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힐튼 후아힌 리조트 실외 수영장의 환상적인 조명. 아래는 스파센터에서 태국 전통 마사지를 받는 모습. | ||
하지만 태국 관광 코스는 비용을 최소화하려는 여행사들의 선택에 의해 몇몇 유명 관광지에만 국한된 경향이 있다. 태국 중부의 작은 마을 후아힌은 그래서 우리에겐 아직은 생소할지 모르겠다. 뒤집어 생각하면 후아힌으로의 여정은 오히려 태국의 숨겨진 매력 하나를 더 찾아 나서는 특별함이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태국 수도 방콕의 살인적인 교통체증을 벗어나 야자수와 시원스런 논 풍경이 펼쳐지는 국도를 따라 2시간30여 분.
방콕에서 남서쪽으로 약 2백km 정도 떨어진 작은 마을 후아힌(Hua Hin)은 자동차와 자전거를 개조한 트라이시클, 그리고 오토바이 택시 등이 제법 분주하게 오가는 풍경으로 손님을 맞는다.
후아힌은 태국인이나 유럽인들에게는 푸켓과 치앙마이만큼이나 유명한 곳이다. 이 작은 마을이 관광지로 유명해진 이유 가운데 가장 설득력 있는 것 하나는 이곳이 태국에서는 최초로 개발된 전문휴양지라는 점이다.
년대 초반 태국 왕실 전용의 여름 별장까지 들어서면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됐다. 1922년에는 태국 최초의 골프장이 들어섰다. 마을의 규모에 비해 유난히 고급스러운 리조트와 호텔이 많이 자리하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왕실 휴양지로서의 품위에다 소란스럽지 않은 분위기가 관광보다는 휴식을 위한 여행을 즐기는 유럽인들의 취향과 맞아떨어지면서 오랫동안 서구인들이 즐겨 찾아온 곳. 그 덕에 후아힌은 휴양지 곳곳에 무척이나 조용하면서도 서구적인 분위기가 배어 있다. 지금도 왕족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곳이라 치안에 관한 한 정평이 나 있다.
하지만 작고 조용한 휴양지임에도 후아힌은 많은 볼거리를 곳곳에 마련해 놓고 있다. 남쪽 해안 절벽 위에는 많은 사당과 불상들이 안치되어 있는데, 특히 먼 바다를 응시하고 있는 20m 규모의 금불이 세워진 사당에는 바다와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 어선들의 무사태평을 기원하는 화려한 색과 문양의 용상이 함께 있어 눈길을 끈다.
▲ 방콕의 에메랄드 사원. | ||
또, 후아힌은 골프를 즐기려는 이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 후아힌 역 바로 맞은편에 위치한 ‘로열골프코스’가 으뜸으로 손꼽힌다. 태국 곳곳에는 세계적인 대회를 치러냈던 유명 골프장들이 이름을 떨치고 있지만, 가장 오래된 18홀 코스이면서 왕실 전용 코스로 이용되고 있다는 점이 골프 마니아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물론 그린의 상태나 경치는 세계 어느 골프장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빼어나다.
습한 해풍이 가라앉는 밤이 오면 후아힌은 또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한다. 밤 7시가 넘으면 하나둘 포장마차와 노점상들이 모여들어 야시장을 벌인다.
유난히 손재주가 좋은 태국인들이 돌과 나무를 일일이 손으로 깎아 만든 다양한 조각품들을 비롯해 남국의 꽃에서 추출한 그윽한 향수, 야자와 바나나 잎을 이용해 만든 가방과 방석은 물론 조개껍질과 돌을 이어 만든 팔찌와 목걸이, 면직물 등이 즐비하다. 하루중 거의 모든 식사를 사먹는 태국인들의 습성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다양하고 간단한 음식을 팔고 있는가 하면 과일과 해산물들도 손수레 위에 수북히 쌓여 있다.
하지만 외국 관광객들의 인기를 단연 독차지하는 것은 유명 브랜드의 시계나 가방, 액세서리 등을 본딴 노점상들의 이미테이션 상품들이다. 진짜와 분간하기 힘든 시계들 앞에서는 누구도 발길을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되는데, 가장 최근에 출시된 모델까지도 어느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가격은 대체로 우리 돈 10만원선 정도이지만 이 가운데서도 나름대로 격이 있어 진품에 가까울수록 값은 껑충 뛰어 오른다.
여기에 후아힌은 고운 모래가 깔린 기다란 해안선이 인상적인 해변을 끼고 있는 탓에 바다가 어울린 풍경이 있는 곳이다. 다른 해변 관광지들에 비해 해양 스포츠가 발달한 편은 아니다. 그러나 해변 승마나 보기에도 한가로운 일광욕 등 비교적 여유있는 스타일의 휴식형 레저가 발달해 있다.
▲ 태국 방콕 시내의 한 사원. 전통적인 조형물들이 즐비하다. | ||
1백여 년 전부터 왕가의 여름 휴양지였던 곳답게 후아힌에서는 왕실 전용 별장을 둘러 볼 기회가 남겨져 있다. 티크 원목으로 만들어진 기다란 회랑과 깔끔한 마룻바닥, 잘 다듬어진 정원의 경치가 일품인 라마 6세의 별장이 가장 유명한데, 웅장한 외관에 비해 내부는 파스텔톤으로 차분하게 인테리어해 왕의 휴식을 배려한 듯하다.
1923년 세워진 라마 6세의 별장은 라마 8세의 의문의 죽음 뒤 당시 외국 유학중이던 현 국왕 라마 9세 푸미폰 왕이 왕위를 승계하기 위해 뱃길로 이곳에 도착한 후, 방콕으로 향했던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병중인 라마 9세가 요양을 위해 자주 들르는 별장은 인근에 따로 지어져 있고, 일반에게는 공개되지 않는다.
후아힌은 한가로운 휴식에 어울리는 곳이다. 뭔가 생동감 있는 여행을 원하는 이들이라면 어쩌면 실망할지도 모를 일. 하지만 이리저리 이끌려 다니는 여행에 지친 이들에게는 태국에서 이곳 후아힌만큼 안성마춤인 곳은 없을 듯하다.
시내 이곳 저곳에 흩어져 있는 사원들과 왕가의 흔적이 남은 명소들, 해변을 거닐다 야시장에 들러 태국인들의 삶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가는 동안 조금씩 스며드는 이곳만의 매력은 그 어떤 곳에 비할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