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경제력 학력 등 스펙이 좋은 여자와 상대적으로 스펙이 나쁜 남자가 연결되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여자들이 자기보다 못난 남자를 선택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남자의 경우는 반대인 듯하다. 내 주변에는 자기보다 잘난 여자는 곧 죽어도 싫다는 남자들이 많다. ‘너무 부담스럽다’는 것이 이유다. ‘여자는 나보다 못나야 한다. 그래야 남자가 편하다’라는 생각을 하는 남자들이 이런 경우에 속한다(물론 외모 이야기가 아니다. 얼굴은 무조건 예뻐야 한다고 생각하는 남자들이 열에 아홉일 것). 오죽하면 ABCD 이론까지 나왔을까(남자는 자신보다 조금 못난 여성을 택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보통 A급 남성들은 B급 여성을, B급 남성은 C급 여성을, C급 남성은 D급 여성을 택한다는 이론).
소개팅이나 선을 나가보면 이런 이론을 피부로 느낀다. 그런 자리에 나가서 멋모르게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정치 시사 등)를 들먹였다간 애프터는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한번은 “여자 분이 너무 똑똑해서요, 저랑은 안 맞는 것 같습니다”란 비아냥 섞인 거절도 들어봤다.
수년 전 소개팅을 했던 한 5급 공무원 역시 비슷했다. 행정고시를 8년 만에 늦깎이로 패스했던 A는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내딛은 이른바 ‘사회 초년생’이었다.
빠듯한 공무원 월급에 반지하 전세방에서 여동생과 살고 있던 A는 만나는 횟수가 늘어갈수록 점점 비뚤어 나가기 시작했다. “고생도 안 해본 네가 뭘 알아” “넌 포장마차 떡볶이는 먹어봤니?” “어릴 때부터 좋은 차 타고 다니는 애들이 다 그렇지 뭐” 등등 이상한 열등의식을 표출했다. 내가 황당해 했던 것은 물론이다.
이와는 반대로 주변에서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의 로맨스를 몸소 실천한 성공적인 커플도 더러 있다. 가까운 아는 언니의 이야기다. 이화여대를 졸업한 그 언니는 콧대가 하늘을 찌르는 ‘차도녀’였다. 강남에 사는 데다 외국계 법인회사를 다니는 안정적인 커리어도 갖고 있었다. 이러니 이 언니 눈에 웬만한 남자가 들어올 리 만무했다. 졸업과 동시에 선을 본 것만 수십 차례. 조건도 까다로웠다. SKY대 졸업자에 강남에 살고, 가능한 ‘사’자 직업을 가진 남자를 만나고 싶어 했다.
그런데 2년 전 그 언니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남자는 전혀 다른 남자였다. 고졸 학력에 지방 출신의 평범한 은행원이었다. 언니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충격 아닌 충격을 받았다. 처음에는 부모도 말렸다. 하지만 부모는 이미 혼기가 늦은 딸의 결정을 존중했고, 둘은 양가 부모님의 축복 속에 결혼식을 올렸다.
나 역시 둘의 만남을 진심으로 축복했다. 무엇보다도 쌀쌀맞고 차가웠던 그 언니가 연애를 시작한 후부터 푸근하고 따뜻하게 바뀌는 게 눈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 언니에게 물었다. “어떻게 그런 용기를 냈어?” 그 언니는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어차피 늦은 나이, 연애라도 실컷 해보자고 생각했지.” 그렇게 인연은 무심코 찾아왔다.
모든 게 그런가 보다. 마음을 비워야 채워진다. 남자가 더 잘났고, 여자가 더 잘났고 그런 거 따지기 전에 일단 마음을 여는 것, 그게 중요한가 보다. 파울로 코엘료는 <11분>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았을 때 나는 모든 것을 얻었다.”
김태은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