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필상 고려대 교수 | ||
이 현상이 반복될 경우 물가는 더욱 하락하고 기업들은 연쇄부도위기에 처하여 경제가 공황상태에 빠진다. 일본은 4년째 소비감소현상이 나타나면서 물가가 하락하고 산업기반이 붕괴하는 디플레이션을 겪고 있다. 문제는 미국경제이다. 지난 10여년 간 미국은 신경제의 호황을 누리면서 과잉시설상태를 빚었다. 최근 경기가 침체하고 소비가 위축되자 공산품 가격이 본격적인 하락세에 들어섰다. 과잉공급과 소비부진이라는 디플레이션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현재 미국의 국민총생산 디플레이터는 1.1%로서 40년 만의 최저수준이다.
또 최근 소비판매는 1.2%나 감소했다. 이러한 소비침체와 가격하락세는 컴퓨터 등 공산품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전화나 항공 등 서비스 요금까지 확산되어 디플레이션의 위험이 커지고 있다. 디플레이션은 우리 경제의 발등에도 떨어지고 있다. 올 3분기까지 우리경제는 6.3%의 고도성장을 기록하여 디플레이션의 우려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는 겉으로 나타나는 현상일 뿐 내부적으로 이미 우리 경제는 디플레이션의 위기에 빠지고 있다.
지난해 우리경제는 구조적 침체현상을 겪으며 3%의 저성장을 기록했다. 경기를 회복시키기 위해 정부는 저금리 팽창과 부동산 활성화라는 양면정책을 폈다. 이에 따라 건설과 소비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경기가 빠른 회복세로 돌아섰다. 문제는 이러한 경기회복이 부동산 투기와 ‘빚소비’라는 부작용을 일으키면서 경제를 거품으로 꺼지게 하는 것이다. 향후 수출의 급격한 증가 등 다른 호재가 없을 경우 우리경제는 구조적 침체 국면에 접어들면서 디플레이션의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이때 경기를 회복시키기 위해 정부가 무모하게 돈을 풀면 디플레이션은 물가까지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으로 변하여 경제적 고통은 가중된다.
이래저래 국민들은 새롭게 다가올 경제적 고통에 몹시 불안하다.우리경제는 외환위기 이후 뼈를 깎는 구조개혁을 단행했다. 그러나 정부의 구조개혁이 본질적인 체질개선보다는 공적자금과 외국자본으로 위기를 모면하는 임기응변적 대책의 성격을 띠어 또 다른 위기를 잉태하는 모순을 낳았다. 실제로 우리 경제는 외환 위기를 극복했다고 하나 개인부채위기로 바뀌었을 뿐이다.
빚이 있는 가구가 전체 가구의 50%가 넘고 가구당 평균 빚이 3천만원에 이른다. 여기에 정부부채가 4백조원이 넘어 국민 1인당 1천만원이나 부담해야 한다. 가계부도가 확산될 경우 금융과 가계 부문이 함께 무너질 위험이 있다. 더 나아가 자립경제를 지향하던 우리 경제는 예속경제로 바뀌었다. 국내금융기관과 기업을 해외에 헐값에 팔고 증권시장을 내주어 외국자본이 판을 친다. 이들이 국부를 유출시키고 경제를 교란시킬 경우 우리 경제는 충격으로 주저앉을 수 있다.
더욱 문제는 산업공동화와 중국의 물량공세다.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을 막론하고 고임금과 규제를 피하여 중국투자가 유행처럼 퍼지고 있다. 일부 대기업들의 경우 총 투자 중 절반 이상이 대중국 투자일 정도이다.이에 따라 국내는 점차 산업공동화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 중국이 고품질의 상품을 저가공세로 대거 공급하는 바람에 세계시장은 공급의 홍수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상품의 수출은 설 땅이 없음은 물론 국내시장도 내줘야 한다.
이러한 구조적 위기 속에서 거품 경기가 가라앉을 경우 디플레이션 위기는 한순간에 우리경제의 숨을 막을 수 있다. 그러면 디플레이션의 해결방법은 무엇인가? 새로운 상품과 기술로 세계시장에서 솟아날 수 있는 경제 경쟁력을 기르는 것뿐이다. 이렇게 되면 오히려 저물가 고성장이라는 최선의 경제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 국민과 기업 다같이 외환위기 때와 같은 위기의식을 갖고 첨단기술개발, 신산업발전, 해외시장 개척을 위해 다시 땀을 쏟아내야 한다. 정부는 미래산업을 기본 축으로 하는 경제발전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지도력을 발휘하여 새로운 변화의 견인차 역할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