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희섭 | ||
땀과 눈물로 뒤범벅이 된 객지 생활 4년 만에 메이저리거로 승격, 마침내 팀의 주전 1루수 자리를 차지한 최희섭(24·시카고 컵스)의 올 시즌을 맞은 감회는 남다르다. 지난 99년 고려대(법학과) 1학년을 마치고 미국에 첫발을 내디딘 그를 두고 당시 국내 야구계 인사들이 ‘최희섭이 메이저리거가 되면 손에 장을 지지겠다’고 단언했을 만큼 동양인 선수의 메이저리그 진출은 험난함 그 자체였다.
195cm의 키에 110kg의 체격은 미국이나 중남미 선수들에 비해 전혀 뒤질 게 없었지만 ‘출신 성분’이 갖는 한계는 최희섭의 발목을 붙잡는 결정적인 ‘약점’으로 작용하곤 했었다.
그러나 싱글A를 시작으로 더블A, 그리고 메이저리그 시범경기 초청선수를 거치면서 최희섭은 변신에 변신을 거듭했다. 그리고 마침내 2003년, 그는 새미 소사가 두렵지 않을 정도로 무서운 신인이 되어 꿈의 무대에 서게 됐다. 팀 내 경쟁이 가장 치열하다는 주전 1루수 자리를 꿰찬 것은 물론 최고 강타자의 상징인 클린업트리오에 합류해 팀 타선을 이끌게 됐다.
시즌 초반의 성적을 이어간다면 올 시즌 신인왕 영순위 후보로 손색이 없다는 게 미국 현지 분위기다.
가슴 떨리는 시즌 개막전을 치른 뒤 연일 맹타를 날리며 자신의 입지를 굳히고 있는 최희섭은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담담하고 차분한 어조로 최근의 심경을 털어놓았다. 전화 인터뷰와 이메일, 그리고 에이전트인 이치훈씨의 추가 설명 등 최희섭과의 인터뷰는 다양한 방법으로 진행되었다.
“많이 편해진 것 같아요. 이전엔 약간만 성적이 안좋아도 조바심 나고 불안했는데 지금은 경험이 쌓여서인지 침착해졌어요. 1999년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을 때부터 늘 이 순간(메이저리거로 타석에 들어설 때)만 생각하며 기다려왔는데 막상 발을 담궈보니까 별다른 느낌이 오지 않네요.”
최희섭은 메이저리거로서 첫 시즌을 치르는 소감에 대해 큰 감흥을 나타내지 않았다. 시범경기 때만 해도 “매 경기마다 첫 경기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소 형식적인 대답을 전했다. 하지만 지금은 말처럼 마냥 편안할 수만은 없는 상황. 연일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가 쏠리고 있으니 아무리 떨쳐버리려고 해도 ‘부담’이란 단어는 최희섭을 긴장의 한가운데로 내몰고 있다.
▲ 캐리커쳐=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최희섭은 2년 전 부상당했을 때만 해도 심한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렸지만 그만큼 더 강해질 수도 있었다고 한다. 바로 옆에서 친형처럼 따르는 에이전트 이치훈씨의 “기회는 반드시 온다. 지금의 어려움이 분명 전화위복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충고가 슬럼프를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눈치보며 산 적이 없었는데 그때는 코칭스태프와 동료들의 눈치를 보고 살았다”는 그의 고백이 당시의 좌절감을 읽게 해준다.
최희섭이 ‘살벌한’ 메이저리그에서 생존할 수 있는 가장 큰 요인은 철저한 자기관리다. 생활의 모든 초점을 야구에 맞춰놓고 방해받는 일은 절대 하지 않는, 수도승 같은 절제의 생활이 최희섭을 진정한 메이저리거로 우뚝 설 수 있게 만들었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규칙적인 생활이 가장 중요해요. 만약 하루를 정해진 스케줄대로 보내지 않으면 다음날 게임하는 데 바로 지장을 받게 되거든요. 야구에 방해를 받을 수 있는 일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는다는 게 제 생활의 원칙입니다. 영원한 승리자는 없는 거잖아요.”
