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장남자? 남장여자? 거참 헷갈리네
남성들을 상대로 꽃뱀 행각을 벌인 가미 잇키가 CCTV에 포착된 모습(왼쪽)과 평소의 남성스런 모습.
여느 꽃뱀 사건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던 이 사건은 뜻밖에도 수사에 난항을 겪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독특하다. 다름 아니라 용의자가 평소 ‘남자’로 생활했기 때문이다. 그가 체포되자 이웃주민들은 “여자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입을 모았다. 도대체 어떻게 된 사연일까. 범행 시에는 여자로, 평상시에는 남자로 생활한 용의자의 신출귀몰한 행각을 살핀다.
“안녕하세요. 일전에 명함을 건네받은 아이코입니다.” 도쿄에서 부동산업을 하는 30대 남성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 것은 지난해 12월 14일이었다. 남성은 얼마 전 메구로역 근처에서 부동산 현수막 광고를 살피던 젊은 여성에게 명함을 건넨 일을 떠올렸다. 여성은 “혼자 살 원룸을 찾고 있다”며 그에게 조심스럽게 상담을 요청해왔다.
그날 오후, 상담을 하면서 두 사람은 금세 친해졌고 곧장 남자의 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저녁 8시 20분경부터는 함께 술을 마시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남자에게 참을 수 없는 졸음이 밀려왔다. 그가 눈을 뜬 건 반나절이 훌쩍 지난 15일 오전 10시. ‘아차’ 싶어 집안을 살펴보았으나 손목시계 등 500만 원 상당의 귀금속과 현금 60만 원이 사라진 후였다. 당연히 여자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또 다른 30대 회사원 남성은 크리스마스이브인 12월 24일 밤, 아이코와 만났다. 커플들 틈에서 쓸쓸히 홀로 배를 채우기 위해 들어간 식당에서 그녀가 상냥히 말을 걸어왔던 것. 25일 오전 2시경, 둘은 남자의 아파트에서 조촐한 크리스마스 파티를 즐겼다. 그리고 그녀가 건넨 술잔을 비운 직후 남자는 의식을 잃었다. 오전 9시 40분이 지나서야 그는 눈을 떴지만, 이미 여자는 집안에 있던 현금 300만 원을 훔쳐 달아난 뒤였다.
유사 수법에 의한 강도사건이 2012년 6월부터 일본 도쿄도내에서 20건 이상 발생했다. 피해자 남성들을 유혹한 것은 모두 ‘아이코’라고 이름을 밝힌 여성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경찰은 “피해자들의 소변검사 결과, 수면제 성분이 검출됐다. 알코올과 수면제를 함께 복용할 경우 자칫 생명까지도 앗아갈 위험이 있다”면서 “용인할 수 없는 흉악 범죄”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용의자 특정이 쉽지 않았다. 경찰이 범인으로 추정되는 여성의 모습이 찍힌 CCTV 장면을 확보해 공개수사로 전환했지만, 답보상태를 거듭했다. 때문에 인터넷에서는 “범인이 혹시 여장남자가 아니냐”는 의혹이 흘러나왔다. 선명한 화상이 남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용의자가 체포되지 않는다는 점이 수상하다는 얘기다.
또 “공개된 화상 속 모습이 귀엽긴 해도 가발 같다” “머리를 매만지는 모습이 어색하다” “일부러 여성처럼 보이려고 행동한다”는 등의 의견이 ‘범인의 여장남자설’에 힘을 실어줬다. 이들은 “평소 범인이 다른 모습을 하고 있어 수사 그물망을 쉽게 빠져나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경찰은 “범인이 여자라는 확증이 있다”면서 관련설을 일축했다.
이러한 가운데 하나의 목격 증언이 수사를 크게 진전시킨다. “예전 미팅에서 만난 여자와 외모가 흡사하다.” 경찰은 이 단서를 통해 용의자의 신원을 확인한다. 가미 잇키라는 30세의 여성으로, 피해자 남성의 집에 남아 있던 DNA 정보와도 정확히 일치했다.
한때 여장한 남자가 아니냐는 추측이 이어졌지만, 7월 7일 경찰이 체포한 용의자는 성별상 분명 여자였다. 헌데 CCTV에 찍힌 아이코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짧은 머리에 바지 차림인 그의 외견은 영락없이 남자 같았다. 인근 주민들 역시 용의자가 체포된 순간 “여자였다니…”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사건은 의외의 상황으로 전개됐다. 대체 그의 정체는 뭘까.
사실 용의자는 성동일성장애(性同一性障碍)로 평소에는 남자로서 생활하고 있었던 것. 용의자가 운영하는 인터넷 블로그에도 자신의 성별을 ‘남성’, 연애 대상은 ‘여성’이라고 적어둔 걸 확인할 수 있다.
용의자를 잘 알고 있는 지인의 말에 따르면 “그는 학창시절부터 몸은 여성이지만 마음은 남자라는 자각이 싹터 괴로워했다”고 한다. 한번은 “여자 탈의실을 사용할 때마다 죄책감이 든다”며 고민을 토로하기도 했다. 여성처럼 보여 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해 2012년 봄에는 유방제거수술을 받았고 이름까지 개명했다. 다만, 생식기를 남성화하는 수술은 아직 받지 못했다.
체포 당시 용의자의 직업은 무직. 지자체로부터 생활보호를 받고 있던 중이었다. <산케이신문>을 비롯한 일본 언론들은 “가슴 성형수술과 사건 발생 시기가 맞물리는 점으로 볼 때 ‘남자’가 되기 위한 수술비용 등으로 경제적 곤궁상태에 처한 용의자가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또한 “2~3년 전부터 우울증을 이유로 병원에서 수면제 처방을 받아온 사실이 밝혀졌다”며 “이를 범행에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번 사건에 대해, 동양대학 범죄심리학과 기류 마사유키 교수는 “젊고 귀여운 여자가 범죄를 저지를 리 없다는 선입견을 역이용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마치 남자가 여장을 하는 것처럼 용의자는 가발을 쓰고 치마를 입어 자신의 모습을 위장했다. 원래 신체가 여성이기 때문에 남자를 유혹하는 몸짓과 표정을 천연덕스럽게 지을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한편, 용의자 가미 잇키는 “나와 전혀 관계없는 일”이라며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에 송치될 때에도 그는 보도진 카메라를 향해 브이 포즈를 취하는 등 기죽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또 일각에서는 “경찰이 용의자를 남자로서 대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성동일성장애란? 생물학적 신체와 달리 인격적으로 자신이 반대의 성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증상. 이 중에서도 외과적 수술에 의해 마음의 성과 같은 몸을 손에 넣으려고 하는 사람을 트랜스섹슈얼(transsexual; TS), 수술까지는 바라지 않은 사람을 트랜스젠더(transgender; TG)라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