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시대 끝내고 새 시대 열자우!’ 빅이벤트 ‘전야행사’ 장전 중
북한이 5월 당 대회를 앞두고 추가 도발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사진은 쌍방기동훈련을 참관·지휘하고 있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북한은 지난해 10월, 조선로동당 당 제7차대회를 예고했다. 예정대로라면, 오는 5월 6일부터 약 2일간 당 대회를 치르게 될 예정이다. 당 대회란 쉽게 말해 일당의 최고의사결정 회의체다. 한국으로 따지면 ‘전당대회’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의미와 규모만 따지면 한국 정당들의 그것과는 비교불가다. 북한은 1당 독재 국가다. 북한이라는 국가와 사회는 철저하게 조선로동당의 ‘지도와 영도’로 운영된다. 그 조선로동당의 최고의사결정 회의체가 바로 당 대회인 셈이다.
조선로동당 규약에는 당 대회의 권한과 조직에 대해 자세히 언급된다. 규약 14조와 21조에 따르면, 북한의 당 대회는 ‘당의 최고기관’으로 명시된다. 지난 2010년 4차 당대표자회의에서 수정한 규약에 따르면, 당 대회는 당중앙위원회가 소집하며 소집 6개월 전 개최될 것을 발표한다. 당 대회 사업 내용은 첫째 당중앙위원회와 당중앙검사위원회의 사업 총화, 둘째 당의 강령과 규약을 채택 또는 수정 보안, 셋째 당의 노선과 정책, 전략기술의 기본문제를 토의결정, 넷째 조선로동당 총비서를 추대, 다섯째 당중앙위원회와 당중앙검사위원회의 선거 등이다.
한마디로 북한의 당 대회는 당의 사업, 제도, 노선, 최고지도자를 포함한 인사까지 북한이라는 사회체제의 토대와 향후 방향이 결정되는 어마어마한 이벤트인 셈이다. 북한은 체제 성립 이후 지금까지 총 여섯 차례의 당 대회를 치렀다. 이전 당 대회의 개최 시기를 놓고 보면 그 의미를 더 잘 알 수 있다.
1961년 4차 당 대회는 사회주의 완전승리의 목표제시와 반제를 강조하는 계기가 됐다. 1970년 5차 당 대회는 김일성 개인의 신격화(우상화)를 내세운 전환점이다. 마지막으로 있었던 6차 당 대회에선 소위 김일성 주체사상이 이전 맑스·레닌주의를 대신해 지도이념으로 승격됐다. 특히 김일성의 후계자로 김정일이 공식등장하면서 북한을 왕조체제로 만들었다.
지난 1980년 10월 10일 6차 당 대회를 마지막으로 북한의 당 대회는 36년 간 종적을 감췄다. 1994년 김일성이 죽은 이후 2세대 지도자로 된 김정일이 조선노동당 총비서로 등장한 이후에도 상황은 마찬가지. 그 이유는 무엇일까. 오는 7차 당 대회의 의미를 알기 위해선 이 문제에 대해 짚어볼 필요가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동안 당 대회를 개최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못했다는 것이 정확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1994년 정권 세습 이후 어려워진 북한의 경제적 상황과 관계가 아주 깊다. 북한은 19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이란 대량 아사 사태를 겪었다. 북한식 사회주의 경제 시스템은 한계에 부딪혔고,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 체제가 붕괴됨에 따라 고립이 가속화됐다.
6차 당 대회 당시 김일성은 ‘오는 90년대는 북한식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가 첫 문어귀에 들어선다’고 선포했다. 또한 연간 전력 1억 킬로와트, 석탄 1억 5000만 톤, 알곡 1000만 톤, 천 115억 미터, 비료 150만 톤, 수산물 500만 톤 외에 금속, 비금속, 시멘트 등 소위 사회주의경제건설 10대 전망목표라는 경제 분야의 전망치를 설정하고 이를 선포했다. 당 대회가 6차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북한이 이 시기까지는 나름 이전 당 대회에서 목표로 선포했던 경제 수치들을 아쉽게나마 채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6차 당 대회에서 희망과 발전을 약속했던 북한의 90년대 사회·정치·경제 상황은 최악이었다. 어떤 조작을 통해서도 앞서의 목표치를 절대 채울 수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당의 존립을 넘어 당장 주민들과 체제의 생존을 장담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러한 최악의 상황에서 7차 당 대회는 꿈도 꿀 수 없었다.
6차 당 대회 이후, 특히 김정일 체제가 들어선 90년대 이후 북한은 ‘비상계엄령’의 시기와 다름없었다. 김정일이 이 시기 들고 나온 ‘선군정치’는 바로 그런 의미다. 군과 국가안전보위부 등 안보세력을 정면에 앞세워 체제를 옹위하고 운영해 나갔다.
물론 김정일은 김정은으로의 권력 이양시기를 앞두고 당 대회 개최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김정일은 말년에 3세대 권력 이양을 앞두고 당 대회 개최의 명분과 시기를 여러모로 조율해본 것은 사실이라고 한다. 다만 권력 이양 과정에서 본인의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고 또한 마땅한 명분 찾기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강행 자체가 어려웠다고.
북한이 공개한 광명성호 발사장면. KBS뉴스 화면 캡처.
