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레전드’라 부르지 마라
▲ 왼쪽 이종범(연합뉴스) 오른쪽 양준혁(사진제공=삼성 라이온스) | ||
1990년대 이종범 > 양준혁
90년대는 이종범의 것이었다. 잘 치고 잘 달리던 그의 야구는 늘 화려한 조명을 받았다. 그는 타고난 ‘스타형 선수’다. 관중이 많고 관심이 많이 모아지는 경기서 더 잘 치고 잘 달렸다. 화려한 액션도 빼놓을 수 없다. 이종범은 언제 어떤 동작을 해야 관중들이 더욱 열광하는지 잘 아는 선수다.
이종범은 1982년 백인천 이후 4할 타율에 가장 근접했던(.393) 선수이며 한 시즌에 30개의 홈런과 30개의 도루를 한꺼번에 기록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걸 확인시켜줬다. 그가 기록한 84개의 도루(1994년)는 여전히 한국 최고의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종범은 모두 세 차례의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데뷔 첫 해인 1993년을 비롯, 96년, 97년 2연패도 이끌었다. 큰 무대는 역시 이종범의 것이었다. 그리고 97시즌이 끝난 뒤 이종범은 해외진출을 선언한다. 선배 선동열이 뛰고 있는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곤즈가 최종 기착지가 됐다. 부와 명예가 모두 그의 손에 쥐어진 순간이었다.
양준혁도 매우 훌륭한 선수였다. 이종범과 데뷔연도가 같은 그는 1993년 한국 프로야구의 신인왕이었다. 그러나 그가 신인왕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해 신인왕을 이종범이라 기억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양준혁의 90년대는 그렇게 흘러갔다. 매우 잘했지만 늘 누군가에게 반발자국 정도 뒤졌다. 매년 3할 이상의 타율과 20개 이상의 홈런(94년 19개)을 때려냈던 그다. 93년과 98년엔 타격왕까지 차지했다. 그러나 늘 최고의 관심은 다른 선수의 몫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아픔. 양준혁은 삼성에서 떠밀리 듯 쫓겨나는 상처를 안게 된다. 양준혁은 1999시즌을 앞두고 해태로 트레이드가 된다.
2000년대 이종범 < 양준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