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사는 사고치고, 감리단은 덮어주고…’
검찰은 지난달 특정 건설 용역업체가 원주~강릉 공사 입찰 과정에서 10억 원 규모의 특혜 계약을 한 정황을 잡고 철도시설공단 강원본부 등을 압수수색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계 없다. 사진출처=철도시설공단
철도업계 고위 관계자는 “그간 추진단 쪽 조사관이 원주~강릉 사업에서 불거진 비리 의혹을 집중 조사했다”며 “정부 고위부처가 내놓을 조사 결과에 대한 관심이 높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추진단 측 담당 팀장은 9월 6일 “철도만이 아닌 SOC 사업 전반에 대한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면서도 “원주~강릉 건과 관련해 특정 업체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현장 실사 등을 통해 공사비가 부풀려지거나 설계와 다르게 시공된 곳은 없는지 조사했다. 또 ‘예산 낭비를 사전에 막겠다’는 취지이니만큼 문제가 생긴 부분들은 실시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경찰은 9월 7일 원주~강릉 8공구에서 설계를 임의 변경해 부실 시공한 혐의(건설기술진흥법 위반)로 시공사인 현대건설과 감리단인 동명기술공단 관계자 15명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대전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에 따르면 이들은 원주~강릉 8공구 매산터널(123m 구간) 굴착 과정에서 측량 오류로 터널 중심을 이동시켜 시공한 뒤 이를 은폐하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추진단은 자체 수사권이 없기 때문에 수사가 필요한 사항은 담당 기관(검찰 또는 경찰)에 이첩하거나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철도시설공단 강원본부 관계자는 “문제가 된 터널공사는 현대건설이 재시공해 안전성을 검증받았다”며 “이외에 의혹이 더 나올 것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은 지난 8월 특정 건설 용역업체가 원주~강릉 공사 입찰 과정에서 10억 원 규모의 특혜 계약을 한 정황을 잡고 강원본부 등을 압수수색했다. 철도업계 안팎에선 이 사건을 시작으로 또 다른 건설 관련 업체가 수사망에 걸려드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이와 관련, 앞서의 철도업계 관계자는 “원주~강릉 사업에 참여한 건설 용역업체 K 사도 최근 압수수색을 받았다”며 “수사의 파장이 커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K 사는 철도 설계·감리업체 가운데 1~2위를 다투는 기업으로 지난 철피아 수사 당시 ‘특정 철도인맥을 동원해 관련 시장을 독점해왔다’는 의혹을 받은 바 있다. K 사 측은 압수수색 사실 여부에 대한 답변을 거부했다.
지난 1월 추진단은 ‘부패방지 4대 백신 프로젝트’를 발표하면서 철도시설공단 개혁을 주요 과제로 꼽았다. 원주~강릉 사업의 발주처인 철도시설공단을 겨냥한 집중 조사가 이미 예견돼 있던 셈이다. 당시 추진단은 철도시설공단의 문제점으로 ▲독과점 품목의 수의계약 구매 ▲규격화되지 않은 설계·시방서 등을 꼽았다. 원주~강릉 사업에서도 이 같은 문제점은 적지 않게 노출된다.
지난 철피아 수사 당시 1000억 원대 일감 몰아주기 의혹이 제기된 삼표그룹 계열사 삼표이앤씨는 여전히 철도 핵심용품을 사실상 독점 공급하고 있다. 철도시설공단이 작성한 ‘궤도용품 납품 현황’ 등에 따르면 삼표이앤씨는 원주~강릉 1공구와 6공구에 분기기 29개를 74억여 원에 납품했다. 경쟁업체의 납품 실적은 3억여 원에 그쳤다.
원주~강릉 공구 중인 학산고가 전경.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사진출처=철도시설공단
외국계 P 사가 공급한 일부 철도용품이 시방서 기준에 미달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함께 제기된다. 레일에 들어간 P 사의 부품 중 일부 항목(절연블럭) 성능 실험 결과에 문제(수치 미달)가 있다는 것이다. 레일 밑에 타설되는 체결장치 등에 문제가 생기면 사고 위험률은 그만큼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철도시설공단 측은 “관련 업무 담당 간부(A 씨)에게 직접 해명에 응하라고 요청했지만 ‘기준과 원칙대로 일을 처리했다’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이해해 달라”고 답했다. P 사 역시 연락처를 남겼지만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또 다른 철도용품(완충재) 납품 과정에서도 규격화되지 않은 시방서의 해석을 놓고 업체 간 각기 다른 방식의 성능 시험을 거친 것으로 전해진다. 시방서에 따르면 14일 동안 관련 ‘샘플’에 지속적인 압력(60 N/㎟)을 가해야 하는데 중간에 압력 강도를 낮췄다는 것이다.
아울러 납품업체 D 사는 입찰 과정에서 경쟁업체에 비해 높은 가격을 써냈으나 시공사가 관련 제품을 납품받은 것으로 알려져 그 배경을 놓고 여러 추측이 불거지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D 사 관계자는 “자체 견적을 내고 정당하게 입찰에 응했다”며 일각에서 제기한 특혜 의혹을 부인했다.
철도 시장은 신규 업체가 진입하기 어려운 폐쇄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 철도업계 다른 관계자는 ‘전문가가 아니면 외부에서 내부 메커니즘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개별 원주~강릉 사업뿐만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를 함께 짚어야 한다는 것이다. 2012~2014년 철도시설공단이 외부 입찰을 진행한 부품·용역 규모는 12조 원에 달한다. 정부 차원의 원주~강릉 비리 조사와 공단 개혁 움직임이 철도 시장에 어떤 파장을 미칠지 주목된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
정부합동부패척결추진단은 어떤 곳? 세월호 참사 이후 신설 국무조정실 산하 정부합동부패척결추진단은 세월호 참사 이후 “범정부적 부패척결의 두뇌 역할을 하겠다”며 신설된 상임기구다. 2014년 7월 설립 당시 법무부, 검찰청, 국민권익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경찰청, 국세청, 관세청 등에서 35명의 공무원이 파견돼 4개팀으로 조직을 구성했다. 단장은 국무총리 직속 국무1차장(차관급)이 겸임하고, 부단장은 지명된 차장검사가 맡는다. 주된 업무는 부정부패 척결을 위한 총괄적인 기획·분석 등을 추진하고, 각 정부 기관의 협조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단, 별도의 수사권은 없기 때문에 분야별 비리 실태 파악, 공직감찰 등 조사기구 본연의 업무에 충실한 편이다. 이 과정에서 비리 첩보가 포착되면 검찰 등 담당 기관에 통보하도록 돼 있다. 실질적인 수사 지휘보다 정부의 부패 척결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관철시키는 ‘컨트롤타워’에 가깝다. [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