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라우 ‘아트 토이’, 한국까지 배송된 사연
20일 방영된 <안투라지> 7회 사이먼 도미닉이 카메오로 출연한 별장 신에서 마이클 라우의 아트 토이 20여 개가 화면에 잡혔다. 아트 토이는 별장 안 소파 뒤에 나란히 서있었다. 짧은 시간 노출됐지만 마이클 라우 아트 토이의 독특함은 쉽게 눈에 띄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마이클 라우의 작품이 어떻게 <안투라지> 소품으로 쓰인 것일까.
사이먼 도미닉 별장에 배치된 마이클 라우 아트 토이. 사진=방송 캡처
보통 예술 작품이나 저작권이 명확한 캐릭터 상품을 방송으로 노출할 경우 제작자는 해당 소품 원작자에게 방송 허락을 받아야 한다. 작가가 무심코 쓴 내용이 시청자에겐 스치는 장면이지만 제작진은 해당 소품 원작자를 찾아 헤맨다. <안투라지> 제작진이 과연 저렇게 작은 부분까지 원작자를 찾아 허락을 받았는지 궁금했던 <일요신문>은 결국 마이클 라우에게 전자우편을 보내 인터뷰를 요청했다. 주연 5인방의 캐릭터가 뚜렷하게 나타나도록 세심하게 배치한 소품 이면에는 스쳐가는 순간조차 놓치지 않으려는 제작진의 노고가 숨어있었다.
─ 인터뷰 응해줘서 고맙다. 당신의 작품이 한국 드라마에서 소개되는 건 처음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나라 드라마에서 당신의 작품이 이렇게 나온 적 있었나.
“난 주로 전시회를 열어 내 작품을 알려 왔다. 도쿄, 런던, 베이징, 파리, LA 등 전세계를 돌며 아트 토이 전시회를 열었다. 한국에서는 2013년에 세종문화회관에서 처음 한국 관객과 만났다.
내 작품이 전세계를 통틀어 ‘드라마’에 소개되는 건 처음있는 일이다. 한국 TV 프로그램도 물론 처음이라 기대된다. 예전에 네덜란드와 일본 TV 광고는 해본 적 있긴 하다. 영화에서도 종종 내 작품이 나온 걸 봤다.”
─ 어떤 영화였나?
“잘 기억나지 않는다.”
─ 보통 누군가의 작품을 영상에 쓸 때는 작품 원작자에게 촬영 허락을 받는 게 맞다. 당시 영화 제작진이 당신의 의사를 물은 적 있나.
“그 영화 제작진과는 연락한 적 없다. 허락을 받고 쓰는 게 맞지 않겠나. 영화든 뭐든 타인의 작품을 사용할 땐 만든 사람에게 의사를 묻는 게 먼저라고 생각한다.”
─ <안투라지>는 허락 받았나. <안투라지>에 참여한 계기는 무엇이었나.
“<안투라지> 제작진이 뜬금 없이 전자우편을 보내 와 ‘HBO에서 방영된 미국 드라마 <안투라지>를 한국 버전으로 촬영할 예정이다. 배경으로 당신의 피규어를 사용하고 싶다. 혹시 가능하다면 빌려줄 수 있나’라는 의사를 보내왔다. 이런 식으로 요청이 온 건 처음이라 조금 신기했다. 솔직히 말하면 잠시 ‘사기꾼 아닐까’란 의심을 했다. 결국 안투라지 제작진이 맞더라(웃음).”
<안투라지> 제작진은 마이클 라우가 상자에 작품 30개를 넣어 보내왔다고 밝혔다. <안투라지> 담당 함승훈 CJ 스튜디오 드래곤 프로듀서는 “제작부에서 같이 일하던 김윤호라는 친구에게 ‘대본에 나오는 작품인데 혹시 어디 가서든 구해올 수 있겠냐’고 몇 번 물었다. 며칠 뒤 그 친구가 홍콩발 택배 상자 큰 거 하나를 받아오더니 ’배송비 착불입니다. 돈 주세요‘라고 하더라. 나도 사실 어떻게 마이클 라우 작품이 한국까지 온지 모른다. 일단 대본에 써있으면 무조건 대본 그대로 구현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마이클 라우가 손수 포장해 <안투라지> 제작진에 보내온 아트 토이. 사진=김윤호 제공
─ <안투라지>를 전부터 알고 있었나?
“미국에서 방영한 <안투라지> 원작은 들어서 대충 알고 있었다. TV랑 별로 친하지 않아서 내용을 구체적으로 알진 못했다. 이번에 <안투라지> 한국 버전 프로듀서가 내용을 자세히 소개해줘서 알게 됐다. 흥미로운 기회라 생각했다.”
