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같은 잉꼬부부 ‘따로 또 같이’ 살기
이들의 결혼 생활은 전형적인 ‘착한 남자’ 스타일인 A가 줄곧 아내의 요구와 입장을 수용해주는 식으로 이뤄졌다. 내가 이 부부의 집에 집들이를 갔을 때 가장 놀랐던 점은 부엌살림이었다. 맞벌이를 하는 여자가 결혼 전부터 “난 살림은 안 할 거야”라고 공표한 까닭인지 이 집에는 쌀과 김치가 없었다(물론 쌀은 그 후부터는 작은 것으로 사놓는다고 했지만). ‘왜 김치가 없냐?’라는 질문에 ‘우린 집에서 거의 밥을 안 해먹는 데다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다’는 것이 여자의 답이었다.
집안 청소 역시 전적으로 A의 몫이었다. 화장실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치우거나 변기를 청소하면서 A는 웃으며 “내 아내는 호텔식 서비스를 받으면서 생활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데도 전혀 싫은 기색이 없었던 걸 보면서 나는 ‘참 성격 한번 좋다’라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다. 한번은 마루에서 청소기를 돌리는 A를 보고 “지금 나 TV 보고 있으니까 그거 나중에 하면 안 돼?”라고 말하는 아내의 말을 듣고도 배시시 웃었던 속 좋은 A였다.
격의 없이 친구처럼 지내다 보니 잠자리를 갖는 횟수 역시 지극히 드물었다. 신혼 초에만 잠깐 반짝했을 뿐, 거의 남남처럼 지내던 부부는 언제부턴가는 아예 각방을 쓰기 시작했다. 사정이 이쯤 되자 이제는 각자 알아서 출퇴근하고, 식사도 따로 하는 등 한 지붕 아래 사는 남처럼 돼버렸다.
이렇게 남처럼 살던 부부에게 아파트 전세 만료 기간이 다가오면서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아내의 놀랍고도 황당한 제안 때문이었다. “그냥 우리 오피스텔 두 채를 빌려서 옆집에 사는 건 어때?”라는 물음에 A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진짜 친구처럼 지내자는 말과 다를 바 없었다. 사실 이 부부는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채 결혼생활을 해오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제안을 하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몰랐다.
착하기만 한 A를 주변의 친구들이 가만둘 리 없었다. “넌 왜 그렇게 못나게 사느냐?” “더 늦기 전에 갈라서라” 등등 충고와 협박이 뒤섞인 말들이 오갔다. 처음에는 꿈쩍도 하지 않던 A도 점차 마음을 독하게 먹기 시작했고, 결국 재작년 갈라설 것을 결심했다. 아무리 친구처럼 편한 것도 좋다지만 부부는 한 이불을 덮고 살아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뒤늦은 자괴감 같은 게 밀려왔기 때문이었다.
A의 제안에 아내 역시 잠시 고민한 후 동의했고, 이들 부부는 현재 이혼 아닌 이혼을 한 상태다. 참 희한한 것이 이렇게 헤어졌건만 둘은 아직도 연락을 주고받거나 가끔 만나 데이트를 하는 등 이제는 ‘진짜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 이러다가 둘이 언제 다시 합칠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차피 결혼 생활은 당사자인 둘이 하는 것이니까.
김태은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