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01년 3월 <태조 왕건> 100회 방영 자축연의 이환경 작가(오른쪽 네 번째). | ||
이 작가의 사연이 알려진 것은 그를 오랫동안 지켜봐 온 주변인들에 의해서다. 이 작가는 지난 10년간 암투병중인 아내 이씨를 위해 눈물겨운 간병을 해왔다고 한다. 지난 14일 어렵게 전화 인터뷰에 응한 아내 이씨의 이야기를 통해 가슴 적시는 뜨거운 부부애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이환경 작가의 부인 이복순씨가 투병생활을 시작한 것은 10여년 전부터. 대장에서 발병된 암은 3∼4년에 한 번씩 재발돼 위 등 다른 장기로 전이되었고 그러는 동안 아내 이씨는 대수술을 네 차례나 받으며 한때 ‘시한부 선고’를 받기도 했었다. 이처럼 어려운 상황에서 이 작가는 무려 10년 가까이 아내의 병수발을 하며 꾸준히 작품 활동을 병행해 왔다.
그러나 이 같은 사실은 그와 친분이 있는 몇몇 지인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눈치채지 못했다. 사생활 노출을 극도로 꺼리는 이 작가의 성격 탓. 작가 입문 당시부터 이 작가에게 수업을 받아온 한 방송작가는 “부인이 수술을 받을 때도 일을 할 만큼 티를 내지 않으셨던 분”이라고 설명했다.
그런 와중에도 이 작가는 아내 이씨의 간병을 위해 몸에 좋다는 것을 직접 구하러 다닐 정도로 지극 정성을 다했다. 그의 한 측근은 “선생님께서 부인 몸에 좋다는 것은 전부 수소문해서 직접 구했고 여의치 않을 경우엔 절에 부탁을 하기도 하셨다”고 전했다.
오래 전부터 절을 자주 찾던 이 작가는 절에서 만난 스님들과 산을 잘 아는 이들에게 ‘산삼’을 구해달라고 간청할 정도였다. 결국 어렵게 산삼을 구한 이 작가는 아내에게 즉시 달여 먹였고 그 정성 때문인지 한때 이씨의 병이 호전 증세를 보이기도 했었다.
▲ <태조 왕건> <용의 눈물> 등으로 잘 알려진 이환경 작가는 암에 걸린 아내를 10여년 동안 간호해 왔다고 한다. | ||
이러한 남편의 마음 씀씀이에 대해 아내 이씨는 지난 14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남편에게) 너무 고맙다. 작품 쓰랴 간병하랴 그동안 고생이 많았다. 워낙 정이 많은 분이어서 10년 동안 변함없이 곁에서 나를 지켜주었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측근은 이환경 작가가 결혼 당시부터 아내에 대한 남다른 고마움을 표현했다고 한다. 지난 80년 5월 결혼식을 올릴 때만 해도 이 작가는 방송 작가로 갓 입문한 신출내기였다. 당시 이 작가는 아내 이씨에게 “평생을 배고프게 지낼 수도 있는데 괜찮겠느냐”는 걱정을 토로했다. 그런데 아내가 “내 염려는 하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을 하라”며 지지해준 데 대해 이 작가는 두고두고 아내에게 그 빚을 다 갚겠다고 맹세했다는 것. 이후 이 작가는 8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나리오 부문에 <겨울바람>이 당선되고, <훠어이 훠어이> <무풍지대> <적색지대> <태조 왕건> 등 소설집과 사극 등 선 굵은 남성적인 작품으로 인기를 끌며 한국의 대표작가로 성공했다.
수많은 작가 지망생들이 이 작가를 모델로 삼는 것은 그의 ‘뚝심’ 때문이다. 그는 작품이 풀리지 않을 때면 깊은 산 속에 있는 절에 들어가 마음을 가다듬는 것으로 유명하다. 곁에서 그를 10여 년간 지켜봐온 한 후배 작가는 “글에 대한 열정이 대단해서 후배들에게는 신과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또한 이 작가의 삶 자체가 ‘한편의 드라마’라고 주변인들은 입을 모은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한 이 작가는 어린 시절 가난 때문에 온갖 험한 일을 도맡아 했었다. 이런 내용은 얼마 전 <영웅시대>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되었는데, 이 작가는 “숱한 직업군의 밑바닥 세계를 전전하면서 최종 도착지인 노동판에 이르렀다…꿀꿀이죽도 감지덕지했던 그 혹독한 시절은 내게 상당히 오래 지속됐다”고 밝힌 바 있다.
다행히 아내 이씨의 병세는 상당히 호전됐다고 한다. 요즘 통원치료를 받고 있다는 아내 이씨의 목소리는 여리고 작았지만 남편 이환경 작가에 대한 믿음만큼은 강한 느낌으로 전달돼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