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우의 백토스] 플레이오프 진출, 김호철 현대 캐피탈 감독

‘우여곡절’ 끝에 잡은 기회 놓치지 않아! 불끈

	▲ 사진=이종현 기자 [e-mail]

대한항공과 플레이오프를 치르는 현대캐피탈 김호철 감독한테 올시즌은 ‘용병으로 시작해서 용병으로 끝난 한 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시즌이 시작되고도 마땅한 용병을 찾지 못해 테스트만 반복했으며 시즌 막판에 어렵게 인연을 맺은 브라질 출신의 로드리고도 부상으로 팀 전력에 큰 보탬이 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김 감독은 이번 시즌을 치르며 자존심도 상했고 느슨하게 시즌을 준비한 탓에 선수들이 고전을 면치 못했다며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정규리그 우승팀 삼성화재가 기다리고 있는 챔피언결정전보다 플레이오프 경기가 고비가 될 것 같다고 예상하는 김호철 감독을 김상우 해설위원이 만났다.

김상우(상): 올시즌, 정말 힘들게 여기까지 오신 것 같아요. 여러 가지 문제들이 많았잖아요.

김호철(호): 새로운 것 좀 해보려고 하면 계속 일이 꼬여서 난감했지. 그중 가장 큰 일이 용병 문제였어. 용병 없이 시즌을 치르는 부분들, 또 그 와중에 용병을 물색하고 테스트하며 보낸 시간들, 그리고 마지막에 남은 로드리고와 인연을 맺었는데 이번엔 부상으로 뛰질 못하는 것까지…. 아, 이번 시즌은 너무 힘들었어. 숙제는 넘치는데 해결이 안 되니까 죽을 맛이었지.

상: 선수들도 힘들었을 거예요.

호: 그럴 수밖에. 용병 부재로 선수들 포지션이 계속 바뀌었거든. 선수들도 갈피를 못 잡았을 거야. 그래도 불협화음은 없었어. 선수들과 대화를 자주 했으니까. 대화를 통해 감독의 어려움을 전달하고 선수들의 의견도 들어보면서 풀어나간 것 같아. 뭐 어떡하겠어. 감독 능력이 부족해서 좋은 용병을 못 데려온 걸.

상: 이번 시즌 중 최고의 위기는 언제였나요?

호: 첫 출발하면서부터였지. 1라운드 전패하고 사실 고민이 많았어. 가슴이 너무 아팠고 자존심이 무척 상했거든. 나 자신부터 안이하게 시즌을 준비한 것 같고, ‘두 번이나 우승했으니까’ 하는 생각도 했었고. 그래서인지 이전처럼 선수들을 달달 볶지 않았어. 감독이 느슨하게 출발하니까 선수들도 마찬가지였을 거야. 나부터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

상: 김호철 감독님하면 코트에서 보이는 열정적인 제스처를 가장 많이 떠올리는 것 같아요. 종종 판정에 대해 어필하시면서 흥분하시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어요.

호: (경기에) 너무 몰입하는 바람에 절제를 못할 때가 가끔 있었지(웃음). 그냥 웃는 얼굴로 얘기하면 심판이 감독을 우습게 알아. 반대로 강하게 어필하고 난리치면 수그러들고. 물론 욱 하는 성격도 한몫하겠지만 어떨 땐 일부러 더 오버해서 어필할 때도 있어.

상: 작전타임 부를 때 방송 마이크가 들어오잖아요. 굉장히 부담스러우시죠?

호: 팬 서비스 차원에선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 감독의 작전 지시가 생생하게 전달되니까. 하지만 감독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부분도 있어. 화를 내고 욕을 하고 싶어도 방송 의식해서 못할 때가 있거든. 그런데 요즘 우리 선수들은 하도 내가 난리 치는 걸 봐서 그런지 화를 내고 소릴 쳐도 ‘또 시작이다’하는 표정들이야. 처음엔 소리만 질러도 바짝 긴장들 하더니(웃음).

