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경기에 베팅했던 것 같기도” 승부조작 냄새가…
지난 2012년 3월 김 아무개 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전직 K리그 축구선수 A 씨로부터 급하게 10만 원을 빌려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A 씨는 2009년부터 2014년까지 K리그에서 활동했고 지난 시즌에는 실업리그인 내셔널리그에서 뛰었다. 현재는 무적상태다. 김 씨에 따르면 A 씨는 김 씨에게 수차례 돈을 빌려갔는데 2015년 5월까지 총액이 무려 5010만 원에 이른다. 돈을 빌리는 이유는 아버지 병원비, 중국 구단 테스트비, 본인 수술비 등이었다고 전했다. A 씨는 이 돈을 갚지 않았고 지난 2014년 차용증을 작성하기에 이른다. 이후로도 김 씨에게 돈을 빌릴 때마다 차용증을 갱신했다. 김 씨는 A 씨에게 돈을 빌려주기 위해 제2금융권으로부터 대출까지 받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다가 김 씨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당시 K리그 선수이던 A 씨가 불법 스포츠토토에 연루돼 있었던 것. 김 씨는 “A 씨가 월급을 받지 못해 돈을 못 갚고 있다고 했지만 구단에 확인해보니 월급을 꼬박꼬박 받고 있었다”며 “A 씨를 추궁했더니 이 돈을 불법 스포츠토토에 탕진했다고 이실직고했다”고 전했다. 당시 A 씨가 김 씨에게 털어 놓은 사연은 대략 이러하다. A 씨는 김 씨에게 돈을 빌리기 직전 불법 스포츠토토 사이트 운영자에게 거액의 투자금을 지불하고 매달 일정 금액을 받기로 약속받았다. 그러나 당시 A 씨는 투자할 돈이 부족했고 주변 건달로부터 돈을 빌렸다. 그러나 정작 A 씨는 투자 후 사이트 운영자로부터 받은 돈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건달로부터 빚 독촉을 받은 A 씨가 김 씨에게 다시 돈을 빌린 것이다.
김 씨가 공개한 카카오톡 대화에서 전직 프로 축구선수 A 씨는 본인이 불법 스포츠 도박에 베팅을 했음을 시인했다.
A 씨는 불법 스포츠토토에 단순 투자만 한 것이 아니라 선수 신분으로 직접 베팅까지 했다. A 씨가 빌린 돈의 대부분이 불법 토토로 나갔다는 게 김 씨의 주장이다. 김 씨가 공개한 A 씨와의 통화 내역에서 A 씨는 “지난해 가을까지 불법 토토를 했었다”며 “과거 스타크래프트 관련 불법 토토에도 참여했다”고 털어놓았다. 김 씨는 A 씨가 자신이 직접 뛰었던 경기에도 베팅을 했다고 주장한다. 이에 A 씨는 “했던 것 같은데 잘 기억이 안난다”고만 했다. 또한 본인이 활동한 불법 토토 사이트 ‘BOO’와 ‘베OO’을 언급하는 등 상당히 구체적으로 얘기했다.
A 씨는 지난 시즌 뛰었던 내셔널리그 팀 감독에게도 돈을 빌린 것으로 확인됐다. 빌린 이유는 김 씨와 마찬가지로 아버지 병원비였다. 그 감독은 “아버지가 편찮으시다며 나한테 돈을 빌려간 적이 있었다”며 “과거 A 씨가 불법 토토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팀에 있을 때는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다만 A 씨가 빌린 금액은 상대적으로 소액이고 이후 갚았기 때문에 감독은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또한 A 씨가 감독에게 빌린 돈이 실제로 불법 토토에 사용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한편 돈을 받지 못한 김 씨는 A 씨에게 변제 요구를 시작했다. 갚을 형편이 못됐던 A 씨는 극단적인 말까지 꺼냈다. 지난 2월 A 씨는 자살을 하겠다며 보험금으로 돈을 갚겠다고 한 것. 물론 A 씨가 실제로 자살을 하진 않았고 한순간의 소동으로 끝났다.
