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삼아 사랑서약…평생 낙인 될 줄이야
이별에 대한 복수로 상대방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혼인신고를 접수했다가 법률 분쟁까지 번진 사례가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다. 사진은 영화 <결혼전야>의 한 장면.
가족관계등록법이 시행되기 전인 2007년까지는 혼인 당사자와 증인 확인 없이 혼인 당사자 쌍방의 인적사항 기재와 서명만으로도 혼인신고가 가능했다. 하지만 일방이 마음대로 혼인신고를 하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가족관계등록법이 제정되면서 특별한 규정이 마련됐다. 혼인신고 접수 시 당사자 간의 합의가 있어야 하며, 당사자 가운데 한 쪽이 관할 지역 기관에 방문하지 못할 시 불출석자의 신분증명서(주민등록증·운전면호증·여권 등)나 인감증명서를 첨부해야만 혼인신고가 수리되도록 변경된 것이다. 성인 두 명의 인적사항과 서명도 기재되도록 혼인신고서가 변경됐다.
하지만 <일요신문> 조사 결과 가족관계등록법 시행 이후 전국 법원에 접수된 혼인무효소송 및 혼인취소소송이 128%나 급증했다. 실제로 2002년부터 2007년까지는 5269건(연 평균 878.2건), 2008년부터 2014년까지는 7863건(연 평균 1123.3건)의 혼인무효소송 및 혼인취소소송이 제기됐다. 2002년(635건)과 2014년(1145건)만 비교해 봐도 연간 510건이나 증가했다. 서울가정법원에서만 2002년부터 2007년까지 2406건(연 평균 401건), 2008년부터 2014년까지 3860건(연 평균 551.5건)으로 연 평균 150.5건이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허위 혼인신고 방지를 위해 관련법이 개정됐지만 사실상 무용지물이라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에 신의진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달 5일 허위 혼인신고로 인한 법률 분쟁을 예방하기 위해 당사자 쌍방 출석을 의무화한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김기선 새누리당 의원도 혼인 당사자 중 쌍방이 직접 출석하지 않은 혼인신고의 경우 일주일 이내에 이의제기가 있을 시 처리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의 법률안을 내놓았다. 두 의원의 법률안 발의로 혼인신고의 허점이 여실히 드러났다는 전문가들의 평가마저 이어졌다. 국회사무처에 접수된 신 의원의 법률안은 법제사법위원회 등 소관 위원회에 회부돼 심사가 이뤄질 예정이다.
현행법상 혼인신고는 상대방의 신분증명서나 인감증명서만 첨부하면 누구라도 접수가 가능하다. 상대방의 허락 없이도 인적사항만 알고 신분증만 있으면 공식 부부가 될 수 있는 셈이다. 혼인신고서 증인란에 성인 두 명의 서명을 받아야 하나 이조차 사실상 유명무실이라는 지적도 있다. 구청 관계자에 따르면 증인란을 임의로 작성하더라도 확인 절차가 이뤄지지 않아 임의 작성 여부를 알지 못하며, 즉석에서 지인의 동의 없이 인적사항을 작성하는 접수자도 흔하다고 한다.
