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 안돼 방 뺄 수도” 딴 살림 준비
지난 2일 롯데면세점이 인천공항공사를 대상으로 공정위에 임대계약 관련 불공정거래행위 신고서를 제출했다. 연합뉴스
롯데면세점은 신고서를 통해 인천공항이 면세점사업자에 계약조건을 불리하게 설정해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을 위반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중국의 사드 보복 조치로 매출 감소가 심각한 상황인데도 인천공항이 재협상을 요구할 수 없는 특약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롯데면세점은 “최악의 경우 사업철수도 고려하고 있다”며 강경 대응하고 있다. 롯데면세점은 당장 올해는 7700억 원, 내년에는 1조 원가량의 임대료를 내야 한다.
롯데면세점이 사업철수를 고려하면서 계약해지에 따른 위약금도 새로운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면세사업자가 인천공항에 계약해지를 요구하기 위해선 계약기간(5년)의 절반이 흐른 후 마지막기의 최소 보장액 3개월분을 납부해야 한다. 2015년 9월에 계약한 롯데면세점은 아직 시기상 계약해지를 요구할 수 없는 데다 계약 해지를 할 수 있게 돼도 3000억 원에 달하는 위약금을 지불해야 한다.
롯데면세점과 인천공항은 지난 9월 이후 4차례에 걸쳐 협상을 진행했지만 아직까지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롯데면세점이 제시하는 조정안은 상품별 매출액에 따라 최소 20~35%의 영업료를 납부하는 방식이다. 현재는 영업요율과 고정 임대료를 지급하는 최소 보장액 방식 중 금액이 높은 쪽을 내고 있다.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입찰 당시엔 면세사업이 호황이어서 높은 금액을 제시한 건 인정하지만 운영의 문제가 아닌 정치적 상황에 따른 손실이 크다면 협상 가능성을 열어두는 게 상식적”이라며 “특히 롯데는 사드의 직격탄을 맞은 기업이어서 더욱 피해가 크다”고 토로했다.
반면 인천공항은 처음의 계약조건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면세점 임대차 계약서는 이미 공정위 심사를 받은 바 있고 롯데면세점의 부진을 사드의 여파로만 해석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인천공항공사 한 관계자는 “위약금이 지나치게 비싸다는 주장도 롯데가 최초에 투찰한 금액이 워낙 크기 때문”이라면서 “올해 1월~9월 말 기준 인천공항의 국제출발여객은 전년 대비 7.6% 증가했으며, 면세매출도 2.6% 증가해 사드가 영업실적에 영향을 끼쳤다고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대기업 계열 면세점업계 관계자는 “대기업이 공사를 공정위에 신고하는 초강수를 뒀다는 것 자체가 롯데면세점이 그만큼 절박하다는 의미”라면서 “최근 신라·신세계 면세점은 영업이익이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데 반해 롯데면세점은 그렇지 못한 원인도 클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공항으로서도 롯데면세점의 사업철수는 상당한 부담이다. 인천공항 면세점 중 가장 큰 규모이자 업계 1위인 롯데면세점이 철수할 경우 그 자리를 채울 만한 면세사업자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롯데는 지난 6일 마감된 제주공항 면세점 입찰에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약속한 임대료도 내지 못하겠다는 롯데가 최근 제주공항 면세점 입찰에 참여한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면세업계 한 관계자는 “예전 같았으면 제주공항 면세점 입찰에 수많은 업체들이 뛰어들었을 것”이라면서 “명품 브랜드를 유치할 능력도 있고 사드 상황에도 투자를 할 수 있는 곳은 대기업 계열 면세점뿐”이라고 말했다.
반면 롯데면세점은 인천공항 면세점 문제와 제주공항 면세점 입찰 참여는 동일선상에 놓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제주공항 면세점은 규모가 작은 데다 한국공항공사가 이번 제주공항 면세점 입찰에 영업요율 방식을 도입해 임대료 부담이 낮아졌다는 것이다. 한국공항공사가 제시한 최소 영업요율은 20.4%로 업계에서는 세 업체 모두 최소 수준의 낮은 영업요율을 제시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한국공항공사가 이번 제주공항 면세점 입찰에 사드 사태로 어려움을 겪는 면세점들의 사정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며 “판촉비, 물품조달 등에서 제주도에 있는 시내면세점과 시너지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10월 30일 검찰이 경영비리 의혹을 받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게 10년형을 구형하면서 호텔롯데 상장은 또 다시 지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앞의 대기업 계열 면세점업계 관계자는 “얼마 전까지는 한화갤러리아 이전 제주공항 면세사업자인 롯데면세점의 입점 가능성을 높게 봤지만 지금은 다르다”며 “롯데면세점은 인천공항 임대료 분쟁에 최근 신동빈 부회장이 경영 비리 혐의로 10년형을 구형받으며 정신이 없고, 신세계면세점은 과거 김해공항 면세사업권을 중도 반납한 경험이 있어 지금으로서는 신라면세점이 가장 우세한 분위기”라고 전망했다.
박혜리 기자 ssssch333@ilyo.co.kr
해 거듭할수록 임대료 급증 ‘5년간 4조’…인천공항 과한 입찰금액이 부메랑 2015년 9월 인천국제공항의 제3기 면세사업자로 선정된 롯데면세점은 인천공항에 입점한 면세점 중 가장 넓은 면적을 사용하고 있다. 롯데면세점은 인천공항 면세점 입찰 당시 5년 동안 4조 원이 넘는 임대료를 지불하기로 했다. 이는 입찰 당시 롯데 다음으로 높은 금액을 제시한 신라면세점(1조 5000억 원대)의 2배가 넘는 금액이며 신세계면세점(4300억 원 대)보다 무려 10배 가까운 액수였다. 더욱이 롯데면세점이 인천공항과 계약한 임대료 지급방식은 해를 거듭할수록 크게 증가하는 구조다. 인천공항공사는 지난 6일 보도자료를 통해 “롯데면세점은 계약 기간 5년 중 3, 4차년도 임대료가 전년 대비 50% 상승하는 구조로 투찰하였으며, 올해 9월이 3차년도 개시 시점”이라고 밝혔다. 롯데면세점이 향후 위험 요인을 고려하지 않고 당시의 업계 상황만 고려해 지나친 임대료를 제시했다는 비난을 받는 이유다. 신라·신세계 면세점도 인천공항의 임대료가 비싸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별다른 행동을 취할 의지는 없어 보인다. 롯데면세점처럼 임대료가 급증하는 구조가 아닌데 굳이 인천공항공사와 직접 마찰을 빚을 이유가 없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상대적으로 적정가(?)로 입찰한 이들은 임대료를 부담하지 못할 수준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신라면세점의 한 관계자는 “면세점협회를 통해 임대료 조정을 요구하긴 했지만 신라면세점 단독으로 인천공항공사에 요구한 적은 없다”며 “지금으로선 사업 철수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신세계면세점 관계자 역시 “임대료 조정에 대해 인천공항공사에 요구한 적은 없다”며 “롯데면세점의 공정위 제소와 별개로 인천공항 사업장을 철수할 생각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