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일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7차전에서 전주 KCC의 승리를 이끈 이상민이 우승트로피에 입을 맞추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지난 10일 원주 치악체육관에서 벌어진 2003~2004 프로농구 챔피언 결정전 7차전 마지막 날, KCC의 우승과 함께 이상민이 생애 최초의 챔피언 결정전 MVP에 오르자 경기 전 마지막 게임을 치르는 허재한테 쏟아진 스포트라이트가 그대로 이상민한테 옮겨진 듯 뜨거운 취재 공세가 펼쳐졌다. 특히 MVP를 ‘취중토크’의 대상자로 정해 놓고 미리 섭외도 못한 채 경기가 끝나기만을 기다린 기자 입장에선 ‘업계’에서조차 인터뷰하기 어렵다고 소문난 이상민을 뒤쫓아 다니며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등 조바심을 낼 수밖에 없었다.
원주에서 숙소가 있는 경기도 용인의 구성 마북리로 행선지를 옮기는 선수단 버스를 놓치고 붙잡는 곡예 레이스를 펼치며, 한편으론 마감 직전 무리한 일정을 잡은 기자의 욕심을 탓하며, 숙소에 도착한 후에도 팬들에 둘러싸인 이상민을 빼내기 위해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해, 그렇게 힘들게 이상민과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과정은 ‘우여곡절’ 그 자체였지만 기자의 수고와 노력에 보답이라도 하려는 듯 정말 최선을 다해 ‘열심히’ 술도 마시고 인터뷰에 응하는 이상민을 보면서 모든 시름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선수단 회식 장소와, 외부인 탑승을 금기시하는 선수단 버스에서, 그리고 숙소 응접실 등을 옮겨다니며 이뤄진 이상민과의 짧고 굵은 데이트를 공개한다.
걱정했던 술자리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바로 선수단 숙소 부근의 식당에서 구단 관계자와 선수, 기자, 팬들이 모인 가운데 우승 축하연이 벌어졌기 때문. 다른 선수한테 양해를 구하고 이상민의 옆자리에 앉아 난리 법석인 상황에서 ‘취중토크’를 시작했는데 재미있는 건 마냥 불안해하고 정신없어 하는 기자와는 달리 이상민은 아주 느긋하고 여유있게 맥주도 마시고 샴페인도 터트리며 분위기를 즐겼다는 사실이다.
이상민이 누구인가. 연세대 시절 ‘산소 같은 남자’로 농구선수 중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며 농구대잔치를 휩쓸었다면 프로 입단 후에도 홈팀이 따로 없다는 말이 나올 만큼 전국적인 인기세를 과시하는 최고의 스타플레이어 아닌가. 이상민이 뜨면 최소한 2천 명의 팬들이 농구장을 찾는다고 할 만큼 이상민은 총각 때나 결혼해서 두 자녀를 둔 지금까지도 인기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연결 고리를 이어가고 있었다.
▲ 허재의 마크를 뚫고 돌진하는 이상민. | ||
농담과 유머에는 소질 없어 보이는 사람이 우승에 따른 흥겨움 탓인지 재미난 이야기를 곧잘 쏟아냈다. ‘챔피언 결정전에서 패할 경우 머리 깎고 치악산에 들어가 중이 되겠다’며 아내 이정은씨한테 내복을 사서 보내라고 말했다는 부분에선 파안대소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매스컴과의 인터뷰를 거절했던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를 물었다. 구단과 연봉 계약을 할 때마다 “방송 출연과 인터뷰는 내가 싫으면 안 한다”고 할 만큼 몸을 사린 터라 전문지 기자들도 이상민과의 인터뷰를 어려운 작업으로 생각할 정도였다.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숫기도 없고 말주변도 없고 해서 될 수 있으면 안하려고 했었죠. 그러다보니 오해를 많이 받게 되더라고요. 우쭐대거나 잘난 척해서 그런 게 아닌데 안 좋은 쪽으로 해석하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사실 대학 때 인터뷰를 정말 많이 했거든요. 지긋지긋할 정도로. 그 후론 할 말이 없더라고요. 더 이상 보여드릴 것도 없고.”
우승 소감을 묻지 않아도 먼저 그 얘기를 꺼내고 싶어 했다. 지금부터는 이상민의 ‘자유 발언’ 시간이다.
