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한가위엔 우리 맘도 ‘보름달’
▲ 백차승. 로이터/뉴시스 | ||
박찬호, 서재응, 김병현 등에 이어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코리안리거 2세대들로 자리매김한 두 선수와 릴레이 인터뷰를 가졌다.
백차승
“걱정 마세요. 큰 부상 아니거든요. 60일짜리 부상자 명단에 들어가야 마이너리그에 있는 다른 선수가 올라올 수 있어요. 그래서 그 정도의 부상이 아닌 데도 60일짜리 명단에 올라간 거예요.”
백차승은 걱정을 가득 담은 기자의 안부 전화에 별 일 아니라며 안심시켰다. 올시즌 시애틀 산하 트리플A 타코마 레이니어스에서 선발 투수로 활약하다 빅리그 복귀 후 6경기 선발 등판에서 4승 1패에 방어율 3.67을 기록한 백차승은 미국 진출 후 처음으로 ‘만족스럽다’는 소감을 전했다.
“지난 6개월 동안 야구 인생을 통틀어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했어요. 마이너리그에서 147이닝을, 그리고 빅리그에서 34⅓이닝을 던졌거든요. 제 개인 기록을 모두 갈아 치운 시즌이에요. 당연히 피로가 쌓일 수밖에 없었죠. 근육통이 생겼는데 무리하면 힘들어질 것 같아 구단에 얘기를 했더니 쉬게 하더라구요. 사실 쉬면서도 눈치 봤어요. 혹시나 좀 던진다고 해서 꾀를 피운다고 생각할까봐요. 어렸을 때 그런 경험도 있고 해서…. 다행히 제 대신 들어간 선수가 잘 던졌고 팀이 이겨서 마음 놓였죠.”
아픔을 참고 던져야 했지만 야구 인생을 길게 보기 위해 오랜 고민 끝에 부상 사실을 털어놨다고 한다.
올시즌 메이저리그 생활을 하며 가장 많이 달라진 부분에 대해 묻자 눈치 보는 일이 줄어들었다고 답한다. 처음 빅리그에 올라갔을 때는 클럽하우스가 자신한테는 결코 쉴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단다. 선배들, 베테랑들이 돌아다니는 곳에서 마음 편히 휴식을 취할 수도 없었고 누구한테 쉽게 다가가서 말 붙이기도 어렵기만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쟁쟁한 선배들 앞에서도 별로 기 죽지 않았고 클럽하우스가 경기 전 몸과 마음을 추스르게 하는 유일한 공간이 되었다. 더 이상 눈치를 보지 않게 된 것이다.
“여기가 미국임에는 분명하지만 팀 구성원을 살펴보면 정말 ‘인터내셔널’해요. 9명의 라인업 중 미국 선수는 2명뿐이에요. 쿠바, 일본, 호주, 베네수엘라, 도미니카, 그리고 한국 등 여러 나라에서 온 선수들이 한 팀을 이루고 있거든요. 같은 동양인이라고 일본 선수와 친하고 제3국에서 왔다고 남미 출신의 선수들과 친하게 지내지 않아요. 모두 야구를 위해 모였고 야구 잘 하는 선수는 대접받고 존경받으면서 그렇게 지내거든요. 올시즌 제 성적표가 자랑스럽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뿌듯한 건 선수들이 절, 백차승을 인정해줬다는 겁니다. 그래서 클럽하우스가 편안한 곳이 된 거죠.”
백차승은 지난해 12월 15일 미국 진출 7년 만에 한국 땅을 밟았다. 김포공항 국제선으로 출국했다가 인천공항으로 들어왔다. 꿈에도 그리던 가족들을 만난다는 설레임을 안고 공항에서 택시를 탄 뒤 미국의 후견인에게 잘 도착했다는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팀에서 방출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귀국의 기쁨을 채 만끽하기도 전에 무적 신세가 된 백차승은 한국에서 설날을 보내고 무거운 마음으로 출국해야 했다.
“이적을 알아봤지만 절 데려가겠다는 팀이 없었어요. 결국 시애틀에서 마이너리그 계약을 하자고 하더라구요. 방출된 사실을 알고 나선 싱글A부터 다시 시작하겠다고 마음 먹었거든요. 그러나 시애틀과는 하고 싶지 않았어요. 팀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괜히 서운해졌다고 할까? 그런데 갈 데가 없으니까 어쩔 수 없잖아요. 자존심을 굽히고 마이너리그 계약을 했죠. 물론 절 빅리그로 올려준 팀에 감사해요.”
메이저리그 전문가들은 백차승이 내년 시즌 시애틀의 선발 투수 자리를 확보해 놨다고 전망한다. 그러나 정작 그 자신은 아무 것도 확실한 게 없다고. 내년 스프링캠프가 지나 봐야 가닥이 잡힐 것이라는 생각이다.
해외파들이 외국에서 보내는 명절은 아무래도 쓸쓸함과 향수를 안겨줄 것만 같다. 백차승 또한 마찬가지다. 지난해 한국에서 가족들과 함께 설을 보내며 명절의 소중함을 느꼈다는 그는 이번 추석은 항상 그랬듯이 재활 훈련하며 생활하고 있을 것 같다고 한다.
“추석을 가족들과 보낸 기억이 없어요. 지난번 귀국 때 설 차례상을 보니까 감회가 새롭더라구요. 외국에서 맞는 명절은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만 더 크게 하는 것 같아요. 그래도 이번 추석은 부모님이 기쁘게 맞이하실 것 같네요. 지난해 설날 때는 제가 방출당한 사실을 알고 난 후라 분위기가 좀 그랬거든요.”
