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벽 3개 중 2개 넘어... ‘삐삐~’ 센서 울려도 위치 파악 우왕좌왕
법무부와 대전교도소에 따르면 지난 8월 8일 오전 7시쯤 수감 중이던 정두영은 탈옥을 감행했다. 정두영은 교도소에 위치한 위탁공장 내부에 숨겨둔 사다리를 모포에 감싼 뒤 밖으로 달아났다. 담벼락으로 향한 정두영은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사다리를 꺼내 담을 넘기 시작했다.
정두영이 만든 사다리 재료와 유사한 플라스틱 파이프와 연결 조인트.
정두영은 관문 3개 중 2개를 손쉽게 통과했다. 그는 담요로 1차 철조망 위 가시 부분을 덮어 별다른 상해 없이 2차 관문에 도달했다. 사다리로 2차 담벽을 넘으며 설치된 센서에 노출됐지만 교도소의 방대한 규모에 교도관들은 울리는 센서 위치 파악에만 7~8분을 사용했다. 대전교도소는 가로 약 800m, 세로 약 400m로 면적만 40만 7610㎡에 건물 수는 50개에 육박한다. 결국 사다리가 3차 담벼락 앞에서 부숴져 더 이상을 담을 넘지 못하게 된 뒤에야 교도관은 정두영을 붙잡을 수 있었다.
정두영 탈옥 사건으로 대전교도소의 관리인원 부족과 시설 노후화가 수면 위에 올랐다. 수용가능인원은 서울구치소 다음으로 가장 큰 2060명이다. 문제는 교도소 규모에 비해 넘치는 수감자 수다. 2014년 기준으로 대전교도소의 수감자는 2800명을 넘어서 정원 대비 35%가량 포화 상태로 알려졌다. 또한 정두영 탈옥 시도 당시 관리감독자는 1명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대전교도소의 교정직 공무원 수는 600~700명 사이로 추정된다.
게다가 1984년 11월에 세워져 시설 노후화도 심각한 것으로 예상된다. 2차 담벽을 넘을 때 센서가 울렸으나 정두영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려 감시 체계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와 관련 대전교도소 관계자는 “정두영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 시설을 점검하고 경비 시설을 보완했다. 지금은 알람이 울릴 경우 즉각 위치를 찾아낼 수 있도록 조치했다. 담당 공무원은 징계 처리했다”며 “자세한 수감 인원과 교정직 공무원 수는 기밀사항이라 공개할 수 없다. 또한 사건이 발생한 위치, 교도소의 구조 등은 민감한 사항이라 말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대전교도소는 정두영에게 ‘금치’ 조치를 내렸다. 금치는 교도소 안 징벌 가운데 가장 높은 수위로 3.3㎡(약 1평) 정도 되는 독방에 일정 기간 감금하는 조치다. 최장 기간은 2개월로 면회나 외부활동은 물론 서신 교환, 전화통화, 대중매체 이용도 불가능하다. 대전교도소 관계자는 금치 기간까진 공개하지 않았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
정두영은 누구? 9명 살인 사형수…유영철의 롤모델 정두영은 1999년 6월부터 2000년 4월까지 부산과 경남, 대전, 천안 등지에서 9명을 살해하고 10명에게 중·경상을 입힌 연쇄 살인범이다. 최초 살인은 지난 198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18살이었던 그는 검문 중인 경찰을 방범대원을 살해한 뒤 11년간 복역했다. 1998년 출소하고서 연쇄살인을 시작했다. 주로 금품을 훔치다 발각되면 준비했던 흉기로 목격자를 잔인하게 살해했다. 경찰 조사과정에서 “내 속에 악마가 있었다”는 발언으로 전국민에게 충격을 안겨줬다. 2000년 12월 부산고등법원에서 사형을 선고 받은 뒤 상고를 포기하고 현재 대전교도소에 사형수로 수감돼 있다. 2000년에 심리 조사에서 사이코 패스로 판정 났으며 정두영은 유영철의 모델로 알려졌다.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21명 살해한 유영철은 검찰 조사에서 정두영의 범죄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