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큰 축 흔들리는데 총수는 없고…
지난 2월 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재판 1심 선고가 열리는 가운데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법정에 들어서고 있다. 최준필 기자.
지난 4일 열린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항소심 2차 공판에서는 박창영 롯데면세점 상무가 신 회장 측 증인으로 출석했다. 박 상무는 이날 재판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신 회장의 비공개 면담이 있기 전부터 정부와 면세점 특허 취득에 대한 교감이 있었다고 진술했다. 박 전 대통령과 면담을 통해 롯데월드타워점 특허권을 따낸 것이 아니라는 신 회장의 주장에 힘을 보탠 것. 그러나 검찰은 박 전 대통령과 독대 전까지 ‘롯데가 특허 취득에 확신을 가질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내용으로 반박했다. 검찰은 그 증거로 최근 롯데가 인천국제공항 사업자 선정에서 탈락한 것을 언급, “롯데는 해오던 사업에 입찰 최고가를 써냈지만 탈락했다”며 “평가기관 사람들로 인해 당락 여부를 확신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월드타워점은 2015년 11월 특허권을 상실해 2016년 6월 영업을 중단했으나 같은 해 12월 특허권을 다시 따내 2017년 1월 재개장했다. 당시 업계에서는 롯데의 면세점 사업권 재승인을 “당연한 결과”라고 봤다. 롯데가 면세점 특허권을 상실한 직후인 2015년 12월 박근혜 전 대통령이 면세점 신규 특허 발급을 지시했고, 관세청이 2016년 4월 면세점 추가 특허 방안을 발표했기 때문.
지난 2월 1심 재판부는 롯데의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이 월드타워점 사업권 재승인을 위한 대가성 뇌물이라 보고, 신 회장에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다. 롯데의 뇌물죄 유죄 판결에 대해 당시 관세청은 관세법에 따라 월드타워점 특허 취소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신 회장 재판이 길어짐에 따라 관세청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관세청은 지난 3월 중순 “법리검토를 진행 중”이라며 “조속하게 결과를 발표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으나 이후 3개월이 지났음에도 결과를 내놓지 않고 있다. 담당 부서인 관세청 수출입물류과는 결과 발표 지연에 대해 “쉽지 않은 문제”라며 “여전히 조사를 진행 중이라는 답변밖에 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전했다. 신 회장 재판이 진행 중인 것과 연관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답변을 드릴 수 없다”고 밝혔다.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신 회장님 재판과 월드타워점 특허는 별개의 건”이라며 “면세점 특허 취득 과정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롯데면세점은 인천국제공항 면세점까지 잃었다. 롯데는 지난달 31일 인천공항 제1여객터미널 면세매장 사업자 선정에서 탈락했다. 일각에서는 롯데가 임대료 문제로 인천공항공사와 갈등을 빚다 지난 2월 사업권을 반납한 데 따른 ‘괘씸죄’가 적용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앞서 롯데는 중국의 사드 보복 이후 매출이 줄어들면서 높은 임대료를 부담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4개 사업권 가운데 3구역을 조기 반납한 바 있다.
롯데는 이번 입찰에서 이전보다 더 낮은 가격으로 입찰받아 사업을 이어나갈 계획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롯데는 업체 중 가장 높은 금액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탈락했다.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불복할 수는 없으니 심사 과정이나 점수를 공개하는 등 제도 개선은 필요하다고 본다“며 ”인천공항의 경우 임대료 부담이 컸던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시내나 해외 쪽으로 집중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인천공항공사 측은 ‘괘씸죄’가 적용됐다는 업계 관측을 적극 부인하고 나섰다. 사업제안서와 입찰가가 각각 40%, 60%의 비중을 차지하지만 가격 공개는 사업제안서 평가 다음 날 이뤄지므로 일부러 점수를 적게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인천공항공사 관계자는 “롯데가 가장 높은 입찰가를 제시한 것은 맞지만 사업제안서 평가에서 순위가 바뀔 수 있다”며 “사전에 평가자들의 논의는 전혀 없었으며, 일부러 점수를 낮게 줬다는 이야기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롯데는 이번 탈락으로 8000억 원 가까운 매출이 줄 것으로 평가된다. 2016년 기준 호텔롯데의 총매출이 6조 4941억 원, 호텔롯데 면세사업부의 매출이 5조 4550억 원인 것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금액이다. 만약 연 매출 6000억 원대의 월드타워점까지 잃는다면 호텔롯데는 총 매출의 약 20%에 달하는 1조 4000억 원대의 매출이 감소된다.
롯데는 타개책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총수 부재 장기화가 예상되면서 호텔롯데의 상장은 물론, 신사업 구상도 힘겨워 보인다. 황각규 롯데지주 부회장을 중심으로 비상경영체제가 운영되고 있으나 오너 공백을 완전히 메우기는 어렵다는 것이 재계의 중론이다. 한 예로 롯데는 최근 3조 원 규모의 자금을 투입하는 온라인 사업 진출 계획을 발표했으나 투자 금액이 큰 만큼 오너의 최종 결정이 필요해 투자가 늦어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롯데 관계자는 ”온라인 사업 투자계획 진행 지연은 총수 공백과 관계가 없는 것으로 안다“며 “여러 계열사가 통합 협의체를 만들어 의사결정을 하는 시스템이어서 늦어지는 것으로 보인다”고 답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
사촌자매 간 또 다시 숙명의 대결…호텔신라 vs 신세계 인천공항 면세사업권 입찰서 격돌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손녀로 사촌 사이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정유경 신세계 총괄사장 간 또 다시 ‘사촌대결’의 막이 올랐다. 인천국제공항 면세사업권 입찰 평가에서 호텔신라와 신세계가 사업권을 두고 승부를 겨루게 됐다. 두 사람은 2015년 면세점 사업자 선정 이후 면세점 사업에서 뛰어난 실적을 보이며 맞수로 떠올랐다. 지난해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롯데의 피해가 막심한 상황에서도 신라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은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두 사람은 이미 두 번의 승부를 겨룬 바 있다. 전적은 1 대 1. 2016년 신규면세점 3차 선정에서 신세계면세점이 신라면세점을 제치고 강남 센트럴시티 면세점 특허를 획득했다. 2017년 제주국제공항 면세점 사업자 선정에서는 신라면세점이 승리했다. 재계에서는 이번 승부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인천공항 T1 면세구역은 롯데면세점이 내놓기 전 연 8000억 원의 매출을 올리던 ‘알짜’인 만큼 두 사람의 자존심 대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 그간 이부진 사장의 신라면세점이 우위에 있었지만 정유경 사장의 신세계면세점이 후발주자로서 파죽지세를 보이는 만큼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이유도 있다. 이번 입찰에서 신라가 최종사업자로 선정될 경우 업계 1위인 롯데를 바짝 추격하는 한편, 신세계면세점과 차이는 더 벌어질 수 있다. 면세점업계 한 관계자는 “그간 신라가 면세점 사업에서 앞섰던 만큼 사업평가서 부문에서 점수가 더 높을 수 있다”면서도 “신라가 주요 3사 가운데 입찰가를 적게 부른 반면, 신세계는 롯데 다음으로 높은 액수를 불렀다”고 전했다. 신세계는 이번 입찰에서 롯데와 크게 차이 나지 않는 입찰가로 베팅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세청은 오는 23일께 최종 사업자를 선정할 예정이다. [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