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회사 제품 사용하라” vs “기기 선택권 달라” 맞서
지난 1일 전면 도입된 ‘신분증 스캐너’ 업체 선정을 두고 해당 업체에 대한 특혜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선정된 업체에 대한 특혜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이동통신사들의 이익단체인 KAIT가 공개입찰이 아닌 수의계약을 통해 업체를 선정했기 때문. 판매점들의 모임인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KMDA)의 이종천 상임이사는 “몇백 대를 거래하더라도 공개입찰을 통해 업체를 선정하는 것이 지극히 일반적”이라며 의문을 제기했다. A 업체의 경쟁사 중 한 관계자는 “은행, 공공기관에 제품을 납품해봤지만 늘 공개입찰의 과정을 거쳤다”고 말했다.
A 업체를 선정한 이유에 대해 이동통신사와 KAIT는 공통적으로 호환성 문제를 꼽고 있다. SK텔레콤, KT의 대리점은 작년부터 A 업체 제품을 사용했고 해당 모델을 기반으로 전산시스템을 개발·관리하고 있어 기존 장비 사용이 필수라는 것이다.
하지만 프로그램 개발에 앞서 기계를 선정하는 것 자체가 상식에서 벗어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종천 이사는 “다양한 기기가 연동되는 프로그램을 먼저 개발하는 것이 일반적이지, 특정 기기에 맞춰 프로그램을 만든 후 나머지 기기는 연동될 수 없다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동통신사와 KAIT는 A 업체가 선정된 또 다른 이유로 우수한 기술력·운영 노하우, 행정자치부의 주민등록증 진위확인시스템, 금융기관용 단말기 인증시험을 통과한 제품이라는 점을 꼽는다. 그러나 스캐너 제조사들은 이러한 선정 이유가 석연치 않다고 반박한다. 한 신분증 스캐너 판매업자는 “국내 제조 스캐너는 모두 행정자치부의 인증을 받은 제품이다. 행자부 인증이 비교우위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는 KAIT에게 A업체와 작성한 계약서를 공개할 것을 요청했으나 KAIT는 ‘영업기밀’을 이유로 거부했다. 사진=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 홉페이지 캡처
44만 원이라는 가격을 두고도 KAIT와 유통인들 사이 간극이 좁혀지지 않고 있다. KAIT는 “44만 원은 초기에 개별 구매 시 가격을 안내한 것이며, 신분증 스캐너 사업 시작단계부터 지금까지 ‘보증금 10만 원’을 일관되게 주장해왔다”고 말하고 있다. 반면 판매점 측인 KMDA는 “KAIT가 처음 제시한 금액이 44만 원인데, 이는 KAIT가 유통인들을 대상으로 수익사업을 시도했는가를 판단할 수 있는 부분”임을 지적하고 있다.
현재 신분증 스캐너는 10만 원의 보증금을 KAIT에 내면 무상으로 받을 수 있으나, 1월부터는 개별 구매 시 30만 원을 내야 한다. 그러나 초기에 스캐너를 개별 구매한 일부 판매점은 44만 원을 낸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판매점들은 “KAIT가 처음엔 신분증 스캐너 1대 가격으로 44만 원을 제시해 놓고서, 반발이 거세자 30만 원, 다시 보증금 10만 원으로 말을 바꾼 것 자체가 수익사업의 정황”이라고 주장한다. 이종천 이사는 “하루아침에 44만 원짜리가 30만 원이 될 수 있나. 업계 종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30만 원이라는 금액도 돈벌이 의도를 반영한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며 “KAIT는 국회와 판매점들의 요구에도 A 업체와의 계약서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의 신분증 스캐너 제조사 관계자는 “A사와 유사한 사양의 제품을 모 은행에서 5000대를 구매했을 때 가격이 대당 20만 원 정도였다”라며 “KAIT가 계약한 수량이 22만 대 정도라면 시장 원리에 따라 당연히 그보다 금액이 내려가야 한다”고 말했다.
KAIT에 A 업체와 맺은 계약서를 공개하지 않는 이유를 묻자 “영업기밀이 담겨 있어서 공개가 어렵다”며 “30만 원도 판매점들의 부담을 고려해서 제조사와 KAIT가 조율한 금액”이라고 토로했다.
박혜리 비즈한국 기자 ssssch333@bizhank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