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난민 30만 치열한 ‘희망’ 찾기
거리 디자인이 화려한 커브 거리. 쇼핑과 푸드코트가 많은 곳이다.
이곳 KL에 업무차 올 때마다 눈에 띄는 것은 엄청난 크기로 짓는 새로운 쇼핑몰입니다. 타운에 이미 큰 쇼핑센터가 있는데 또 짓습니다. 쿠알라룸푸르는 2012년 CNN이 선정한 ‘세계 10대 쇼핑도시’로 뽑혔습니다. 쇼핑도시 중 4위를 차지할 정도로 쇼핑의 메카입니다. 세계적인 구두 디자이너 ‘지미 추’를 배출한 나라답게 예쁘고 과감한 디자인의 구두 브랜드가 많습니다. 슈즈 디자이너 지미 추는 고향을 떠나 영국에서 활동했습니다.
그는 여성의 다리가 가장 아름답게 표현되는 각도와 디자인에 대해 수없이 고민했습니다. 그것을 구두를 통해 담아냈습니다. 그래서 그의 구두 제작과정을 지켜보며 많은 이들이 감동을 받는다고 합니다. 교통사고로 죽은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비도 그의 구두 애호가였지요. 음식의 메카답게 음식의 거리도 많습니다. 그중 커브(Curve)의 더 스트리트(The Street)를 가봅니다. 더 커브몰 쇼핑센터 안에 있는 구역입니다. 전세계 음식이 선을 보입니다. 디자인이 화려한 거리의 푸드코트에는 저렴한 치킨커리에서부터 유럽스타일까지 다양합니다. 늦은 저녁시간에는 거리 곳곳에서 무명의 예술가들이 공연을 합니다. 더 나아가 쇼핑과 음식에 오락까지 한자리에 모아놓은 상업지대가 겐팅(Genting) 하이랜드입니다. 교외로 한 시간을 달리면 산맥의 고원지대가 나옵니다. 그 선선한 산꼭대기로 수많은 케이블카가 스키장처럼 오르내립니다.
밤이 늦도록 젊은이들이 북적이는 한국식당 ‘비비큐 마을식당’.
쿠알라룸푸르에도 많은 한국인들이 스몰 비즈니스를 합니다. 음식점도 많이 합니다. 오늘은 다만사라 우타마(Damansara Utama) 지역의 한국식당으로 갑니다. 이 지역은 최근 몇 년 사이 거리 전체가 리모델링한 오래된 타운입니다. 탑다운 거리라고도 합니다. 이 거리에 젊은이들의 명소 ‘비비큐 마을식당’이 있습니다. 한글간판입니다. 저녁 8시쯤이면 식당 안은 물론 바깥 골목까지 한류 음식을 먹는 이들로 북적입니다. 아담한 식당에 직원이 24명이나 있습니다. 말레이시아 경기가 최근 침체 상태인데 이 한식당은 오히려 매출이 15% 늘었습니다. 그래서 이 식당의 채영석 대표에게 성장비결을 물어봅니다. 이 식당은 몇 가지 눈에 띄는 특징이 있습니다. 철저히 한국식으로 반찬을 만듭니다. 그 반찬들을 자유롭게 먹을 수 있도록 진열대를 오픈했습니다. 고기 종류가 많은데 가격은 부담 없는 중저가입니다. 밤이 깊어도 문을 닫지 않습니다. 직원들이 친절합니다. 변해가는 이 도시 젊은이들의 라이프스타일과 잘 맞겠다는 느낌이 듭니다. 채 대표는 15년 전 이 나라로 와 볼링장사업, 인테리어 사업 등을 했다고 합니다. 일하는 직원들 중에는 미얀마 청년들도 있습니다. 이웃나라에서 만나면 서로 반갑기만 합니다. 미얀마 말로 인사를 나누고 고향도 물어봅니다. 일자리를 만들어준 한국식당이 고마울 따름입니다.
밤이 깊어 숙소로 돌아옵니다. 몽키아라(Mont Kiara)에 있는 앙금부리 콘도의 홈스테이입니다. 몽키아라는 한국인도 많이 사는 주택지역입니다. 아파트와 콘도가 많습니다. 이곳의 콘도형 게스트하우스로 깨끗하고 비용도 저렴한 편입니다. 아침과 저녁을 제공하고 빨래도 해줍니다. 몇 명이 함께 와 아파트의 가정집처럼 편하게 지낸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묘묘가 보여주는 가족사진. 유엔난민카드를 받았지만 아내만 미국 인디애나폴리스로 보내졌다. 거기서 임신한 아기가 태어났다.
미얀마 주변국에서 유엔이 인정하는 미얀마 난민들이 가장 많은 쿠알라룸푸르. 이 도시는 첨단을 달리지만, 아직도 힘든 노동을 해야 하는 많은 일에는 미얀마, 네팔 등의 청년들이 일하고 있습니다. 워킹비자를 받고도 오고 불법으로 국경을 넘어서도 옵니다. 여기에 와서 난민들이 일하는 일터를 돌아봅니다. 난민학교도 가보고 난민들의 교회도 가봅니다. 이젠 난민카드 발급을 중지해 불법입국자들은 언젠가는 조국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돌아가도 일자리가 없는 게 슬픈 현실입니다. 오늘 난민 교회에서 만난 미얀마 청년 묘묘가 떠오릅니다. 스물여덟 살인 묘묘가 보여준 아내와 아기 사진. 두 사람은 이 도시에서 만나 결혼했습니다. 유엔난민으로 인정받아 난민카드도 받고 타국으로 이주하길 기다려왔습니다. 그런데 아내만 미국 인디애나폴리스로 보내졌습니다. 거기서 임신한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난민기구와 미국대사관이 왜 그런 판단을 했는지는 좀 더 알아봐야 합니다. 난민 아닌 ‘또다른 난민’이 발생했습니다. 어쩌면 부부가 몇 년을 만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쿠알라룸푸르의 밤이 깊어갑니다. 스물여덟 살 청년 묘묘가 보여준 아기 사진이 자꾸 생각납니다. 묘묘는 언제 자기 아기를 안아볼 수 있을까요. 걱정입니다.
정선교 Mecc 상임고문
필자 프로필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일요신문, 경향신문 근무, 현 국제언론인클럽 미얀마지회장, 현 미얀마 난민과 빈민아동 지원단체 Mecc 상임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