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가 풍운아 ‘마이웨이’ 행보 막내리나
연이은 파격행보로 구설에 오르내린 주진형 한화증권 사장(작은 사진)이 경질설에 휩싸였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위치한 한화투자증권.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그의 ‘돌출행동’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2013년 7월 한화증권 대표이사직에 오른 주 사장은 취임 직후 무려 350여 명의 직원을 내보내는 구조조정을 실시하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올해 상반기까지 정규직 501명, 계약직 146명 등 647명을 회사에서 내보냈다. 임원도 무려 28명이나 옷을 벗었다. 2년여 만에 전체 임직원의 40%가량이 한화증권을 떠난 셈이다. 이를 두고 ‘구조조정의 달인’이라는 말도 나왔지만 ‘이단아’라는 소리도 들어야 했다. 특히 임직원 성과급 폐지 등으로 우수인력이 유출되는 현상을 자초했다는 혹평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주변의 평가에 아랑곳하지 않고 펀드제도 개편, ‘매도’ 보고서 확대, 서비스 선택제 등 과거에 없던 방식을 잇달아 도입하며 ‘마이웨이’를 이어갔다.
우선 그는 지난해 3월 전체 종목 중에서 ‘중립’과 ‘매도’ 비중을 40% 수준으로 조정하겠다고 전격 발표해 여의도 증권가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기업에 불리한 리포트를 내면 애널리스트가 기업탐방을 거절당하는 등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어 국내 증권사에서 ‘매도’ 리포트는 찾아보기 힘든 것이 관행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4년 1월부터 지난 5월까지 발행된 증권사 애널리스트 보고서 2만 9349건 중 매도 의견은 0.1%인 35건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대부분 한화증권이 내놓은 리포트들이다.
리서치센터에 언론사에나 있는 ‘편집국’을 설치한 것도 파격행보의 대표적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주 사장은 최근 ‘읽기 쉬운 리포트’를 표방하며 리서치센터 내부에 편집국을 만들고 언론인과 소설가를 채용했다. 전문용어 투성이인 리포트를 투자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말로 풀어서 쓰라는 이유였다. 이에 대해서도 평가가 엇갈린다. 암호문 같은 증권사 리포트를 혁신했다는 칭찬이 있는가 하면, 전문성이 결여됐다는 평가절하도 존재한다.
실제로 한화투자증권 리서치센터 인력은 총 16명으로 주 사장 취임 전보다 크게 줄었다. 게다가 16명 가운데 절반인 8명은 ‘리서치 보조’여서 실제 전문 애널리스트는 10명도 되지 않는 셈이다. 읽기 쉬운 것도 중요하지만 투자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해야 할 리서치 인력 감소는 결국 리포트의 품질저하로 이어진다는 분석이다. 게다가 리서치센터의 분석 리포트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도록 해 오히려 고객의 접근성을 떨어뜨렸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한화그룹은 주 사장의 이런 파격을 적잖이 불편한 심기로 지켜봐왔다. 일부 처신에 대해서는 그룹 측에서 주의를 줬다는 소식도 여러 차례 들렸다. 하지만 이 역시 약효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금융권에서는 한화증권의 보고서가 나온 뒤 삼성 측이 한화에 서운함을 표시했고, 이 때문에 한화그룹 측이 몹시 곤혹스러워했다는 소식이 심심찮게 들려왔다. 이로 인해 주 사장은 그룹으로부터 강력한 ‘경고’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정황이 그룹 원로인 김연배 전 한화생명 부회장의 갑작스런 한화증권 방문이다. 김연배 전 부회장은 지난 7월 한화증권의 리포트가 나오던 날 아침 한화생명으로 출근하지 않고 한화증권 본사로 차를 돌렸다. 금융권에 따르면 김 전 부회장은 곧바로 사장실로 향했고, 주 사장과 짧은 대화를 나눈 뒤 한화증권을 떠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그 뒤에도 주 사장의 파격행보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이기권 장관을 비난한 것도 김 전 부회장의 방문이 있은 뒤였고, 최근에는 자신의 연봉이 적다는 뉘앙스의 글을 남기기도 했다.
이렇듯 주 사장의 돈키호테식 행보가 이어지자 결국 그룹 측이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9월 들어 주 사장의 경질설이 파다하게 퍼졌고, 최근에는 그가 임기를 마치기 힘들 것이라는 소식마저 들리고 있다. 한화증권 측은 이를 모두 부인하고 있다. 한화투자증권 관계자는 “그룹 측에 확인한 결과 주진형 사장 경질설은 사실무근인 것으로 확인됐다”며 손사래를 치고 있다.
한화증권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그룹 측은 이미 물밑작업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에 따르면 한화그룹은 한화증권 사내이사 추가선임에 나선 것으로 전해진다. 사내이사를 별도로 선임한다는 것은 사실상 주 사장의 경질 수순이라는 것이 금융권의 시각이다. 한화증권은 내년 초 주주총회를 열 예정이다. ‘증권가의 풍운아’ 주진형 사장의 파격이 중도하차로 막을 내릴지 여부는 이때 최종확인될 것으로 보인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