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구 참맛 이제 알겠다.SK 와이번즈에서 ‘맏형’ 으로 불리는 김기태 선수. 비록 준우승에 머물렀 지만 삼성시절 설움을 훌훌 털어버린듯 시원한 함박웃음을 지어보였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SK에서 ‘보스’와 ‘맏형’의 대명사로 불리는 김기태(34). 13년 만에 처음 서본 한국시리즈에서 준우승에 머무는 바람에 제대로 ‘한풀이’를 못했다는 김기태는 불과 4일 전에 끝난 한국시리즈를 떠올리며 새삼 감회에 젖는 듯했다. 초보 감독(조범현)과 고참 선수가 한데 어울려 신명난 ‘잔치’를 벌이려 했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사실이 지금까지도 그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다. 사람 좋고 생각이 깊은 김기태와의 ‘진한’ 술자리 이야기를 지면으로 옮겨본다.
선배님, 소원 한번 풀어 드리겠습니다.” 이 말은 SK가 플레이오프에서 삼성을 꺾고 한국시리즈 진출을 결정한 날, 후배들이 김기태에게 약속한 ‘선물’이었다. 91년 쌍방울 입단 후 12년 동안 한국시리즈와 인연 없는 야구 인생을 걷다가 13년째 되는 해 엄청난 행운을 목전에 둔 ‘큰형님’의 심리 상태를 후배들이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워낙 신인들이 많다보니 저와 같은 고참과 신참 사이의 중간층이 없어서 처음엔 좀 힘들었어요. 제가 먼저 다가갔어요. 젊은 후배들과 친해지려고 보이지 않는 노력을 기울였는데 잘 받아줬던 것 같아요. 비록 7차전에서 무릎을 꿇고 말았지만 우승 못지 않은 선물을 얻었어요. 바로 선수들 간의 사랑이죠.”
밑바닥이 훤히 보이는 어려운 ‘살림살이’였음에도 절망을 해본 적은 없었다고 한다. 물론 6, 7차전을 치르면서는 전력의 한계를 실감하고 안타까움에 잠을 이루지 못한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선수들에 대한 고마움과 자랑스러움이 김기태의 망가진 몸을 추스르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조범현 감독님을 통해 야구는 이름으로 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잘나가는 선수들에서부터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무명 선수들까지 티 내지 않고 토닥거리며 끌고가는 리더십은 아무한테서나 나오는 게 아니거든요.”
시즌 초반 상승세를 타다가 8월부터 팀 성적이 저조해지면서 4강 진입 자체가 불투명해지자 김기태는 즉시 선수단을 소집했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일장연설’을 한 김기태의 멘트를 소개하면 이렇다. “여러분, 내일부터는 촌놈 마라톤 하는 것처럼 첫 끗발이 개끗발이 되는 우를 범하지 맙시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빵과 우유를 준다고 해서 야구부에 가입한 것이 김기태의 인생을 결정짓는 첫 ‘안타’였다고 한다. 그래서 시작한 야구는 선수로선 순탄한 생활을 지속시켜 줬지만 학생이자 남자로선 크고 작은 사고를 일으키는 원인으로도 작용했다.
“싸움을 많이 했지요. 기분 안 좋은 어떤 날은 누가 싸움을 걸어오면 오히려 고마웠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래도 ‘망나니’는 아니었어요. 룰이 있었어요. 일방적으로 때리는 건 폭행이나 마찬가지예요. 치고 받아야만 싸움이 되는 거죠.”
그의 ‘싸움’도 세월의 흐름과 함께 형태와 방법이 변화되었다고 한다. 프로에 입단해서는 ‘맞장 뜨기’를 지양하고 무조건 ‘죄송합니다’라며 머리를 조아리고 싸움이 일어나는 걸 원천적으로 봉쇄했다는 것. 공인이라는 이름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었다.
술 이야기도 빠질 수 없는 ‘안주거리’였다. 야구계에서 삼성의 선동열 코치를 능가하는 ‘술꾼’으로 꼽히는 김기태인지라 술과 관련해서는 할 말도, 털어놓을 사연도 무궁무진할 것 같았다.
“에이, (선)동열이형과 절 비교하는 건 무리죠. 몇 차례 동열이형과 대작을 해봤지만 전 ‘쨉’도 안 돼요. 아예 그 형을 넘어설 생각을 포기하는 게 낫겠다 싶을 정도였으니까요. 술 잘 마신다는 얘기는 정말 오래된 ‘전설’이에요. 물론 한때는 돈이 없거나 술집 문을 닫아서 술을 못 마시게 되는 걸 빼놓고는 ‘주당’의 경지에서 수위를 다퉜던 적이 있었죠. ‘아 옛날이여’입니다. 지금은 그렇게 못해요.”
왜 김응용 감독에 대한 부분으로 화제가 옮겨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대화의 내용이 3년간 몸담으며 2군 생활의 반복과 한국시리즈 엔트리에서 제외되는 설움 등을 겪었던 삼성 시절에 대한 부분들로 바뀌면서 자연스레 김 감독과 김기태와의 당시 ‘불화설’을 꺼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 옛날 얘긴데요 뭐. 물론 힘들었고 납득할 수 없는 (선수) 운영으로 괴로운 적도 있었어요. 2001년 두산과의 한국시리즈에서 엔트리에조차 이름을 올리지 못했던 현실은 야구 인생 자체를 절망스럽게 만들기도 했어요. 지금 술자리니까 이렇게는 얘기할 수 있겠네요. 공식적인 멘트를 ‘제가 야구를 못해서 그런 결과가 나왔다’라고 말한다면 비공식적으론 ‘쪼깨 서운했다’라는 표현 정도는.”
걱정 없이 세상을 살 것 같은 김기태한테도 어쩌지 못하는 아픔이 자리하고 있었다. 바로 아내 신세영씨가 희귀병인 루푸스병으로 투병중이기 때문이다.
“그때 처음으로 아내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솔직히 밖에선 인간미 좋은 김기태지만 집에선 자기중심적이고 권위적이면서 아내한테 일방적인 희생만을 강요하는 재미없는 남편이었거든요. 병상에 누워있는 아내와 결혼 후 처음으로 오래 대화를 나눠봤던 것 같아요. 저에 대한 섭섭함이 의외로 크고 깊었어요. 많이 반성했고 후회하며 아내와 벌어졌던 거리를 좁혀가려고 노력했어요.”
다행히도 지금은 아내의 몸 상태가 호전돼서 손수 운전도 하고 아이들과 외출을 할 만큼 건강을 회복하고 있다고 한다. 요즘 김기태가 사실상 술을 끊게 된 분명한 이유 한 가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전 그동안 세상을 너무 모르고 살았어요. 야구선수라면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방망이를 놓고 나면 아무 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어요. 그래서 겁나요. 예전에는 그렇게 하기 싫은 공부를 다시, 진짜로 하고 싶은 것도 세상을 배우고 싶어서입니다. 은퇴하면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싶어요.”
앞으로 뛸 날보다 뛴 날이 훨씬 많은 야구선수 김기태한테 꼭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 있었다. 바로 과거 선수협의회가 출범할 당시 삼성 선수단을 이끌고 상경했다가 양준혁과 의견 충돌을 빚고 삼성 선수들을 철수시켰던 일화였다. 하지만 그 질문은 남겨두기로 했다. 만약 ‘취중토크’를 통해 또다시 만나고 싶은 선수를 꼽으라면 그 처음 대상은 김기태가 될 것 같다. 김기태가 또다시 ‘취중토크’를 원한다면 말이다. 그땐 그 이야기를 꼭 물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