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일남 언론인 | ||
특유의 만연체 억양으로 헌법 조문에도 없는 ‘나 이승만’과 ‘하나님’을 앞뒤에 한마디씩 보탰다. 과인(寡人)이라는 왕조시대의 겸양과도 동떨어진 위압적 상징조작의 한 보기랄까, 평소의 담화문에도 ‘나 이승만’이 빠지지 않았다.
그 뒤로 이어진 역대 대통령의 자기 호칭 역시 각각 다르거늘, 그 속에는 또 당자의 성격이 은연중 묻어있기 마련이다. 전두환 대통령의 ‘본인’은 땡전뉴스와 더불어 유별났다.
노태우 대통령의 ‘이 사람’이나 ‘저’는 물태우 별호와 함께 상대적으로 겸손하게 들렸다. 나머지는 거의 다 같다. 윤보선 박정희 최규하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들이 모두 ‘나’로 일관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이다. 그 역시 넓게 보면 ‘나파(派)’에 속하지만 자신의 성명 삼 자를 맞바로 내세우는 것으로도 특이하다.
“노무현에게 줄을 서라”든가, “노무현이 해내겠습니다” 같은 예가 곧 그렇다. 정치적 입지가 외로운 지도자의, 자기 확인을 위한 의지의 강조법 아닌가 싶다. “참여정부가 과거 정부보다 우월한 것은 도덕적 신뢰, 말하기 민망하지만 밑천이 그거 하나밖에 없는 까닭이라”는 말에 그만한 함의(含意)가 번득인다고 느낀다.
어쨌거나 노무현표 어법에 대한 비판이 갈수록 드세다. 집요하게 발라내어 기왕의 불화를 더욱 다지듯 공격적인 메이저언론에 일일이 그들먹하다. 그런 양상이 어느덧 석 달 열흘을 넘었다.
상대가 대통령이기 때문에 어떤 한마디도 소홀히 넘길 수 없는 사정을 모르지 않는다. 가볍고 직설적이고 거칠다는 지적이 매양 틀린 것도 아니다. 하지만 별의별 대통령을 다 겪은 마당에 말버릇 한번 희한한 대통령을 만났다고 여기면 그만이다.
사람의 타고난 말투는 여간해서 변하지 않는 법이므로 구투에 팍팍 절은 대통령의 옛날식 말솜씨에만 집착하는 것도 문제다. 비속어를 너무 많이 구사하는 노무현 대통령이 삼갔으면 좋을 용어도 숱할 망정 연설 대신 구어체 담론을 좋아하는 그의 언행엔 역설과 유머에 넘치는 것도 많다.
한문투로 하자면 ‘복지부동’이라든가 ‘무사안일주의’ 따위가 고작인 것을, ‘옆길로 가는 사람’, ‘반대로 가거나 가지 않는 사람’ 등으로 의역하는 발상을 예전에는 별로 보지 못했다.
반드시 대통령의 권위를 얕잡아 그런 건 아니겠으나 요새 신문에는, <노(盧) ‘조폭 뿌리 뽑겠다’>, <노 ‘통일은 천천히 해도 좋아’>식 제목이 자주 눈에 띈다. 아직껏 드물었던 글자 수 줄이기다.
하긴 부시, 고이즈미도 성만 쓴다. YS, DJ, JP 또한 마찬가지다. 그러나 3김의 이름을 국한문으로 표기할 경우에도 종전에는 ‘김’ 한 자로 직위를 동강내지 않았다. 또박또박 ‘김 대통령’, ‘김 총리’로 대접했다.
제목 얘기가 나와 덧붙이건대, <바보들은 항상 남의 탓만 한다>는 번역서 제목을 ‘언론 탓만’으로 바꿔 힐난한 국회의원은 내용 파악을 한참 잘못했다고 믿는다.
원제가 “QBQ, THE QUESTION BEHIND THE QUESTION>인 책의 저자 존 G 밀러가, ‘모든 개인이 스스로의 책임을 다하도록 돕기 위해 썼다’고 누누히 강조했으니 말이다. 독자 개개인의 책임의식을 묻는 쪽에 무게를 두었지 누가 누구를 비난하기 위해 낸 것이 아니다.
말꼬리 잡기를 그만 거두고 더 좀 본질적인 사안에 눈을 돌려야 할 때다.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