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국방장관 비롯 방첩·777사령관 기획 관측…비충암파 박안수 육참총장 이력도 의구심 증폭
12월 3일 오후 10시 15분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했다. 외신은 21세기 국제 정치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이 펼쳐졌다고 했다. 약 6시간 만에 윤 대통령은 계엄령을 철회했다. 국회가 만장일치로 계엄 철회 요구안을 의결한 데 따른 조치였다.
계엄을 건의한 인물은 김용현 국방부 장관이었다. 김 장관은 이번 ‘초대형 사고’의 진원지로 꼽히고 있다. 김 장관은 충암고를 졸업한 뒤 육군사관학교 38기로 입학했다. 수도방위사령부(수방사) 제1경비단장, 육군본부 지휘관리과장, 제1군사령부 작전처장, 제17보병사단장, 수도방위사령관 등을 거쳤다. 최종 보직은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이다.
군 내에서 ‘작전통’으로 꼽힌 김 장관은 중장으로 전역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 대통령 경호처장을 지낸 뒤 지난 9월 국방부 장관으로 취임했다. 중장 출신으론 이례적으로 국방부 장관에 발탁된 것을 두고 군 내부에선 윤석열 대통령 충암고 1년 선배라는 점이 주요 배경으로 거론됐다. 김 장관이 군 충암고 라인 좌장격이라는 얘기가 뒤를 이었다.
신원식 전 국방부 장관이 김용현 국방부 장관으로 교체될 당시엔 ‘충암파가 국방파를 완전히 제압했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신 전 장관이 이끌던 이른바 ‘국방파’는 김 장관의 ‘충암파’에 대항하는 세력으로 부각되고 있었다. 여름을 뜨겁게 달궜던 국방부 내부 각종 정보 참사를 놓고 국방파와 충암파 갈등의 하이라이트로 보는 시각도 존재했다. 김 장관 취임으로 충암파가 본격 득세하면서 군과 정치권 안팎에서 비상계엄 가능성이 거론되는 빈도는 점점 높아지기 시작했다.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기 전 열린 긴급 국무회의에서 대다수 국무위원들은 계엄을 반대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김 장관이 계엄을 전격 건의했고, 계엄을 선포하겠다는 윤 대통령 의지가 상당히 굳건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대통령실의 대부분 참모들도 계엄령 선포 조짐을 사전에 감지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요신문 취재에 따르면 군의 ‘안보 라인’이 이번 계엄령 로드맵을 총괄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그 중심엔 충암고 라인이 자리 잡고 있다. 충암고-육군사관학교로 이어지는 학맥은 계엄 정국에서 영향력이 상당한 보직에 집중돼 배치돼 있었다. 그동안 군 내부에선 ‘충암고 라인이 절대적인 숫자는 많지 않더라도, 배치된 보직 무게감을 살펴보면 결코 적은 비중이 아니’라는 분석이 많았다.
김용현 장관을 필두로 여인형 방첩사령관과 박종선 777사령관이 대표적인 충암고 라인으로 꼽히는 인사다. 사령관급 충암고 라인이 있는 부대 특성을 살펴보면 면면이 화려하다.
방첩사는 과거 기무사령부로 더 잘 알려진 부대다. 2017년 국정농단 정국에서도 기무사가 비상계엄 준비 문건을 작성했는지 여부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적이 있다. 777사령부는 군 정보 파트에서 기술정보(텍민트)에 특화된 파트다. 인간정보(휴민트) 및 일반정보를 담당하는 정보사령부와 함께 군 정보 파트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야권은 꾸준히 윤석열 정부 ‘친위 쿠데타’ 가능성을 거론한 바 있다. 친위 쿠데타를 주도할 핵심 인물로 김용현-여인형-박종선으로 이어지는 충암고 라인이 거론돼 왔다. 계엄 사태 후 군 내부에선 충암파를 중심으로 새어나오던 ‘친위 쿠데타설’이 현실화됐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군 한 소식통은 “비상계엄을 주도한 핵심 인물로 김용현 장관이 거론되고 있다”면서 “김 장관은 수방사령관 출신”이라고 했다. 소식통은 “수방사는 그동안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을 때 가장 핵심적인 부대로 꼽혀 왔다”면서 “수방사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김 장관 입장에선 계엄을 추진하는 데 있어 자신감이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 소식통은 “그러나 중장 출신 민간인 신분인 국방부 장관이 군 내부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엔 한계가 있다”면서 “수방사 말고도 특전사 등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계엄 정국을 확실하게 장악할 수 있는데, 이번 계엄 사태에선 수방사를 제외한 나머지 부대의 움직임이 상당히 소극적이었다”고 했다.
