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성보험 비과세 확대시키겠다더니 축소안 통과…‘정부와 공감대’ 혼자만의 착각이었나
저축성보험 비과세 혜택은 이 회장이 취임 당시 ‘확대’를 공약으로 내세우고 힘을 쏟아온 사안으로, 그의 노력과 정반대 결과가 나온 셈이 됐다. 세제혜택 축소로 상품 판매에 차질을 빚게 된 보험업계는 ‘책임론’을 거론하며 이 회장을 향해 불만 섞인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이수창 생명보험협회 회장이 저축성보험 비과세 혜택 축소를 포함한 세제개편안으로 위기에 몰렸다. 연합뉴스
생명보험협회장으로 취임한 지 꼭 100일째를 맞던 2105년 3월 20일, 이수창 회장은 기자간담회를 열고 야심찬 계획을 내놨다. 그는 “연금저축과 퇴직연금을 합쳐 연 700만 원까지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50세 이상에는 연금 불입액에 추가로 세제 혜택을 주도록 하는 방안을 정부에 건의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뿐 아니다. 저소득층이 사적 연금에 가입하면 정부에서 보조금을 지급하도록 하고, 건강이 나빠지면 연금수령액을 늘려 줄 것이며, 보장성보험의 세액공제 한도도 기존 100만 원에서 200만 원으로 높이도록 건의하겠다는 청사진도 제시했다.
그는 “연금저축의 세액공제 한도를 늘리는 것에 대해서는 정부 기관 내에 공감대가 형성돼 있으며 이른 시간 안에 세액공제 한도 증액이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정부를 설득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연금저축 세제혜택은 2014년 소득세법 개정 당시 기존 소득공제 방식이 가입액 400만 원 한도 내 12% 세액공제로 바뀌면서 사실상 세제혜택이 축소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1년 8개월여가 흐른 12월 초, 국회에서는 이 회장의 계획과 사뭇 다른 내용의 소득세법시행령 개정안이 통과됐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지난 2일 국회에서는 여야가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에서 합의한 ‘장기 저축성보험 세액공제·비과세 혜택 축소 방안’이 본회의에서 가결됐다.
개정안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연간 종합소득금액 1억 원(총 급여 1억 2000만 원) 초과자의 연금 세액공제 한도를 기존 400만 원에서 300만 원으로 조정했다. 현행 한도보다 오히려 100만 원 줄어든 것이다.
이 같은 조치는 연금저축 세액공제 혜택이 고소득자에게 집중되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조세위에 따르면 전체 근로소득자 중 8000만 원 초과 고소득자는 8.2%에 불과하지만, 이들의 65.7%가 연금저축 세액공제 혜택을 누리고 있다. 이로 인해 전체 공제세액 중 이들 비중이 33.2%에 달하는 실정이다.
고소득자들의 세제혜택을 줄이는 것 자체는 비난받을 일이 결코 아니다. 문제는 이 같은 조치가 이 회장이 설계한 청사진과는 정반대의 결과라는 점이다.
이 회장은 2015년과 2016년 연금저축 세액공제 확대를 생보협회의 주요 사업 가운데 하나로 선정하고 협회 차원에서 노력을 쏟아왔다. 법령 재개정이 필요한 사안이니만큼 정부당국은 물론 국회 등 정치권과 공감대 형성이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이 회장의 ‘작업’은 좀처럼 진척을 보이지 못했다. 기획재정부와 보험업계에 따르면 연금저축 세액공제 한도 확대는 2015년 세제개편안에 반영되지 않았고, 2016년 8월 말 발표된 세제개편안에도 빠져 있었다. 그리고 연말에는 아예 축소 계획이 발표된 것.
이 회장은 뒤늦게 소득세법 개정안을 발의한 박주현 국민의당 의원을 만나 월적립식 저축성보험에 대한 비과세 혜택까지 줄이는 것은 과도하다는 의견을 전달했지만 설득에는 실패한 것으로 전해진다.
보험업계에서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는 비판이 뒤늦게 쏟아졌다. 국회에서 합의가 이뤄지기 전에 미리 업계의 의견을 적극 전달해 관철시켰어야 했다는 것이다.
이 회장의 행보가 사실 애초부터 무리였다는 평가도 나온다. 계층 간 갈등뿐 아니라 금융업종 간 이해충돌까지 야기할 수 있는 일이었다는 이유에서다.
연금저축은 보험사가 판매하는 연금저축보험과 은행과 증권사에서 주로 취급하는 연금저축신탁·연금저축펀드 등으로 나뉜다. 2016년 상반기까지 이들 금융사의 연금저축 적립 총액은 약 113조 원이며, 이 가운데 75%인 85조 원이 보험사를 통해 가입돼 있다. 은행 신탁과 증권사 펀드는 각각 13.7%(15조 원), 8.1%(9조 원)으로 상대적으로 비중이 높지 않은 편이다.
금융사 한 고위 관계자는 “연금저축 세제혜택은 주로 고소득층이 대상인 데다 세액 한도 확대가 적용될 경우 금융업권 중 보험에만 특혜성 지원이 이뤄진다는 불만을 낳을 수도 있는 사안”이라며 “보험업권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은 좋지만, 좀 더 대승적인 시각을 가졌어야 하지 않나 생각된다”고 말했다.
업계의 구심점이 돼야 할 이 회장이 보험사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데 실패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연금저축의 경우 대형 생보사들과 중소형사들의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대형사들이 소극적이었는데도 이들을 끌어들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 중소형 생보사 관계자는 “대형사들은 금리문제 등을 이유로 이미 저축성보험보다 보장성보험 판매에 힘을 쏟는 상황”이라며 “이 때문인지 삼성생명과 한화생명, 교보생명 등 이른바 업계 빅3가 이번 사안에 대해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이번 비과세 혜택 축소 피해는 중소형사들에 집중될 것”이라면서 “중소형사들은 평소에도 생보협회가 상대적으로 덜 챙긴다는 불만이 있는데, 이번 사안으로 불만이 더욱 높아질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이 회장이 이 사안을 단순히 공약으로 내거는 데 그치지 않고 협회 예산까지 집행하며 공을 들여왔다는 점이 뒷말을 낳고 있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생보협회는 ‘100세 시대 캠페인’ 등 연금저축 세제혜택 확대와 관련한 사업에 2000만~3000만 원을 쓴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액수는 그리 크지 않지만 이 돈을 일반 예산이 아닌 사회공헌 예산에서 끌어다 썼다는 점에서 후유증이 있을 것으로 금융권은 보고 있다. 사회공헌 예산은 말 그대로 협회가 사회공헌사업에만 쓰도록 한정돼 있는 것으로, 세제혜택 확대가 이에 해당되는지를 두고 논란이 일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보험업계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노후 대비라는 큰 틀에서 보면 저축성보험 세제혜택 확대가 공익성이 있다고 볼 수 있겠지만 사회공헌 예산까지 써야 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소지가 있을 것”이라면서 “생보협회 내부 규정에 맞는 예산집행인지부터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