김정은은 공개 데뷔 석상이었던 지난 2010년 9월 당대표자회의 이후 당 대회 개최 시기를 조율했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당대표자회의에선 당 대회와 관련한 일부 규약을 수정하기도 했다. 김정은이 당 대회 개최를 확정적으로 결정했던 시기는 지난해 4월 고 현영철 전 인민무력부장을 처형했을 때로 추측된다. 이 시기 유독 북한 내부에선 당 대회 개최 가능성과 관련한 정보가 중복적으로 나돌았다.
2010년 당대표자회 당시 선출된 주요 간부들은 김정은 시대의 실세라인으로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는 김정일이 아들을 위해 마련한 사람들이지 김정은의 사람들이라고 보긴 어려웠다. 당시 이름을 올린 간부들 상당수는 앞서의 현영철과 같은 끔찍한 최후를 맞았다. 리영호 전 총참모장, 장성택 전 국방위 제1부위원장, 최근 리영길 전 총참모장까지.
오는 5월 제7차 당 대회의 당직 인사는 그래서 중요하다. 어느 누가 당중앙위원회 정식 위원 혹은 정치국 위원(혹은 후보위원),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들어서는지 지켜봐야 한다. 특히 군 총정치국과 당 조직지도부 등 체제를 이끄는 핵심조직의 인사와 또한 그들 중 누가 앞서 당중앙위 위원 및 후보위원과 정치국의 위원 및 후보위원으로 발탁되는지 잘 살펴봐야 한다. 이들이 곧 김정은 시대를 이끌 인물이다.
그러면 북한 당 7차대회 핵심키워드는 무엇일까. 명분이야 새로운 지도자가 들어섰기에 설 수 있지만, 당의 성과 보고 및 목표에 대해선 여전히 고민이 깊다. 북한의 경제적 상황과 국제사회에서의 고립은 여전한 문제다.
지난해 당 대회 개최 발표를 전후해 북한 정권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한 가지 시도가 있었다. 필자가 북한 내부 소식통을 통해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친북성향의 류윈산(劉雲山)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의 방북 당시 김정은의 방중을 논의했다. 북한 내부에선 2016년 2월 김정은의 방중을 추진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중국의 군사적·정치적 지원은 물론 식량 및 원유 등 경제적 지원을 의제로 삼고자 했다. 하지만 앞선 연재(일요신문 1232호 참조)를 통해 자세히 언급한 바 있지만, 중국의 내부사정에 의해 이러한 계획 자체가 어려워졌다.
올 상반기 방중을 추진했던 김정은의 계획은 오는 7차 당 대회와 관계가 깊다. 중국과의 관계 개선 및 경제 지원만 약속받았다면, 이벤트의 내용을 풍성히 할 수 있었기 때문. 뭐니 뭐니 해도 백성들에겐 밥상의 풍요가 중요하다는 것을 북한 지도부가 모를 리 없다. 하지만 북한과 김정은의 계획은 추진 초기 단계에서 수포로 돌아갔다.
올 초 북한 김정은 정권의 연이은 군사적 도발 및 강경책은 결국 이러한 환경과 관계가 깊다. 김정은은 결국 오는 당 대회에서 대내외적으로 경제적 성과와 목표 설정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군사적 성과와 국제사회에서의 존재성의 과시로 경제적 성과 및 목표 설정을 대신하고자 하는 것이다. 김정은 입장에선 차선이지만 마지막 카드를 꺼낸 셈이다.
이 때문에 오는 5월까지 북한의 추가적인 군사적 도발 가능성은 매우 높다. 그 시나리오 중 제법 유력한 것이 미사일 실험. 1200~2400km 능력의 전력화된 중장거리 미사일(대포동) 발사시험을 실제로 하는 것이다. 이는 사실상 북한 김정은 정권으로서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유훈성과를 국내외에 과시하는 마지막 카드다. 만약 북한이 이 카드를 실제 꺼내든다면 4월 25일(인민군 창건일)과 5월 6일 사이 당대표자회의 개최 직전이 유력하다. 그 타깃 지점은 미국령 도서들이 몰려있는 태평양 영해가 될 가능성이 있다.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대표
정리=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당대회 전후 전면등장 가능성…무슨 역할 맡을까 김여정·리설주 두 여인을 주목하라 김여정, 리설주. 두 여성은 김씨 일가 중 거의 유이하게 공식석상에 등장한 인물들이다. 우선 김여정은 오빠 김정은을 보좌하며 중앙당 내에서 부부장 이상의 역할을 맡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김정일 시대 권좌에 공식등장하며 당 내에서 주요역할을 했고, 김정일이 사망한 이후 김정은의 섭정을 시도했던 김경희의 수순을 보자면 김여정도 그 뒤를 밟을 가능성이 높다. 김여정은 이번 당 대회를 통해 당중앙위원회를 비롯한 공식석상에 이름을 올릴 가능성이 있다. 보다 흥미로운 인물은 리설주다. 리설주는 이번 당 대회를 전후해 당 권력 전면에 나설지가 특별히 주목된다. 혹 여맹위원장에 임명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일성의 부인이었던 김성애는 실제 여맹위원장을 역임하며 1970년 당 제5차대회 이후 권좌의 전면에 나선 바 있다. 만약 리설주가 여맹위원장에 오를 경우 당중앙위원회 혹은 정치국 간부 명단엔 자동적으로 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걸] |
필자 이윤걸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