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 ‘무죄’ 다리 ‘유죄’ 수치심 유발 기준 아리송
일요신문DB
지난 2014년 4월 유 아무개 씨(30)는 무용 강사 A 씨(여·24)의 상반신을 엘리베이터 안에서 몰래 촬영했다. A 씨는 거울로 등 뒤에 있는 유 씨가 자신을 촬영하는 것을 눈치 채고 다음 날 유 씨를 경찰에 신고했다. 조사 결과 유 씨는 A 씨의 사진 외에도 비슷한 사진 200여 장을 가지고 있었다.
유 씨는 성폭력특례법 제14조 ‘카메라에 의한 성폭력 혐의’로 재판부에 넘겨졌다. 1심 재판부는 “A 씨의 허리 높이에서 목 아래까지를 촬영한 것인데, 노출이 전혀 없고 입고 있던 옷이 선정적이지도 않았다”며 “성적 욕망이나 수치심을 유발할 수 없다”고 무죄를 선고했다. 200여 장의 사진에 대해서도 “문제의 사진들이 여성의 동의 없이 주로 다리가 포함된 신체를 촬영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일반인의 출입이나 통행이 자유로운 개방된 장소인 지하철 등에서 촬영된 것으로 모습이 선정적이거나 노출이 심하지 않아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밝혔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A 씨를 찍은 사진은 노출된 부분이 없어 고도로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하는 것은 아니지만 엘리베이터까지 쫓아가 촬영을 의도한 점, 은밀히 촬영이 이뤄진 점, A 씨가 수치심을 느껴 다음날 경찰에 신고한 점 등을 종합할 때 하면 유 씨가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피해자의 신체를 촬영했음을 인정할 수 있다”며 벌금 100만 원과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 24시간을 선고했다.
반전은 대법원에서 일어났다. 대법원이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한 것. 대법원은 “유 씨의 행동이 불안감과 불쾌감을 유발한 것은 분명하나 사람 눈에 보이는 부분을 그대로 촬영했고 노출 부위가 없어 처벌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어 “A 씨는 당시 검은색 레깅스를 입고,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긴 티셔츠 위에 모자가 달린 옷을 입고 있어 목 윗부분과 손을 제외하고는 외부로 노출된 신체 부위는 없었다. 유 씨는 특별한 각도나 특수한 방법이 아닌 사람의 시야에 비춰지는 부분을 그대로 촬영했다”며 “유 씨가 촬영한 A 씨의 신체 부위가 A 씨와 같은 성별, 연령대의 일반적이고도 평균적인 사람들의 관점에서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지난 2014년 6월에도 몰카 관련 범죄가 발생했다. 중국 국적 조선인 홍 아무개 씨(당시 42세)가 회현역 승강장과 명동 번화가 거리에서 휴대전화 카메라를 이용해 젊은 신체를 32차례 걸쳐 몰래 촬영했는데 대법원은 이 가운데 벤치에 앉아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성의 다리를 촬영한 촬영물에 대해서만 유죄로 봤다.
2015년 11월에도 대법원은 비슷한 판결을 내렸다. 이 아무개 씨(당시 36세)는 휴대폰으로 지하철 계단에서 미니스커트나 핫팬츠 등 짧은 옷차림을 한 여성들의 사진 58장을 찍었다. 이 씨의 휴대폰엔 다리만 찍은 사진이 42장 전신을 찍은 사진이 16장 있었다. 특정 부위인 다리를 찍은 혐의에 대해서만 유죄로 판단하고 전신을 찍은 16장의 사진은 무죄로 판단했다. 당시 재판부는 “타인의 신체에 대한 무단 촬영이라도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하는 신체는 엄격히 제한해 해석해야 한다”고 밝혔다.
법원의 판결이 이렇게 오락가락한 이유는 ‘몰카’ 범죄에 대해 지난 2008년 대법원 판결을 유무죄 판단 기준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재판부는 마을버스 안에서 휴대전화 카메라로 옆에 앉아 있던 B 양(당시 18세)의 다리를 촬영한 혐의로 기소된 초등학교 교사 이 아무개 씨(당시 60세)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카메라 기타 이와 유사한 기능을 갖춘 기계장치를 이용해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타인의 신체를 그 의사에 반하여 촬영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14조의2 제1항은 인격체인 피해자의 성적 자유 및 함부로 촬영당하지 않을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촬영한 부위가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타인의 신체’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객관적으로 피해자와 같은 성별, 연령대의 일반적이고도 평균적인 사람들의 입장에서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에 해당하는지를 고려해야한다”며 “피해자의 옷차림, 노출의 정도 등은 물론 촬영자의 의도와 촬영에 이르게 된 경위, 촬영장소와 촬영 각도 및 촬영거리, 촬영된 원판의 이미지, 특정 신체부위의 부각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구체적·개별적·상대적으로 결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수원대학교 법학과 류여해 겸임교수는 “모욕감과 수치심에 대한 기준이 굉장히 모호하다. 법조문에도 문제가 있다. 다리냐 전신이냐 따지는 문제가 아니라 몰래 찍은 사진에 대한 법이다”며 “개인적으로 ‘몰카’는 엄격히 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생각한다. 경도 수위를 따지지 않고 처벌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사회 전체가 노출 사진에 대해 둔감해졌다. ‘이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법률에서 명확하지 않은 부분을 판사의 잣대에 맞추니 판결이 중구난방이 될 수밖에 없다. 판사의 재량권이 너무 높아졌다”며 “전신사진을 찍은 것이 무죄라면 전신사진을 찍은 후 특정 부분만 확대한 경우는 어떻게 판결할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