꾼 사형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강호순은 최근 천주교 교리를 공부 중이라고 한다. 또 다른 교정위원은 “강호순이 자기 생명은 하찮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아직 마음이 닫혀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유영철·박한상은 종교를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교정시설 관계자는 “사형수의 접견은 한 달에 네 번, 각 30분 이내로 제한된다”고 밝혔다. 앞서의 교정위원은 “일부 사형수는 친어머니를 제외하면 가족조차 인연을 끊는 경우가 많다. 처음 수감됐을 때는 자주 찾아오다가, 발길이 점점 뜸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한 사형수에게 들어가는 예산은 연간 2000만 원이 넘는다. 법무부의 ‘2015년도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을 보면, 수용자의 식비와 피복, 의료비 등 수용자 관리비용에 교정시설 공공요금 및 교화 프로그램에 등에 들어가는 금액 등을 모두 합산하면 교정시설 수용자 1인당 연간 2300만~2500만 원의 예산이 들어간다. 사형수와 일반 수형자는 특별한 구분 없이 비슷한 처우를 받는다. 사형수들은 바깥에서 흉악 범죄가 일어나거나 사형제 관련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공포와 죄의식을 동시에 느낀다고 한다. ‘사형수는 아침에 죽고 저녁에 산다’는 말이 있다. 밤에 잠들 때만 마음이 안정이 된다는 의미라고 한다. [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