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반기 최고흥행작 <가문의 영광> | ||
지난해 <조폭마누라>를 필두로, <엽기적인 그녀> <달마야 놀자> <시월애>에 이어 다섯 번째로 리메이크 판권이 할리우드에 팔린 한국영화가 됐다. 불과 3∼4년 전만 해도 한국영화가 외화를 표절했다는 시비에 시달린 것을 생각하면 대단한 약진이다.
<가문의 영광>의 사례가 주목받는 이유는 그저 할리우드 메이저사와 계약을 맺었다는 데 있지 않다. 태원엔터테인먼트 정태원 대표의 이름이 할리우드 판 <가문의 영광>에 ‘코프로듀서''로 참여한다는 조건도 명시해놓은 것이다. 조건 역시 앞서 계약이 체결된 다른 영화에 결코 밑지지 않는 ‘50만달러에 전 세계 수익의 3%''라는 파격적인 대우다.
더욱이 캐스팅도 ‘현재 한국의 김정은'' 정도의 흥행을 보장받는 톱스타의 캐스팅을 다짐받았다. 미국에서 리메이크되어 흥행성적이 좋을 경우 원작인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을 모을 충분한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한국 영화사상 처음으로 미국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 판권이 팔린 <조폭마누라>는 지난해 미국 미라맥스사와 1백10만달러(약 14억3천만원)에 계약했다. 이 계약액은 아시아 영화의 리메이크 계약액으로는 최고 수준.
앞서 일본영화 <링>이 1백만달러에 계약된 바 있다. 미라맥스측은 리메이크 버전에서 카메론 디아즈 등 할리우드 스타급 배우를 신은경 역으로 캐스팅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까닭에 지난해 한동안 각종 사이트마다 “신은경 역으로 제일 잘 어울리는 할리우드 스타는?"이란 설문이 나돌기도 했다.
<조폭마누라>의 할리우드 판은 1∼2년 내에 제작, 전 세계에 배급될 예정이며 세계 각 국가의 박스오피스 집계에 따라 5%의 추가 러닝개런티를 받게 된다. 이 경우 제작사인 서세원프로덕션은 최소 1천만달러(약 1백30억원)의 수익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엽기적인 그녀>의 리메이크 판권을 딴 영화사는 드림웍스. ‘판권료 75만달러(약 9억7천5백만원), 전 세계 흥행 수익의 4%''란 조건으로 계약을 맺었다. <엽기적인 그녀>의 영어판 각색은 <브링 잇 온>과 박중훈 주연의 <찰리의 진실> 등의 각본을 쓴 제시카 벤딩거가 맡으며 제작은 마돈나가 소유주인 매버릭필름이 담당한다.
<달마야 놀자> 역시 메이저인 MGM에서 리메이크 판권을 가져갔다. 판권료는 30만달러(약 3억9천만원)에 전 세계 흥행 수익의 5%를 보장받았다.
<시월애>도 워너 브러더스가 판권료 50만달러와 전 세계 배급 수익의 2.5%를 주는 조건으로 리메이크 판권을 가져갔다. 2000년 국내 개봉됐던 <시월애>는 편지로 시공을 초월한 사랑을 나누는 멜로 영화로 시간차를 두고 흥미롭게 전개되는 스토리 라인과 비주얼한 영상에 반한 워너측이 각별한 관심을 갖고 영화화를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리메이크 판권 해외판매의 길을 처음 튼 영화는 <접속>. 제작사 명필름과 일신창투는 독일 영화사 박스필름과 독일판 판권 계약을 맺어 5만마르크(약 3천만원)를 받고 독일판 <접속>의 한국 내 상영수익의 50%를 갖기로 했다. 지난해 독일에서 <해피엔드와 여인2>라는 제목으로 완성된 리메이크판 <접속>은 그러나 안타깝게도 독일 흥행에서 별 재미를 못 본 것으로 알려졌다.
1998년작 <조용한 가족>은 일본의 제작사인 세딕 인터내셔널사에서 리메이크 판권을 가져가 미이케 다카시 감독이 <가타쿠리家의 행복>이란 제목으로 영화화했다. 뮤지컬에 클레이애니메이션 기법까지 등장해 한국판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로 만들었다고 전하는 이 영화는 이미 지난 7월 부천국제영화제에서 상영돼 관심을 모았다.
▲ 엽기적인 그녀 | ||
다른 여러 나라에서도 우리 영화에 대해 알아보고 갔고, 할리우드 제작사도 그 중 하나"라고 밝혔다. 또한 미로비젼, 시네클릭 등 해외마케팅 전문회사들도 해외 유수의 영화제와 크고 작은 필름마트 등을 통해 우리 영화를 홍보해왔다. 이렇게 소개된 우리 영화들에 대한 관객 반응이 좋은 것도 리메이크 판권계약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게 했다.
<엽기적인 그녀>의 제작사 신씨네측은 “외국 관객이나 한국 관객이나 울고 웃고 감동 받는 대목이 거의 같다. 또 신선한 캐릭터 등 우리 영화의 매력 요소가 많은 것이 좋은 반응을 얻는 이유다. 흥행의 확신이 높아지니 리메이크 투자가 안전하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미국 메이저 영화사에서 영화 한 편의 시나리오 만들기에 투입되는 비용은 4백만∼5백만달러에서 많게는 1천만달러까지 든다. 스타 작가 한 명에게 들이는 시나리오료만 해도 2백만달러(약 26억원)에 이를 정도. 그에 비해 1백만달러 안팎의 돈을 지불하고 상업성 높은 시나리오를 확보, 개작할 수 있다면 비용면으로 꽤 효율적인 제작 방식이 될 수 있다.
우리 영화에 대해 눈독을 들일 만한 것이다. 그러나 리메이크 판권이 팔렸다고 해서 무조건 낙관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정작 시장에 내놓는 과정에서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다. 제작 조건이 안 맞으면 영화 제작이 아예 안 될 수도 있다는 것은 할리우드 사정도 한국 시장과 마찬가지다.
<엽기적인 그녀>는 판권이 팔린 지 일년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도 의견 조율중이다. 신씨네 기획실 김수연씨는 “시나리오 초고가 나와서 그걸 보면서 조심스럽게 진단하고 있다. 배급권 등 처음 나온 계약들이 다 지켜질 수 있도록 지금도 의견을 계속 조율하고 있는 과정에 있다"고 밝혔다.
또 한편에서는 우리 영화가 해외로 진출할 수도 있지만 역으로 만들어진 할리우드 판이 국내에서 개봉되어 그 수익을 고스란히 가져갈 수도 있다는 점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기도 한다.
그러나 줄리아 로버츠나 카메론 디아즈와 같은 유명여배우가 ‘엽기적인 그녀''나 ‘조폭마누라''가 되어 설치고 다닐 걸 상상하는 것만 해도 일단 즐거운 일. 한쪽에서는 한국영화의 아이디어 빈곤, 소재 고갈, 특정 장르영화만의 편중 생산을 염려하면서도 또 한쪽에서는 한국영화의 아이디어가 인정받아 팔려나가고 있는 상황.
얼마 전까지만 해도 ‘표절혐의''에 시달렸 한국영화가 ‘뛰어난 오리지널리티''를 인정받는 역전현상은 고무적인 일임에 분명하다. 김민정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