“사실 오늘 새벽 3시까지 잠을 자지 못했어요. 아무리 자려고 눈을 감아도 오만 가지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 거예요. 정말 힘든 한 해였는데… 그렇게 힘들게 해서 마지막까지 왔는데, 기회라는 건 자주 오지 않기 때문에 왔을 때 잡아야 하는 건데…, 이런 사념들이 불면증으로까지 이어지게 만들었죠. 경기 종료 50초를 남겨 놓고 우승을 확신했어요. 드디어 이겼구나, 드디어 챔피언 반지를 낄 수 있겠구나, 하는 순간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지대요.”
이상민은 97~98, 98~99 정규리그 연속 우승과 연속 MVP를 차지하며 상승세를 이어가다 99~2000시즌 팀이 챔피언결정전에서 패하자 이후 하락세를 거듭했다. 99년 이정은씨와 결혼 후 단 한 번도 좋은 성적을 못 내 아내한테도 면목이 없었던 그는 이번 우승으로 아내와 서로 나눠진 마음의 짐을 훌훌 털게 됐다며 환한 미소를 짓는다.
농구를 시작한 이래 거듭되는 우승으로 지는 것에 익숙지 않았던 삶은 현대에서 KCC로 모기업을 달리한 뒤부터 색깔을 달리했다.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작용하면서 이상민은 몇 년 동안 상당한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했다.
“힘들더라고요. 지는 걸 잘 모르고 살았잖아요. 잘할 자신도 있고 실력도 있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결과는 그렇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번 우승이 더욱 값진 거예요. 그런 어둠 속에 있다가 드디어 환한 세상 밖으로 나온 그런 기분이니까요.”
이상민은 챔프전 마지막날 은퇴를 한 허재에 대해 자꾸 언급했다. 허재의 9번 번호가 영구 결번되는 걸 보면서, 스타팅 멤버로 나서 후배들을 독려하는 허재를 밀착 마크하면서 이상민은 ‘허재형’을 많이도 안타까워했다.
“정말 저와도 사연이 많은 형이에요. 특히 예전 대표팀 시절 술자리엔 저랑 (현)주엽이가 단골 게스트였으니까요. 오죽했으면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문을 잠글 생각을 했을까. 한때는 농구 대표팀이 아니라 술 대표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걸요. 그래도 성적을 내는 걸 보면 대단했죠. 아마도 거기에 허재형이 존재했기 때문이었을 거예요. 그런 형이, 그 시절 우리들한테 ‘절대 군주’였던 형이, 쓸쓸히 떠나는 모습을 보니까 기분이 묘해지네요. 지금 이 순간까지도.”
▲ 이상민의 부인 이정은씨와 아들. | ||
“대학생이 되면서 꿈에 부풀어 있었거든요. 고등학생 때보다 더 힘들게 생활할 거라곤 상상조차 안했으니까요. 인기와 승리로 인해 기분은 좋았지만 나름대로 고통의 시간이었어요.”
그렇게 맺은 감독의 ‘인연’이 신선우 감독과의 만남으로 인해 절정에 달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여러 명의 감독과 만남과 이별을 반복했지만 신 감독처럼 성격 변화가 다양한 스타일은 흔치 않았다는 것.
“저도 흥분 잘하는 성격이거든요. 그런데 감독님과 붙을 땐 서로 같이 흥분해 버리니까 충돌이 많았어요. 그래도 지금까지 그 숱한 트레이드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서로가 서로한테 필요한 존재였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올 시즌 어려운 상황에서도 결국 팀을 우승시키시는 감독님을 보면서 감탄과 박수를 보내고 싶네요.”
이상민의 남은 목표는 이제 한 가지 밖에 없다. 정규리그와 챔프전 우승은 물론 MVP에까지 올랐기 때문에 더 이상 뭐가 있을까 싶었는데 바로 이런 대답이 흘러나온다.
“좋은 모습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 은퇴하는 거예요. 허재형처럼 떠날 때 쓸쓸한 모습은 안 보이고 싶어요. 솔직히 저 또한 나이는 속일 수가 없거든요. 점프도 예전처럼 안돼요. 은퇴 시기를 놓치지 않고 농구인생을 잘 마무리하는 게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됐네요.”
짧지만 굵은 인터뷰 뒤 BMW 7시리즈를 타고 선수들과 다시 만나기로 한 강남으로 향하던 이상민은 산소도, 이산화탄소도 아닌 그저 사는 방법을 제대로 알고 있는 ‘현명한 남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