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수처리·기포강화·완벽구형 축구는 ‘과학’입니다
이번 브라질월드컵 공인구 ‘브라주카’는 가볍고 반발력이 뛰어나 멀리 날아가는 특징이 있어 골폭풍이 기대된다. 사진제공=아디다스
대회 공인구가 없었던 데다 당시만 해도 나라마다 사용하는 공의 규격이 달랐기 때문에 처음부터 공의 크기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가 맞붙었던 결승전에서는 두 개의 공이 사용됐다. 전반전에서는 아르헨티나의 공이, 후반전에서는 우루과이의 공이 사용됐던 것. 공 때문이었을까. 전반전에서는 아르헨티니가 2대 1로 앞섰던 반면, 후반전에서는 우루과이가 세 골을 몰아넣으면서 결국 4대 2로 승리했다.
# 1934년 이탈리아-페데랄레 102/에카스
소가죽으로 만들어졌으며, 럭비공처럼 생긴 것이 특징이다.
체코슬로바키아와 이탈리아의 결승전에서 이탈리아의 라이문도 오르시 선수가 찬 공이 심하게 휘어서 날아가 골문을 뒤흔든 놀라운 장면이 연출됐다. 1대 0으로 뒤지고 있다가 터진 이 동점골 후 한 골을 더 터뜨리면서 이탈리아가 연장전 접전 끝에 2대 1로 우승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오르시는 다음 날 기자들 앞에서 똑같은 궤적으로 공을 차는 데에는 실패했다. 무려 스무 번이나 시도했는데도 그런 기적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
# 1938년 프랑스-알렌/알렌
소가죽으로 만들었다. 모양이나 특성 모두 이전 대회와 비슷했다.
# 1950년 브라질-슈퍼 듀플로 T/슈퍼볼
역시 소가죽으로 만들었으며, 열두 개의 조각으로 이뤄졌다. 끈으로 묶지 않은 최초의 공이었다.
왼쪽부터 이름 미상, 페데랄레 102, 알렌, 슈퍼듀플로 T, 이름 없음, 탑스타, 크렉, 챌린지.
# 1954년 스위스
18개의 조각으로 이뤄졌으며, 전통이었던 갈색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빛바랜 노란색을 띄는 공이었다.
# 1958년 스웨덴-탑스타/시드스벤스카 라데로흐 렘파브리켄
프랑스의 쥐스트 퐁텐이 월드컵 역사상 한 대회 최다 득점을 기록했다. 여섯 경기에서 무려 13골을 기록했으며, 이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 1962년 칠레-크렉/미스터 쿠스토디오 자모라
물을 너무 잘 흡수하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때문에 비가 오는 날에는 공이 더욱 무거워졌기 때문에 선수들이 경기를 치르는 데 애를 먹었다. 또한 햇빛에 노출되면 색이 누렇게 변색됐다.
# 1966년 잉글랜드-챌린지/슬레진저
월드컵 역사상 마지막 인정구였다. 영국축구협회가 여러 제조업체의 공 가운데 직접 테스트를 거쳐 선택한 공이었다. 영국인들의 자부심을 나타내는 공이기도 했다.
왼쪽부터 텔스타, 텔스타 듀라스트, 탱고, 탱고 에스파냐, 아즈테카, 에트루스코 유니코, 퀘스트라, 트리콜로, 피버노바, 팀가이스트, 자블라니, 브라주카. 사진제공=아디다스
# 1970년 멕시코-텔스타/아디다스
월드컵 최초의 공인구였다.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텔스타’는 축구공의 대표적인 형태인 열두 개의 검정색 오각형과 스무 개의 흰색 육각형 조각을 이어 붙여 만든 모양을 하고 있다. 검정색과 흰색 무늬로 이뤄졌던 이유는 흑백 TV 화면에서 눈에 더 잘 띄게 하기 위해서였다. 멕시코 대회는 월드컵 역사상 처음으로 위성 생중계됐으며, ‘텔스타’란 이름 역시 ‘텔레비전’과 ‘스타’를 조합해서 지었다. 월드컵 대회에서는 스무 개의 공만 사용됐던 반면, 전 세계에서 60만 개의 복제품이 판매될 정도로 폭발적 인기를 얻었다.
# 1974년 서독-텔스타 듀라스트/아디다스
멕시코 월드컵에서 사용됐던 ‘텔스타’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1974년 월드컵에서는 두 가지 공인구가 사용됐는데, 하나는 멕시코 월드컵에서 사용됐던 ‘텔스타’였고, 다른 하나는 ‘칠레’라는 이름의 공이었다. 둘은 디자인만 다를 뿐 재질이나 규격은 모두 같았다. ‘텔스타’가 검정색과 흰색 조각들로 이뤄졌던 반면, ‘칠레’는 모두 흰색 조각들로만 이뤄졌다. 또한 서독 대회 때부터는 공인구에 이름과 로고를 새길 수 있었다.
# 1978년 아르헨티나-탱고/아디다스
월드컵 역사상 가장 유명한 ‘탱고’ 디자인이 처음 등장했다. 이후 1998년까지 ‘탱고’ 디자인을 변형한 공이 계속 사용됐으며, ‘텔스타’와 함께 대표적인 축구공 디자인으로 꼽히고 있다. 모두 스무 개의 조각으로 이뤄져 있으며, 열두 개의 원이 공 전체에 디자인되어 있다. 역대 가장 비싼 공이기도 했다.