기자가 직접 혼인신고의 허점을 체험해봤다. 먼저 혼인신고서에 실존 인물의 인적사항을 허위로 작성한 후 상대방의 신분증과 함께 관할 구청 공무원에게 제출, 접수 가능 여부를 물었다. 작성자인 본인과 아내(처) 측의 글씨체를 다르게 작성해 담당 공무원은 허위로 작성됐음을 눈치 채지 못했고 즉시 접수가 가능하다고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아내 측과 연대보증인인 증인에게 확인 전화가 가는지에 대해 묻자 담당 공무원은 “작성된 혼인신고서에 별다른 문제가 없으면 따로 연락이 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아내 측의 연락처는 기재사항이나 증인의 연락처는 기재사항이 아니라 증인에게 연락갈 일은 전혀 없다”고 했다. 다음으로 다산콜센터에 전화해 허위 혼인신고서를 제출한 지 한 시간이 지났는데 취소가 가능한 지에 대해 물었다. 상담원은 “혼인신고가 접수됐으면 이미 서류상 부부”라면서 “가정법원에 혼인무효소송이나 혼인취소소송을 내야만 사실혼 관계가 아님을 인정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기옥 변호사는 “현행 혼인신고의 허점으로 인해 허위 혼인신고가 접수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긴 하나 이들은 공정증서원본부실지재죄와 사문서위조죄, 동행사죄 등의 형사처벌이 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대한민국법원 대국민서비스 사법연감 통계 가사소송사건 혼인의 무효·취소 발생건수 관련 자료에는 소송 사유까지는 기재돼 있지 않다. 다만 이혼전문변호사들은 거액의 상속 재산을 노리고 노인 환자에게 접근해 허위 혼인 신고한 경우와 속도위반으로 결혼했으나 아이를 출산한 이후 유전자검사 결과로 친자가 아님이 밝혀져 혼인무효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최근에는 짝사랑하는 이성이나 이별 이후 옛 연인에 대한 복수심으로 허위 혼인신고를 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요즘 온라인에선 헤어진 연인에 대한 복수 차원에서 성관계 동영상이나 나체 사진 등을 공개하는 리벤지 포르노가 화제가 되고 있다. 그런데 이보다 더 무서운 복수 방법으로 리벤지 혼인신고가 등장한 것. 물론 이 경우 복수를 위해 본인 역시 법적으로 혼인 상태가 되는 것을 감내해야 한다. 그렇지만 헤어진 연인의 경우 자신도 모르는 사이 법적으로 기혼 상태가 된다는 치명적인 상황에 노출되게 된다. 실제로 전 애인과 헤어진 뒤 새로운 인연을 만나 결혼을 준비하다 뒤늦게 자신이 법적으로 혼인 상태임을 알고 혼인무효소송을 제기했지만 끝내 준비 중이던 결혼이 무산된 사례도 있다.
최근 가상부부들의 결혼생활을 다루는 리얼리티 프로그램 MBC <우리 결혼했어요>, TV조선 <애정통일 남남북녀> 등에서 혼인신고서를 사랑의 증명서로 작성하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해 젊은 커플들의 주의가 요망된다는 지적이 있다. 실제로 사랑의 정표로 혼인신고서를 작성했다가 이별에 대한 복수심에 관할 기관에 혼인신고를 하는 사례도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
박기옥 변호사는 “장난삼아 작성한 혼인신고서가 주홍글씨가 되어 평생 괴롭힐 수 있다”면서 “혼인무효소송이나 혼인취소소송에서 승소하더라도 가족관계증명서에는 ‘협의 이혼’, ‘혼인 무효’, ‘혼인 취소’ 문구가 기록된다”고 설명했다.