김 씨는 A 씨를 상대로 고소할 의사를 보였다. 그러나 김 씨는 여전히 오랜 지인인 A 씨와 원만한 해결을 시도했다. 이 소식을 들은 A 씨의 아버지 역시 돈을 갚겠다는 뜻을 전했다. 김 씨는 A 씨를 고소하기 전 변호사를 통해 합의 의사를 물어봤고 A 씨 아버지는 합의하겠다고 답했다. 지난 4월 5일 A 씨는 김 씨에게 사과하고 합의서를 작성했다. 합의서 내용은 4월 30일까지 원금 1500만 원과 이자 100만 원, 총 1600만 원을 우선 갚고 2016년 6월부터 매달 200만 원을 갚아 완전 변제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합의서에는 A 씨 아버지의 도장도 찍혀있다.
김 씨와 A 씨가 작성한 채무 변제 합의서. 하지만 A 씨는 1차 합의금을 갚기로 한 날부터 지금까지 연락이 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을 뿐 1차 합의금을 갚기로 한 날부터 현재까지 A 씨는 김 씨의 연락을 받지 않고 있다. 참다못한 김 씨는 지난 5월 9일 수원지방검찰청에 사기, 도박, 국민진흥체육법위반 혐의로 고소장을 제출했다. <일요신문> 역시 A 씨와의 연락을 시도했으나 받지 않았다.
김 씨는 “고소하기 전 A 씨와 이야기를 했다. 검찰 조사가 들어갔을 때 단순 사기면 모르겠지만 불법 토토까지 드러나면 큰일 난다고 했더니 ‘모르겠다. 알아서하라’고 했다. 결국 너무 화가 나서 오랜 친구임에도 고소를 결심했다”며 “그럼에도 합의를 보려고 한 번 더 기회를 줬지만 상황이 이렇게 돼 너무 화가 난다”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
“무혐의 선수들도 안심 못해” 2011년 사건 끝난 게 아니다 김 씨는 A 씨의 승부조작 의혹도 제기했다. 사건을 맡은 김 씨의 변호사는 “A 씨는 김 씨와의 통화에서 본인이 불법 스포츠토토를 했다는 점 자체를 인정했고 구체적인 사이트 명까지 거론했다”며 “따라서 현역 선수시절 도박을 했다는 점은 인정되는 부분이고 여기서 토토만 한 것인지 승부조작에까지 개입을 한 것인지 검찰에 수사를 요청했다”고 전했다. A 씨의 승부조작 연루 가능성에 대해 한 전직 K리그 관계자는 “A 씨를 비롯한 동료 축구선수들도 2010년에서 2011년 사이 승부조작에 가담했다”며 선수들의 구체적인 실명도 거론했다. 여기에는 유명 현직 축구선수인 B 씨와 C 씨도 포함됐다. B 씨와 C 씨는 과거 2011년 K리그 승부조작 사건 당시에도 승부조작 의혹을 받았다. 한편 A 씨의 사건을 맡은 수원지검은 “현재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며 관련 답변을 거절했다. 그러나 K리그 관계자들은 이에 대해 잘 모른다는 반응이다. 한국프로축구연맹 관계자는 “축구연맹 내부에서도 A 선수 관련한 승부조작의 내용은 전해진 게 없다”며 “다만 의심이 가는 상황이니 우선적으로 파악에 들어가겠다”고 전했다. A 씨가 마지막으로 뛰었던 내셔널리그 팀 관계자도 “A 씨가 사건사고 관련한 문제를 일으킨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결국 현재로선 A 씨가 승부조작을 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 김 씨 측 변호사는 “스포츠토토 사이트의 구체적 이름까지 나온 상태이니 검찰이 해당 사이트에 대한 자금 등을 조사하면 그 때 승부조작 여부가 나올 것”이라며 “당시 무혐의 처분을 받은 B 씨 역시 여기서 새로운 증거가 나온다면 처벌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했다. [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