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지사는 연봉 1억에 차관급…하는 일은 애매하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이북5도청(도청)을 처음으로 만들었던 때만 해도 이북5도지사는 명예직에 가까웠다. 도청은 지난 1993년 서울 종로구 구기동 청사가 지어질 때까지는 변변한 청사 없이 운영됐다.
이북5도청의 올해 예산 84억 원은 대부분 인건비와 기본운영비로 쓰인다. 사진은 종로구 구기동의 이북5도청사 건물.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도청이 번듯한 공공기관으로 거듭나게 된 계기는 지난 198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8년 대선에서 홍성철 황해도민회장이 당시 노태우 후보를 적극 지원했고, 노 후보는 대통령이 된 후 이에 대한 보답으로 청사 건립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홍 회장은 노태우 전 대통령 초대 비서실장을 지내기도 했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이북5도지사는 차관급 별정직 공무원이다. 연봉은 1억 원이 넘고 관용차는 물론이고 개인비서와 운전기사까지 있다. 또 수천만 원이 넘는 업무추진비도 사용할 수 있다. <일요신문>이 업무추진비 사용 내역을 살펴본 결과 특별한 규정은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일례로 지난 2월 설 명절 격려품 구입 목적으로 13만 원가량을 사용한 도지사가 있는가 하면 267만 원을 사용한 도지사도 있었다. 도지사들은 과거 업무추진비를 주말에 집행하거나 현금으로 인출해 다른 용도로 사용했다가 적발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북5도청은 명예 시장·군수·읍·면·동장도 임명하고 있지만 대부분 행정경험이 없는 사람들이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도청은 이북 지역 명예 시장·군수와 명예 읍·면·동장도 임명하고 있다. 현재 명예 시장·군수는 92명이고 명예 읍·면·동장은 911명이다. 시장·군수는 27만 원, 읍·면·동장은 12만 원을 매달 수당으로 지급받는다. 이들의 수당으로 매달 지급되는 돈만 1억 3000만 원이 넘는다. 도청이 명예 시장 등을 임명하는 이유는 통일이 되면 이들을 북한으로 파견해 해당 지역 행정업무를 맡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행정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으로 전해진다.
명예 시장 제도의 당초 목적이 실현이 어렵다는 것은 도청 측도 인정하고 있다. 실제로 이들이 하는 일은 민간단체 차원의 친목도모 활동에 그치고 있으며 정기적인 회의에도 불참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도청 측은 “이북5도청이 처음 설립됐을 당시에는 그런 목적이 있었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현재는 이북5도청의 주요 목적이 이북도민이나 탈북자에 대한 지원과 관리로 바뀐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도지사들은 명예 시장 등과 비교해 200배가 넘는 연봉을 받고 있지만 하는 일은 별반 차이가 없다. 지난 2월 황해도의 일정을 살펴보면 도지사 공식 일정이 있는 날은 단 4일뿐이었다. 공식 일정이라고 해봐야 이북5도 탁구대회, 망향 경모제, 신년교례회 등 모두 행사 위주다. 도청 측은 “지사들이 공식 일정 외에도 다양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면서 “일정이 없어도 청사에 매일 출근해 업무를 본다”고 설명했다.
이북5도청의 주요 목적은 사실상 이북도민이나 탈북자 관리다. 사진은 도청 내 북한이탈주민지원단 사무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그런데 황해도지사의 경우 지난 2월 21일부터 28일까지 일주일가량 호주와 뉴질랜드로 해외 출장을 다녀온 점이 눈길을 끌었다. 명예직에 가까운 황해도지사가 난데없이 해외 출장을 다녀온 이유는 무엇일까. 도청 측에 확인해보니 도지사들은 해외에 조직되어 있는 이북5도민회를 시찰하려는 목적으로 매년 한 명씩 돌아가며 해외 출장을 다녀오고 있었다.
하지만 해외에 조직되어 있는 이북5도민회는 친목 성격의 단체에 가깝다. 이들을 시찰하기 위해 매년 수천만 원의 예산을 사용해 현지 시찰을 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점이 드는 대목이다. 사실상 외유성 해외 일정 아니냐는 지적이다.
도청이 관리하는 도민 수는 모두 합해 지난해 기준으로 8500명 정도다. 그런데 이들을 관리하는 도청 공무원은 44명으로, 공무원 1인당 담당하는 주민 수는 약 193명이다. 경기도청 공무원이 1인당 약 4000명의 주민을 담당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20분의 1 수준이다.
그동안 도지사 자리가 대통령 측근 낙하산용으로 이용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끊이지 않았다. 지난 2014년 임명된 한상순 황해도지사는 2012년 새누리당 대선 경선 때 박근혜 대통령 후보 기독교 담당 특보를 지냈던 인물이다. 같은 날 임명된 김덕순 함경남도지사는 박 대통령이 이사장으로 있던 한국문화재단 이사로 활동했던 인물이다. 나머지 도지사들도 대부분 친정부 성향 인사들이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