유시혁 기자 evernuri@ilyo.co.kr
‘허위 혼인신고’ 무효소송 사례 술김에…홧김에…뒤늦은 후회 지난 2008년부터 2014년까지는 7년 동안 7863건의 혼인무효소송 및 혼인취소소송이 제기됐다. 평균적으로 매년 약 1123건의 관련 소송이 제기된 셈이다. 과연 어떤 사유로 허위 혼인신고가 이뤄졌으며 이로 인한 혼인무효소송이 제기된 것일까. 대표적인 사례들을 중심으로 정리해봤다. 최근 매년 약 1123건의 혼인무효·취소소송이 제기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영화 <싸움>의 한 장면. # 상속 재산 노린 간병인의 허위 혼인신고 간병인 A 씨는 암 투병 중인 재력가 B 씨에게 상속 재산을 노리고 고의로 접근했다. 1년 동안 B 씨를 간병한 A 씨는 B 씨가 사망하기 한 달 전 B 씨 몰래 혼인신고를 했다. B 씨가 사망한 이후 B 씨의 자녀가 가정법원에 혼인무효소송을 제기했고 결국 A 씨는 패소했다. 이로 인해 A 씨는 B 씨의 상속 재산을 단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치매로 요양원에서 지낸 이 아무개 씨(70)는 “외롭지 않게 간병해 주겠다”며 간병인을 자청한 지인 김 아무개 씨(여·59)와 인연을 맺었다. 하지만 2014년 3월 김 씨는 정신이 온전치 못한 이 씨 모르게 혼인신고를 한 후 이 씨 소유의 상가건물을 몰래 매각했다. 이 씨가 사망하고 나서야 김 씨가 허위 혼인신고를 한 사실을 눈치 챈 이 씨의 자녀는 지난달 4일 가정법원에 혼인무효소송을 제기했다. #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하고 결혼 C 씨는 D 씨에게 임신 사실을 밝힌 후 서둘러 D 씨와 결혼했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난 뒤 D 씨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C 씨 몰래 아이와의 유전자검사를 의뢰해 친자 불일치 판정을 받았다. 이에 D 씨는 지난달 가정법원에 혼인무효소송을 제기했고 현재 법적 싸움을 벌이고 있다. 2011년 7월 E 씨(35)는 교제 중인 F 씨(여·34)의 임신사실을 알고 세 달 뒤 F 씨와 결혼했다. 이듬해 2월 혼인신고를 했고 다음 달 아이가 태어났다. 2013년 2월 가정불화가 생기자 혹시나 하는 마음에 E 씨는 아이와의 친자 확인을 위해 유전자검사를 의뢰, 친자 관계가 아니라는 통보를 받게 된다. 아이가 자신의 친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어 다른 기관에 유전자검사를 재의뢰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결국 E 씨는 울산지방법원에 혼인무효소송을 청구했고, 법원은 E 씨의 편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피고의 잘못으로 원고가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받은 것이 명백한 만큼 피고는 원고에게 위자료 15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 이별에 대한 복수심에 허위 혼인신고 지난 2013년 박 아무개 씨(25)는 당시 교제 중이던 여자친구 정 아무개 씨(여·23)와 사랑의 정표로 혼인신고서를 작성했다. 실제 제출 용도가 아닌 사랑의 정표였다. 그렇지만 두 사람은 4개월 뒤 성격 차이로 헤어졌다. 지난해 박 씨는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가족관계증명서를 발급받고 깜짝 놀랐다. 자신이 전 여자친구인 정 씨와 법적으로 혼인 관계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것. 장난삼아 작성한 혼인신고서를 정 씨가 관할 기관에 제출해 버렸던 것이다. 결국 결혼을 준비하고 있던 박 씨는 결국 예비 신부로부터 파혼 통보까지 받았다. 더구나 정 씨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혼전임신한 상태였다. 박 씨는 의정부지방법원에 혼인무효소송을 청구했으나, 1심과 2심 모두 기각됐다. 