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이 시골이라고? 뭐라카노!
그런데 부산말을 가리켜 ‘사투리’라고 부르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부산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나는 얼마 전에 알았다. 지난해 부산에 놀러갔을 때 함께 갔던 동생이 나에게 귀띔하길, “부산 사투리보다는 그냥 부산 말이라고 해”라고 주의를 줬던 것이다. 비슷한 일을 나는 얼마전 맞선 자리에서도 겪었다.
대기업 인사과 차장이었던 A는 부산 남자였다. 대학교 때부터 서울에 올라와 살고 있었던 터라 A는 거의 완벽하게(?) 서울말을 구사하고 있었다. 하지만 몇 마디 말을 주고받으면서 나는 A가 서울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금세 눈치 챌 수 있었고, 그래서 “혹시 고향이 어디세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A는 “부산인데요”라고 말했고, 나는 “어쩐지~사투리 느낌이 좀 있어서요”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사실 나는 부산 사투리를 좋아하기 때문에 호감의 뜻으로 물어봤던 것이었지만, 순간 A의 표정에서는 뭔지 모를 불편함이 비쳤다. 아마 사투리란 표현이 거슬렸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지만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마흔둘의 부산 남자인 B 역시 대기업에 근무하는 직장인었다. 늦은 나이에 동갑내기 여자를 소개로 만나 알콩달콩 연애하길 6개월. 하지만 둘은 결국 결혼에 골인하지 못하고 헤어지고 말았다. 이유는 사소한 말다툼에서 비롯됐다.
중국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B는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여자 친구를 만나러 갔다. 그런데 여자의 말 한마디가 B의 신경을 거슬렸다. “그런데 시골엔 언제 내려가세요?” ‘시골’이란 말에 B는 발끈했고, “왜 부산이 시골이냐. 부산은 시골이 아니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사실 둘에게 ‘부산이 시골이냐 아니냐’는 이미 여러 차례 오갔던 말다툼 주제였다. 그때마다 B는 “부산은 시골이 아니다. 그러니 그런 말은 삼가 달라”고 정색을 했고, 여자는 “부산은 시골이 맞다”라고 고집을 부렸다.
헤어진 당일에도 사정은 비슷했다. B의 항변에도 불구하고 여자는 국어사전까지 뒤져 가면서 ‘시골’의 정의를 내리는 집요함을 보였다. 시골이란 ‘도시에서 떨어져 있는 지역’, 혹은 ‘도시로 떠나온 사람이 고향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니 기분 나빠하는 당신이 오히려 이상하다며 여자는 고개를 저었다.
결국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한 둘은 그렇게 그날을 마지막으로 영영 헤어지고 말았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는 주변의 부산 남자들이나 지방 출신의 남자들에게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견을 물었다. 답은 다양했다. 어떤 사람은 남자가 싫다는데 그렇게 집요함을 보인 여자가 잘못이라 했고, 또 어떤 사람은 별 대수롭지 않은 문제로 시비를 건 남자가 잘못이라고도 했다. 아니면 ‘시골이면 또 어때서?’라며 쿨하게 넘기는 사람도 있었다.
사실 부산을 서너 번 가본 내 눈에는 부산이 시골처럼 느껴지진 않았다. 시골의 사전적 정의가 무엇이건 중요한 것은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이 아닐까. 그리고 다시 한 번 느낀 건, 역시 남자에게 자존심은 생명과도 같다는 사실. 절대, 네버, 남자의 자존심은 건드리면 안 된다는 사실. 그건 마치 벌통을 건드리는 것과 같은 일이니까.
김태은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