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일망타진” 주장…와해냐 잠수냐
지난해 사망한 범서방파 보스 김태촌의 발인. 범서방파는 김태촌 사망 이후에도 사업을 확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찬바람이 스산하게 불던 2009년 11월. 서울 강남 청담사거리는 남다른 전운이 감돌고 있었다. 이곳을 장악한 김태촌의 범서방파 조직원들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던 것. 강남의 한 호텔에 집결한 범서방파 조직원들 손에는 야구방망이와 회칼이 쥐어져 있었다. 범서방파 간부급 조직원은 “충장오비파를 동원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호남권 연합 폭력조직인 충장오비파는 범서방파의 호출에 즉각 강남으로 출동했다. 이들이 모두 모인 숫자만 해도 총 ‘200여 명’에 달했다.
같은 시각 강남 인근에는 부산 최대 폭력조직인 칠성파 조직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이들은 이미 하루 전 부산에서 수십 대의 차량을 동원해 서울로 상경한 터였다. 약 80여 명이 모인 칠성파는 범서방파를 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두 조직이 전쟁을 준비하게 된 계기는 사소한 시비 때문이었다. 범서방파 고문급 나 아무개 씨(47)와 칠성파 부두목 정 아무개 씨(42)가 주식투자 이권을 두고 대립한 게 시비로 이어진 것. 드디어 두 조직이 청담사거리에 모습을 드러낼 무렵, 경찰이 현장에 출동해 둘 사이를 가로막았다.
경찰은 청담사거리 인근을 순찰차로 돌며 조직을 해산시키는 데 주력했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김상중 조직폭력팀장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서울 지역 경찰의 경우 조직 동향에 상당히 민감하다. 사전에 첩보를 입수하고 출동했기에 망정이지 서울 한복판에서 피바람이 일어날 뻔했다”라고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범서방파가 저지른 혐의는 대표적으로 ‘이권 개입’이다. 각종 이권 분쟁에 불법 개입하고 유흥업소에 보호비 명목으로 금품 갈취를 했다는 것이다. 이권 개입의 대표적인 사례는 ‘동두천시 폭행 사건’을 들 수 있다. 지난 2010년 행동대장 김 아무개 씨(44)가 주축이 된 범서방파 선발대는 경기 동두천시 생연동의 유치권 분쟁 현장에 동원돼 유치권자들을 집단 폭행했다. ‘8억 4000만 원’ 상당의 유치권 행사를 포기하게 하기 위한 것. 이밖에도 2009년 행동대원 곽 아무개 씨(40)는 서울 마포구 동교동 건물 관리권 분쟁 현장에 동원돼 관리실을 무단 점유하고 조직자금 ‘2000만 원’을 조성하기도 했다.
이 같은 사례는 범서방파가 현재까지 어떻게 명맥을 이어왔는지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경찰 관계자는 “주로 유흥업소 관리 등으로 유지돼 왔던 과거 조폭과 달리 최근에는 부동산 투자나 대부업, 이권 개입 등이 조폭의 주 돈벌이 수단이다. 범서방파도 이러한 흐름에 같이 가게 된 것”이라고 전했다. 김태촌 사망 이후 급격히 쇠퇴할 것으로 예상됐던 범서방파가 죽지 않고 살아난 것은 이러한 ‘조직사업 다변화’를 했던 배경이 크다는 것이다.
칠성파와 전쟁을 벌이려 했던 일도 경찰은 범죄 혐의에 포함시켰다. 범서방파 내부와 조폭계 일각에서는 “실제로 패싸움을 벌인 것도 아닌데 경찰이 너무 밀어붙이는 게 아니냐”는 불만의 목소리도 있었다고 한다. 이에 김상중 팀장은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4조에 따르면 집단의 위력을 과시한 경우도 처벌에 포함된다”고 전했다.
한편 경찰이 ‘일망타진’을 했다고 하지만, 범서방파가 쉽게 와해되진 않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아직도 김태촌의 추종자들이 존재하고 있고, 범서방파의 두목 등 잔존 세력들이 잠시 몸을 피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범서방파 내부를 잘 알고 있는 한 관계자는 “범서방파는 쉽게 일망타진되지 않는다”라고 귀띔했다.
하지만 경찰은 범서방파가 더 이상 재건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김상중 조직폭력팀장은 “부두목 검거 당시 차 안에는 이불과 옷가지 등이 들어있었다. 그만큼 도피 생활을 이어갔다는 것인데 수배를 내린 두목의 경우에도 지금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닐 것이다. 일부 조직원들이 다른 곳으로 가서 재기를 노릴 수도 있지만 범서방파만큼은 와해됐다고 보는 게 맞다”라고 전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
‘양은이파’ ‘OB동재파’는 지금 보스들 구속·도피…이미 유명무실 경찰은 범서방파를 잡기 위해 4년여의 시간을 쏟았다. 통화내역, 접견녹취, 조직자금 계좌분석 등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다. 이 중 특히 범서방파 피해자들의 제보가 핵심이었다. 그들을 따라 범서방파를 해부하고 혐의를 파악하는데 주력했다. 거대 폭력조직을 잡는 데 최소한 몇 년은 쏟아야 한다는 게 경찰 관계자의 말이다. 지난 2001년 3대 조직 수괴급 구속 모습. 그렇다면 범서방파를 포함해 국내 3대 조직으로 꼽혔던 양은이파와 OB동재파는 어떨까. 양은이파의 경우 두목 조양은(64)이 지난해 40억 원대 대출 사기 혐의로 구속된 이후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중이다. OB동재파 두목 이동재 역시 1988년 양은이파에게 급습을 당한 이후 미국으로 떠나 현재 체류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경찰 관계자는 “조양은의 추종 세력이 있긴 하지만 거의 나이를 많이 먹었다. OB동재파 역시 이제는 유명무실이다. 그나마 범서방파가 계속해서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라고 전했다. 한편 최근에는 서울과 경기 지역 조폭이 맹위를 떨치고 있다고 한다. 서울 지역은 신림동 ‘이글스파’, ‘수유리파’, ‘상봉동파’가 세력을 확장하고 있고, 경기 지역은 ‘안양 타이거파’, ‘안산 원주민파’, ‘평택 청하위생파’ 등이 대표적이다. 서울, 경기 지역에 이권이 많이 걸려 있는 만큼 폭력 조직들이 세를 확장하고 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