월드컵 최초로 방수 기능을 갖춘 공이었다. 또한 월드컵 역사상 마지막 천연 가죽공이기도 했다. 물이 스며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이음매 부분을 고무로 방수 처리한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여러 번 차다 보면 고무 부분이 닳게 되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해진 부분을 통해 물이 스며들어 공이 무거워졌으며, 그 때마다 경기 중간에 여러 차례 공을 바꿔야 했다.
마라도나는 1986년 멕시코월드컵에서 ‘신의 손’ 사건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월드컵 최초의 인조합성가죽 공이었다. 폴리우레탄이 사용됐으며, 때문에 탁월한 방수 기능을 자랑했다. 마른 그라운드나 젖은 그라운드 모두에서 뛰어난 성능을 보였다. 처음으로 개최국에서 영감을 얻은 디자인을 선보인 공이기도 했다. 멕시코 아즈텍 문명의 벽화 문양을 형상화한 디자인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또한 마라도나의 ‘신의 손’으로 유명해진 공이기도 하다.
# 1990년 이탈리아-에트루스코 유니코/아디다스
고대 이탈리아인 에트루리아의 사자 머리를 형상화한 디자인이 특징이었다.
# 1994년 미국-퀘스트라/아디다스
미국의 항공우주기술을 상징하는 디자인으로, 미국의 달 착륙 25주년을 기념해서 제작됐다. 또한 처음으로 기포강화 플라스틱, 즉 표면에 기포가 있는 합성수지를 사용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반발력이 뛰어났다. 방수 기능 역시 향상됐으며, 눈에 띄게 가벼워진 무게 덕분에 공을 찼을 때 가속도가 붙어 멀리 날아가는 특징이 있었다. 선수들이 공을 쉽게 컨트롤할 수 있었으며, 때문에 드리블 속도가 빨라졌다.
# 1998년 프랑스-트리콜로/아디다스
월드컵 최초로 다양한 색깔이 사용된 공이었다. 프랑스 국기인 빨간색, 파란색, 흰색이 사용됐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대표팀 안정환이 슛을 날리는 모습.
전통적인 탱고 디자인을 탈피한 첫 번째 공이었다. 때문에 반대 여론도 많았다. 아시아권 문화, 특히 일본의 수리검에서 영감을 얻어 탄생했다. 너무 가볍다는 이유로 비판이 끊이지 않았던 반면, 공이 날아가는 방향이 정확해 공의 궤적을 예측하기 쉽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었다.
# 2006년 독일-팀가이스트/아디다스
기존의 축구공과는 확연하게 다른 형태를 띠고 있었다. 스무 개의 정육각형과 열두 개의 정오각형 대신 여덟 개의 정육각형과 여섯 개의 정사각형으로 이뤄졌다. 각각의 조각들은 바느질 대신 열접착 방식을 이용해 이어 붙였으며, 때문에 표면이 보다 부드러워졌다. 공의 어느 부분을 차느냐에 따라 공의 방향과 속도가 달라졌던 기존의 공들과 달리 부드러워진 표면 덕분에 슛의 정확도가 높아졌다는 평을 받았다.
# 2010년 남아공-자블라니/아디다스
예측 불가능한 공의 궤적 때문에 선수들 사이에서 불만이 많았던 공이다. 공을 차면 어디로 날아갈지 감을 잡기 어려운 까닭에 ‘초자연적 현상’ ‘슈퍼마켓 볼’이라고 불렸다. 역대 월드컵 공인구 가운데 가장 인기 없는 공이라는 오명을 안았으며, 특히 골키퍼들 사이에서 그랬다.
반면 새로운 ‘그립 앤 그루브’ 기술을 적용한 덕에 손으로 공을 잡기가 보다 쉬워졌다는 평가도 있었다. 이는 골키퍼들을 위한 배려였으며, 공 표면에 미세한 특수 돌기들이 있었다.
3차원 곡선 형태의 디자인과 완벽한 방수력은 이 공의 가장 큰 장점 가운데 하나였다.
# 2014년 브라질-브라주카/아디다스
‘브라주카’란 두 가지 의미를 뜻한다. 하나는 브라질 사람이란 뜻이고, 다른 하나는 특유의 낙천적인 브라질 사람의 기질 또는 브라질 사람으로서의 자부심 등 ‘브라질적인 모든 것’을 의미한다. 월드컵 공인구로는 처음으로 축구팬들의 투표를 통해 이름이 지어졌으며, 모두 100만 명의 브라질 축구팬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당시 ‘브라주카’ 외에도 ‘보사노바’ ‘카르나발레스카’ 등이 물망에 올랐었다. 역동적인 디자인 또한 눈에 띈다. 공 표면의 구불구불한 선은 아마존 강을 형상화한 것이며, 빨강 파랑 초록 등의 색상은 브라질 사람들의 역동성을 나타낸다.
브라주카의 반발력 테스트 장면. 사진제공=아디다스
기술적으로 진보한 것 역시 물론이다. 여섯 개의 조각으로 이뤄진 만큼 완전한 구형에 가까워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2002년 피버노바는 32조각, 2006년 팀가이스트는 14조각, 2010년 자블라니는 8조각), 이음새가 줄어듦으로써 불규칙 바운드가 줄어들었다. 또한 가볍고 반발력이 뛰어나 멀리 날아가는 특징이 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