─ <안투라지>로 어떤 걸 기대하나?
“더 많은 사람들이 <안투라지>에 나온 내 작품을 보고 ’아트 토이‘ 혹은 ’디자이너 토이‘라는 개념을 더 많이 알아갔으면 좋겠다. TV는 다양한 사람에게 널리 퍼질 수 있는 전파력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마이클 라우. 사진=마이클 라우 제공
─ ’아트 토이‘와 ’디자이너 토이‘ 개념은 조금 생소하다. 설명해달라.
“난 내 작품을 아트 토이라고 부른다. 내 작품 하나 하나가 단순한 장남감이라기 보다는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디자이너 토이도 비슷한 의미라고 보면 된다.
아트 토이나 디자이너 토이는 일단 아티스트와 디자이너가 한정된 수량만 직접 제작한다는 점에서 단순히 액션 피규어와 다르다. 가격대 역시 액션 피규어보다 높으며 어른에게 어울린다. 가지고 노는 물건이라기보다는 예술품처럼 수집과 장식의 목적을 가진다.”
─ 아트 토이와 디자이너 토이가 그런 의미를 지녔다는 걸 알지 못했다. ’피규어‘라는 단어를 사용한 부분에 대해서 기분이 나빴다면 사과한다. 2013년에 세종문화회관에서 전시회를 열었는데 어떻게 연이 닿았나. 앞으로 한국에서 전시회 계획은 없나.
“한국은 늘 가고 싶은 나라다. 전시회도 당연히 또 열고 싶다. 아트 토이 전시회를 넘어 ’마이클 라우의 세계‘라는 콘셉트로 전시회를 가져 보고싶다. 순수 미술과 조각 등 내 모든 작품을 한 번 소개할 기회가 오면 좋겠다.
이정용 가나아트센터 대표와 친하다. 아트 토이 전시회뿐만 아니라 다른 프로젝트도 재미나게 진행했다. 예전 홍콩 타임 스퀘어에서 전시회를 했을 때 이 센터장도 홍콩에 있었다. 이 센터장이 내 작품을 마음에 들어해서 타임 스퀘어 관계자 소개로 만났다. 그 뒤로 인연이 이어져 SM엔터테인먼트와 기아자동차 프로젝트에도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마이클 라우의 작품. 사진=마이클 라우 제공
─ 시간 내줘서 고맙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독자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가까운 시일 안에 새로운 작품으로 찾아뵙고 싶다. 뭐든 미칠 수 있는 것에 미쳐 살자!”
인터뷰가 끝날 무렵 마이클 라우에게 주인공 5명 사진을 건네며 각 캐릭터의 성격을 설명한 뒤 질문을 하나 추가했다. “이런 인터뷰에서 한국 언론이 주로 하는 질문 하나가 있다. 여기에서 누가 가장 잘생겼다고 생각하나. 또 자신은 누구의 성격을 가장 많이 닮았나”라고 물었다.
마이클 라우는 “나는 누가 더 잘생기고 예쁜지 평가하지 않는다. ’나‘라는 한 개인의 기준으로 누군가를 평가할 순 없다. 모든 사람은 각기 다른 외모와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진 그의 말은 몽롱했다. “각자의 개성은 모두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
‘아트 토이의 창시자’, 마이클 라우는 누구? 홍콩 출신의 아트 토이 아티스트 마이클 라우(46)는 1992년 퍼스트 인스티튜트 오브 아트 앤 디자인을 졸업한 뒤 화가 겸 쇼윈도 디스플레이 디자이너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1998년 홍콩 잡지에 ‘가드너’라는 만화를 연재하며 유명세를 떨친 뒤 해당 만화 캐릭터를 아트 토이로 만들어 ‘아트 토이의 창시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아트 토이는 즉각 완구업계와 스케이트 보드 업계, 스트리트 패션업계 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힙합신에도 자주 인용되기 시작했다. 곧 아트 토이는 하나의 산업군으로 발전했다. 베어 브릭과 스티키 몬스터 랩 등도 아트 토이의 한 종류로 불린다.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아트 토이 베어 브릭. 사진=베어 브릭 홈페이지 캡처 마이클 라우는 세계 주요 도시에서 전시회를 열며 성공을 이어왔다. 나이키와 소니, 르꼬끄 스포르티브 등 세계적인 브랜드뿐만 아니라 국내 기업과도 협업했다. K-팝에 대한 관심으로 동방신기 관련 작품을 코엑스에서 선보이기도 했고 기아자동차 전시행사 역시 참여했다. 2004년 라우는 홍콩 쿼리 베이에 ‘마이클 라우 갤러리’를 열었다. 2008년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에서는 마이클 라우를 ‘도시 유행을 이끄는 20인’에 선정한 바 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