백차승은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게 된 과정과 한국에서 무기한 자격 정지를 당하게 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자신을 무조건 ‘나쁜 ×’라고 손가락질했던 사람들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며 이런 감사를 전했다.
“가급적 인터뷰를 하지 않으려구요. 할 때마다 변명을 늘어놓는 것 같아서요. 그냥 야구를 위한 선택이었고 그 선택을 인정해주시고 응원을 보내주신다면 감사하겠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딱 한 가지잖아요. 마운드에서 좋은 모습 보여드리는 거. 그 약속 꼭 지키고 싶어요.”
▲ 추신수. 연합뉴스 | ||
“지금 뭐하고 있냐구요? 짐 싸고 있는데요. 저 10월 10일 귀국하잖아요.”
귀국을 앞두고 10여 일 전부터 짐을 싸는 사람은 처음 봤다. 그만큼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짜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는 소리다. 지난 7월 시애틀에서 클리블랜드로 트레이드 된 추신수는 이적하자마자 ‘안타 제조기’가 된 듯 방망이에 불을 지피다 잠시 주춤하면서 슬럼프를 겪기도 했다. 한 경기에서 삼진을 4개나 당하기도 했고 아예 선발에서 제외되며 벤치를 지키는 아픔도 있었다.
“오클랜드전은 잊을 수가 없어요. 야구하고 한 경기에서 삼진을 4개나 먹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거든요. 너무 너무 화가 나서 더그아웃에 들어와 방망이라도 던지고 싶었는데 이게 메이저리그 경기다 보니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더라구요. 한국에까지 중계되는 마당에 ‘만행’을 저질렀다간 큰일 날 것 같아 꾹 참았는데 그게 더 힘들더라구요.”
유명세를 타면서 자신에 대한 이런 저런 미확인 기사가 보도되는 건 참을 수 있지만 팀 감독과의 사이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처럼 쓴 기사는 도저히 이해를 못하겠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전 마이너리그에서 트레이드돼 왔어요. 대신 여기서 잘하는 선수가 시애틀로 옮겨갔구요. 클리블랜드가 바보도 아니고 절 그냥 놀리려면 뭐 하러 데려왔겠어요. 한두 경기 안 나간다고 해서 어떤 문제가 있는 게 아니거든요. 감독이 절 신뢰하고 있다고 믿고 있고 저 또한 그 신뢰에 금이 가지 않도록 열심히 뛰고 있는데 자꾸 이상한 시각으로 몰고 가는 기사들이 있더라구요.”
인터뷰 때마다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털어놓는 추신수에게 아시안게임 대표팀에서 제외된 부분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번 인터뷰 때 밤잠을 설칠 정도로 대표팀 발탁에 대해 큰 기대를 하고 있음을 표현했던 그였다.
“사실 신경 안 쓰려 했어요. ‘마음을 비워야지’하면서 경기에만 집중하려고 했지만 그게 잘 안 되더라구요. 게임 끝나면 어떻게 됐나 싶어서 인터넷을 뒤지기도 하고 무슨 연락 온 게 없나 싶어서 휴대폰을 확인해 보기도 했죠. 솔직히 말해서 기대 많이 했어요. 태극마크 달고 한국 선수들과 한국말 하면서 동지애, 끈끈한 팀워크, 뭐 이런 것도 느껴보고 싶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선배들과 또 보고 싶은 친구들과 야구를 한다면 야구가 달라 보일 것 같더라구요. 그런데 결국 안 됐어요. 처음엔 섭섭했죠. 그렇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게요? 지금은요? 이미 다 지난 일인 걸요.”
추신수는 자신의 실력이 검증 안 되었기 때문에 대표팀에 뽑지 않았다는 김재박 감독의 얘기에 대해선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만약 한국에서 기자와 따로 만날 기회가 있다면 그때 솔직히 털어놓겠다면서 대답을 미뤘다.
이미 상황은 종료됐고 추신수는 군 입대를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됐다. 연기할 수 있는 데까지 최대한 연기해 보고 다음에 있을 국제 대회에 자신의 이름이 올려지길 바랄 뿐이다. 그래도 갑갑한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군대 생활 자체를 힘들어하는 게 아니다. 군 입대 후 야구를 할 수 없게 되면 경기 감각이 한순간에 무너져 자칫 야구 인생을 완전히 접을 수도 있다는 걱정 때문이다.
“기다리는 자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는 말도 있잖아요. 희망을 버리지 말고 기다릴 거예요. 한국에서 운동하는 선수들도 고생 많이 하고 한국의 야구 발전을 위해 열심히 뛰고 있다는 것 잘 알아요. 그러나 외국에서 운동하는 선수들이 애국심이 없다거나 한국 야구를 위해 아무 것도 안 한다고 생각하신다면 좀 서운해요. 뛰는 무대는 미국이지만 전 엄연히 한국 선수고 나중에 돌아갈 곳도 한국이잖아요.”
10일 귀국하면 추신수는 많이 놀랄 것 같다. 지금까지 시즌 마치고 한국에 들어올 때 공항에 단 한 명의 기자도 나타나지 않았다고 말하는 그는 이번 귀국 때 과연 기자들이 나올지에 관심을 내보였다.
“한두 분 정도는 나오시겠죠? 이 기자님 오실 거죠? 그럼 됐네. 쓸쓸하진 않겠어요. 3개월 정도 머물다 들어올 겁니다. 그럼 한국에서 봬요.”
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