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관련 사안은 관계 악영향 우려 덮기로…친문 실세와 친한 ‘우병우 라인’은 영전설
문재인 대통령. 사진=청와대 제공
한 중앙부처 적폐청산TF는 박근혜 정권 때 이뤄진 한 입찰에 부적절한 외압이 있었던 정황을 포착했다. 당시 실세로 통했던 친박계 인사가 자신의 친인척이 운영하는 회사가 사업을 따낼 수 있도록 민원을 넣었다는 의혹이었다. 실제 그 회사는 수억 원대의 사업을 수의계약으로 따냈다.
TF는 관련자들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지만 이뤄지진 않았다. 오히려 이 내용은 TF가 작성한 보고서에서 빠졌다고 한다. 부처 내부에선 재직 중인 고위급 간부가 여기에 연루돼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사업 입찰에 개입했던 이 간부가 영향력을 행사해 TF의 문제제기를 막았다는 것이다.
한 중앙부처 산하기관 기관장은 정권 출범 직후부터 정권의 타깃이 될 것이란 말이 돌았다. 박근혜 정부 때 부적절한 행태들이 여러 번 도마에 올랐던 이유에서였다. 실제로 수사기관은 이 기관장에 대해 내사를 착수했다. 그는 기관의 공금을 횡령하고 친인척들을 특혜채용 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그런데 이 기관장은 처벌을 받기는커녕 임기를 다 마치고 물러났다. 이를 두고 이 기관장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한 친문 핵심 인사 이름이 거론된다. 수사기관 내사 때도 기관장과 친문 인사 간 관계가 각별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감사 때 이 문제를 폭로하기 위해 조사를 진행했던 자유한국당 의원은 “수사기관은 내사를 중단했고, 관리·감독해야 할 부처의 적폐청산TF는 덮었다. 정권 실세가 관여하지 않고선 납득하기 힘든 일”이라고 했다.
대북정책과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부처와 기관 관계자들은 남모를 고충을 털어놨다. 청와대 지시로 TF를 만들어 적폐를 발견했지만 오히려 이로 인해 불이익을 받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한 기관의 경우 박근혜 정권 때 북한 내부 문제를 왜곡해 국민들에게 알린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청와대 지시에 따른 것이라는 진술도 나왔다. 사실일 경우 적잖은 파장이 예상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 기관은 이를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을 내렸다. 다시 부각시키면 북한과의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판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 외압이 작용했다는 얘기도 공공연히 나돈다. 기관의 한 관계자는 “괜한 일을 들쑤신 것 같아 좌불안석이다. 보고 받은 기관장도 ‘굳이 이제 와서 문제 삼을 필요가 있겠느냐’는 반응이었다. 시킨 일을 했을 뿐인데 건드려선 안 되는 적폐가 있나보다”라고 했다.
적폐청산이 조직 논리나 정권의 정책 기조 등에 좌지우지되는 것은 그나마 낫다. 적폐를 청산하려는 시도는 했기 때문이다. 적폐청산을 하는 체만 하거나 아예 TF를 설치하지 않은 곳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선동 자유한국당 의원실에 따르면 청와대로부터 적폐청산 TF 설치 지시를 받은 19곳 중 국가보훈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행정안전부 3개 부처는 TF를 구성하지 않았다.
나머지 16곳 중 대부분에서 적폐청산 TF는 조직개편과 제도개선 등 일반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김선동 의원은 “부처 TF를 적폐청산 TF로 포장했다. 청와대가 부처별 현실을 감안하지 않은 채 무리하게 적폐청산 드라이브를 거는 것은 정치보복, 보여주기식 행정에 매달린 것이 아니냐”라고 지적했다. 중앙부처의 한 고위 간부는 이렇게 말했다.
“과거에 있었던 일을 탈탈 털면 문제되는 것을 찾기는 그렇게 어렵진 않다. 그런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누군 봐주고, 어떤 일은 덮어버리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걸린 사람만 억울하지 않겠느냐. 부처 내에선 ‘줄 대기만 잘하면 된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 결국 또 다른 적폐를 양산하고 있는 셈이다.”
사정기관 역시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적폐청산 선봉을 맡고 있는 검찰에선 그 피로감이 확연하다. 최정예라고 할 수 있는 서울중앙지검은 정권 출범 후 두 전직 대통령 수사와 그 공소 유지에 총력을 쏟았다. 최근엔 양승태 대법원 시절 사법농단 수사에 특수부 3개 부서를 투입하는 등 대규모 수사 인력을 꾸린 상태다.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검 고위 인사는 “적폐청산에 대한 여론 지지도가 높은 것은 사실이긴 하지만 검찰이 마치 정권과 손을 잡고 있는 듯한 모양새는 우려스럽다. 지난 정권 수사 등에 매달리느라 민생 부문에 신경 쓸 여력이 없는 건 사실”이라면서 “일선에선 수뇌부가 청와대 눈치를 너무 보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검찰은 자체적으론 과거사위원회를 꾸려 ‘장자연 사건’ 등 논란이 있었던 사건에 대해 재조사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이를 두고도 뒷말이 새어 나온다. 문재인 정부 성향을 감안한 사건들만 고르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게 핵심이다. 한 검사는 “과거사를 다시 조사하면 어쩔 수 없이 조직의 아픈 부분을 드러내야 한다. 동료, 선후배 검사들이 다칠 수도 있다. 따라서 공평하고 중립적으로 진행돼야 잡음이 없는데 정치적 고려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의 중앙지검 고위 인사 역시 “적폐청산 수사와 과거사위원회 활동에 친문 실세들 입김이 작용하고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 심재철 의원 압수수색 때 검찰의 형평성 문제가 불거진 적이 있지 않느냐. 검찰이 또 다시 정치권에 휘둘리고 있다는 지적은 뼈아프다”고 했다. 이어 그는 “인사도 마찬가지다. 소위 ‘우병우 라인’을 쳐내기로 했으면 다 그렇게 해야지 친문 실세와 친한 ‘우병우 라인’들은 살아남거나 오히려 영전했다는 얘기가 파다하다”고 덧붙였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