그는 “비상계엄 자체에 대한 긴가민가한 시선이 군 내부에 적지 않은 분위기였다”면서 “과거 쿠데타 국면 이후에 군이 쑥대밭이 된 경험들이 남아 있기 때문에 군도 이번 비상계엄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충암고 라인 결속력이 ‘정보사 수뇌부 갈등’으로 공고화됐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정보사는 ‘블랙요원 신상유출 사건’과 더불어 ‘수뇌부 갈등 내홍’ 등을 겪었다. 정보사 수뇌부들이 군 내부적으로 적지 않은 타격을 받았고, 방첩사는 정보사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를 진행했다. 방대한 규모 압수수색과 거짓말탐지기까지 동원된 수사로 말이 많았다. 정보사 내부 관계자는 “정보사 기존 시스템이 쑥대밭이 됐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관련기사 [단독] “벼룩 잡으려 초가삼간 태운 꼴” 방첩사 ‘블랙요원 신상유출’ 수사에 정보사 초토화).
전직 군 정보당국 관계자는 “방첩사가 정보사를 대대적으로 공격하면서 내부적으로 상당히 시끄러운 부분이 있었다”면서 “통상 국방정보본부장 자리를 두고 정보사령관과 777사령관이 경쟁을 하는데, 정보사를 둘러싼 각종 이슈가 불거지면서 임기제 소장으로 진급한 (충암고 출신의) 777사령관 입지가 부각됐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1979년 비상계엄 당시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무력화시킨 장본인은 보안사령관 전두환이었다”면서 “보안사는 지금의 정보사다. 돌이켜보면 방첩사가 정보사를 완전히 무력화시킨 일련의 사태가 계엄을 위한 포석이었다는 해석도 나온다”고 말했다.
계엄령 선포 이후 6시간 동안 계엄사령관이었던 박안수 육군 참모총장 이력을 둘러싼 의구심도 증폭되고 있다. 박 참모총장은 충암고 라인이 아니지만, 윤석열 정부에서 육군 참모총장으로 깜짝 발탁됐다. 소장 계급에서 제39보병사단장, 제2작전사령부 참모장 등을 지내며 후방 보직을 거쳤다.
중장 진급 이후엔 제8군단장과 제74주년, 제75주년 국군의날 행사기획단장을 맡았다. 그리고 2023년 10월 29일 육군 참모총장으로 전격 기용됐다. 군 내부에선 군 사령관급 직제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참모총장이 된 배경에 관심이 쏠리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각별한 신임을 얻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6시간가량 이어진 계엄 정국에서 그는 잠시나마 계엄사령관직을 수행했다.
비상계엄 판을 깔고 기획을 담당할 수 있는 주요 보직엔 ‘충암고 라인’이 배치돼 있었고, 계엄사령관을 맡은 육군 참모총장엔 윤석열 정부에서 고속승진한 장군이 있었던 셈이다. 이들이 주도하고 실행한 계엄 기획과 선포는 대통령실 대부분 참모들이 알지 못했을 정도로 기습적인 성격을 띠었다.
계엄 선포 이후 국회의원들은 국회 본회의장에 모여 계엄철회 요구안을 의결할 수 있는 정족수를 갖출 수 있었다. 일선 경찰들이 국회를 폐쇄했지만, 국회의원들은 본회의장 입성에 성공했다. 계엄철회 요구안 의결 당시 군은 국회 본회의장 진입을 위해 현장 관계자들과 대치하고 있었지만, 적극적인 진입을 시도하진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전직 군 관계자는 “과거 군부정권들이 쿠데타로 정권을 전복시킬 당시엔 주동자가 군 출신으로 군 내부를 사실상 완벽히 장악하고 있었다”면서 “이번 계엄정국에선 ‘충암고 라인’이 판을 짜는 요직에 배치돼 있을 뿐 군 일선까지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는지 여부엔 물음표가 달려 있던 상황이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소수 수방사 전력이 국회에 배치만 되는 방식으로는 계엄 실효성을 절대 확보할 수 없다”면서 “더구나 명분이 미약한 비상계엄엔 더 이상 일선 군인 및 경찰이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번 사태로 확실히 증명됐다”고 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아무리 비상계엄일지라도 그 이유가 비합리적이라면 군인과 경찰이 자정능력을 발휘하는 것을 확인했다”면서 “대한민국은 몇몇 검사 출신이나 몇몇 군인들이 주무르기엔 너무 큰 나라가 됐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계엄이 선포됐다가 철회된 과정을 되돌아보면, 대통령도 플랜B나 플랜C 등 아무 대책 없이 그냥 밀어붙인 것이라고 밖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정치평론가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비상계엄 방법이라든가 목적 자체가 적절하지 않아서 계엄사령관 명령을 듣는 계엄군조차도 체계적이고 조직적이지 않았다”면서 “내부에서도 동의가 안 되는 상황에서 군이나 경찰도 ‘시늉’만 한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채 교수는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꺼낸 상황”이라면서 “비상계엄 자체가 어설픈 친위 쿠데타로 정리되는 형국”이라고 분석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