상: 감독님 뵈면 꼭 묻고 싶은 질문이 있었어요. 도대체 그 알록달록한 넥타이는 어디서 구입하시는 거예요?

호: 올시즌 내가 맨 넥타이에는 큰 뜻이 담겨 있어. 아는 분이 넥타이를 제작하는데 김호철만을 위해서 유명 화가들의 그림이 프린트된 넥타이를 만들어서 선물한 것이거든. 난 날 위해 제작된 넥타이를 매는 거야. 조금 독특하긴 하지만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넥타이라서 즐겨 착용하고 있지.

상: 이건 좀 예민한 내용인데요, 지난 주 신치용 감독님과 인터뷰를 했거든요. 그때 신 감독님께서 김호철 감독과는 전우(군대동기)일 뿐 친구는 아니라고 말씀하셨어요.

호: 사실이야. 우린 친구가 아니야. 둘이 좋아서 만난 적도 없고. ‘40년지기 친구’는 언론에서 만들어낸 ‘작품’이지. 하지만 나도 신 감독에게 할 말이 있어. 좀 진솔하게 살았으면 좋겠어. 정확하게 할 얘기는 하고 숨길 건 숨겨야지, 무조건 아니라고 발뺌하는 건 신 감독 답지 않아. 그리고 나한테 서운하거나 할 말이 있으면 직접 얘기해야지. 언론을 상대로 뭐라고만 말고.

상: 분위기 좀 바꿀게요. 감독님이 현대캐피탈 오시기 전에 LG(현 LIG) 감독으로 갈 뻔했다는 게 사실인가요?

호: 98년에 ‘콜’ 받은 적이 있었어. 당시 김갑제 감독이 그만둔 이후였거든. 이탈리아 프로팀을 우승시킨 후 최고의 주가를 올리던 때였는데 한국에서 ‘콜’이 오니까 너무 오고 싶더라고. 한국 들어와서 일주일 동안 머물며 LG 관계자들과 협상을 벌였고 서로 계약을 맺기로 합의한 후 난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갔다가 짐 정리해서 귀국했지. 그런데 구단 내부에서 무슨 문제가 생겼나봐. 양측의 갈등이 첨예화되면서 내 문제가 없던 일로 돼 버린 거야. 한 마디로 난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본’ 꼴이 되고 말았어. 망신도 그런 망신이 없었지. 결국 이탈리아로 다시 들어갔는데 얼마나 창피했는지 몰라.

상: 혹시 다른 팀으로부터 감독 제의를 받는다면 팀을 옮길 생각도 있으세요?

호: 우린 프로잖아. 한 군데 묶여서 오래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 물도 고이면 썩기 마련이듯이 머무는 것보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게 좋아. 그런데 이런 얘기 나갔다간 구단에서 이상하게 오해하겠다(웃음).

상: 만약 챔피언결정전에서 삼성화재를 만난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호: 지금은 챔프전보다 플레이오프가 더 중요하잖아. 이걸 넘겨야 챔프전까지 갈 수 있으니까. 삼성이 강점도 있지만 약점도 분명 있거든. 그걸 공략해야지. 그런데 신치용 감독을 보니까 이번에 무지 우승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

2주 연속 배구계의 라이벌 감독으로 꼽히는 신치용, 김호철 감독을 만나면서 상대에 대한 감정들이 그리 편치 않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그 배경엔 분명한 ‘이유’가 존재한다. 하지만 그 ‘이유’를 뛰어 넘어 서로에게 질 수 없다는 자존심과 승부에 대한 욕심과 근성이 두 감독을 명장으로 이끄는 힘이 되는 것만 같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두 사람은 불편해도 그들의 ‘감정 싸움’을 지켜보는 관객 입장에선 그냥 재밌다^^. KBS N 해설위원

정리=이영미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