적법한 절차에 의해 혼인신고가 이뤄진데다 혼인무효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박 씨는 혼인무효소송을 대법원에 상고했다. # 파혼 막으려 상대방 모르게 혼인신고서 제출 지난 2012년 4월 제주지방법원은 파혼을 막으려고 허위로 혼인신고를 한 G 씨(40)에게 벌금 300만 원,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G 씨는 2년 동안 교제 중이던 H 씨(여·40)와 결혼을 준비하던 과정에서 신혼집 마련을 두고 다툼을 벌였다. 예비부부 싸움이 양가 부모의 싸움으로 번지게 되자 H 씨는 G 씨에게 파혼을 통보했고, G 씨는 파혼을 막으려고 혼자 작성한 혼인신고서를 H 씨 몰래 관할 구청에 제출했다. 윤 아무개 씨(38)와 오 아무개 씨(여·37)는 결혼을 앞두고 혼인신고서를 작성하다 부모의 반대로 몸싸움이 벌어졌다. 오 씨의 모친이 윤 씨에게서 혼인신고서를 뺏으려다 윤 씨가 오 씨를 폭행해 전치 3주의 상해를 입히게 된 것. 폭행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은 윤 씨는 귀가하던 도중 관할 구청에 들려 오 씨 몰래 혼인신고를 접수했다. 결국 두 사람은 혼인무효소송을 벌이게 됐고, 서울가정법원은 오 씨의 손을 들어줬다. # 짝사랑한 이성과 결혼하고 싶어 허위로 혼인신고 지난 2013년 8월 전주지방법원은 짝사랑한 남성 안 아무개 씨 몰래 혼인신고를 한 혐의로 방 아무개 씨(여·41)에게 벌금 100만 원을 선고했다. 방 씨는 혼인신고를 한 직후 안 씨에게 문자메시지로 혼인신고를 했음을 알리기도 했다. 재판부는 “혼인 실체를 인정할 만한 자료가 없다”면서 “문자메시지 내용과 안 씨가 피고를 상대로 혼인무효소송 및 형사고소를 한 점 등을 종합해보면 안 씨 동의를 받아 혼인 신고서를 작성했다고 볼 수 없다”며 혼인이 무효임을 인정했다. # 욱하는 감정에 혼인신고 했다가 뒤늦게 후회 지난 2013년 2월 배우 이선정 씨가 SBS 예능프로그램 <자기야>에 출연해 전 남편 LJ와의 성급한 혼인신고 사연을 공개해 화제가 됐다. 교제 45일 만에 LJ의 취중 프러포즈를 받아들인 이 씨는 합의 하에 혼인신고를 하게 됐고, 이튿날 후회의 눈물을 쏟았다고 했다. 결국 두 사람은 혼인무효소송을 청구하지 않고 14개월 만에 합의 이혼을 했다. 연인관계인 I 씨와 J 씨는 말다툼을 벌이다 혼인신고서를 구청에 제출했다. 말다툼 도중 급히 화해를 했기 때문은 아니다. 말다툼 도중 J 씨가 남자친구인 I 씨에게 “사랑을 증명해봐”라고 말했고 이에 I 씨는 혼인신고를 하자고 답했다. 이에 두 사람은 구청으로 가서 혼인신고를 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두 사람은 욱하는 감정에 혼인신고를 한 것을 후회했다. 결국 이들은 서울지방법원에 혼인무효소송을 청구했고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이다. # 조울증 숨겼다가 혼인취소소송 혼전임신을 한 K 씨(여)는 L 씨와 속전속결로 혼인신고를 하고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L 씨는 임신우울증으로 매일 눈물을 보인 K 씨를 못 마땅히 여겼고, 임신하기 전부터 K 씨가 조울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아온 사실을 뒤늦게 알고 가정법원에 혼인취소소송을 청구했다. L 씨의 담당 변호사는 “아이까지 출산됐지만 정신병을 숨겼다는 것으로도 혼인취소가 가능하다”며 “취소가 될지 안 될지는 재판을 거쳐 결정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 전세자금대출 받으려 허위 혼인신고 지난달 14일 부산지방법원은 전세자금대출을 받기 위해 허위로 혼인신고를 한 서 아무개 씨(44)에게 징역 10월을 선고했다. 서 씨는 한 여성과의 허위 혼인신고를 하여 전세자금 7700만 원을 대출받았다. 그런데 허위 혼인신고였음은 물론이고 은행에 제출한 재직증명서 역시 조작된 서류로 밝혀졌다. 재판부는 “위장결혼과 허위 재직증명서 발급으로 사기 대출을 받아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며 양형 이유를 밝히며 혼인이 무효임을 인정했다. 한편 경기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을 모아 허위로 혼인신고서, 재직증명서, 전세계약서 등을 작성해준 후 불법 전세자금대출을 받게 해준 4개 조직과 허위 대출자 136명을 검거하고 총책 12명을 구속했다고 지난 3일 밝혔다. 이들이 지난 3년 간 84차례에 걸쳐 은행으로부터 대출받은 금액만 71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