최희섭은 알려져 있다시피 시력에 지장을 받을까봐 영화 감상을 피하고 컴퓨터를 이용하지 않는 것은 물론, 만화책도 보지 않는다고 한다. 야구에만 집중하기 위해 휴대폰도 아예 장만하지 않았다.
항상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아침 식사를 거르지 않는 것도 돋보이는 부분. 야구장 주변에 위치한 콘도미니엄을 빌려 사용하는 최희섭은 4년 전 마이너리거 때 구입한 혼다 패스포트 지프를 아직까지 타고다닌다. 가끔 기자들이 박찬호처럼 집도 장만하고 고급 승용차를 굴려야 하지 않느냐고 물을 때마다 하는 말이 있다.
“난 이제 겨우 시작인데요. (박)찬호형처럼 대우받으려면 앞으로 더 열심히 뛰어야죠. 그런데 잘 수 있는 집과 굴러다니는 지프만 있어도 행복한데요, 뭘.”
야구만 생각하는 사람이라 언뜻 재미없고 무뚝뚝할 것 같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불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뒤 교회에서 만나는 친구들이 인정할 만큼 유머도 뛰어나고 인터뷰 솜씨가 상대방이 유쾌해질 정도로 ‘쿨’하다. ‘뜬금없이’ 결혼, 여자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끄집어내봤다.
“애인의 의미를 담은 여자친구는 진짜 없어요. 결혼요? 늦게 하려고요. 치훈이형 가면 바로 뒤따라 갈 거예요. 사실 여자 만날 시간이 없어요. 지금은 여자친구 운운하는 것 자체가 사치로 느껴질 정도입니다.”
최희섭의 어릴 때 꿈은 TV 출연이었다고 한다. 음악을 좋아했기 때문에 합창단이나 성악쪽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으로 야구 게임에 출전해서 홈런을 쳤던 게 자신의 인생을 결정짓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설명한다.
“야구는 인생살이와 비슷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찬스가 왔을 때 득점을 올리면 그날의 승리자가 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엔 패배의 쓰라림을 떠안는 거죠. 중요한 건 패배했다고 해서 주저앉으면 승리의 기쁨을 평생 맛볼 수 없다는 거예요. 도전하는 자, 노력하는 자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는 것, 이게 바로 야구의 매력입니다.”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점점 빠지게 되는 묘한 분위기가 전해졌다. 고생을 많이 해서인지 야구에 대한 철학과 기품이 인터뷰 속에 그대로 녹아나는 듯 했다. 메이저리그에서 꼭 해내고 싶은 목표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는 겁니다. 개인적으로 어니 뱅스를 아주 좋아합니다. 나에게 많은 도움과 충고를 주셨고 인간적인 면면에서도 많이 닮고 싶은 분이죠. 특히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 후에도 사회에서 좋은 일을 하시는 모습을 보고 ‘모델’로 삼고 있어요.”
인터뷰 말미에 ‘야구선수 최희섭에 대한 자평’을 내려달라고 했다. ‘우문’에 ‘현답’이 돌아왔다.
“그 대답은 내가 야구를 마친 이후에 말씀드릴게요.”
최근 최희섭의 마음을 움직이는 화두는 ‘초심을 잃지 말자’라고 한다. 매스컴으로부터 쏟아지는 인터뷰 요청에 일일이 응하지 못한 데 대해 미안함을 전하는 최희섭은 자주 이런 말을 되풀이했다.
“이제 막 스타트라인을 벗어난 신인이에요. 당분간은 지켜만 봐주세요. 나 스스로 ‘톱타자’가 됐다고 생각할 때, 그렇게 인정할 수 있을 때, 그땐 떳떳하게 여러분 앞에 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