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서 두 번이나 퇴짜…“이러다 무산될라” 주주들 속앓이
영진약품 관계자는 “영진약품은 연구개발(R&D)에 대한 투자가 부족하고 내세울 만한 성과도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 KT&G생명과학은 R&D에 특화돼 있지만 영업력이 약하다”며 “두 회사가 합병하면 일이 수월해질 뿐 아니라 비용 절감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영진약품과 KT&G생명과학의 합병비율은 1 대 0.61로 결정됐다.
업계에서는 합병 뒤에 백복인 KT&G 사장이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KT&G의 사업 부문은 크게 담배, 인삼, 화장품, 제약 4가지로 나뉜다. 그러나 담배, 인삼에 비해 화장품, 제약 사업의 매출은 적은 편이다. 이에 계열사 통폐합을 통해 KT&G 자회사들의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백 사장 취임 이후 KT&G 계열사들은 몇 가지 변화를 겪었다. 백 사장 취임 15일 후인 10월 22일 KT&G는 상상스테이를 설립해 12월 KT&G 계열사로 편입시켰다. 상상스테이는 KT&G가 자본금 200억 원을 출자한 법인으로 호텔사업을 전문으로 하고 있다. 또 지난해 12월 31일자로 KGC예본의 향캡슐사업 부문은 생산을 중단하고 매각 절차에 들어갔다. 영진약품과 KT&G생명과학 합병 역시 백 사장이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백복인 KT&G 사장. 사진출처=KT&G 홈페이지
그러나 KT&G 측은 이를 부정했다. KT&G 관계자는 “KT&G 자회사들은 자율경영을 하고 있고 각 사의 이사들이 추진해 합병을 결정한 것”이라며 “합병을 진행하거나 철회하는 것도 모두 자회사들의 뜻에 달렸다”고 전했다. 영진약품과 KT&G생명과학 합병 역시 자회사 간 자체 결정이라는 반응이다.
현재 영진약품과 KT&G생명과학 합병에 대한 일정은 모두 미정 상태다. 영진약품은 지난 4월 11일 금감원에 합병을 위한 증권신고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금감원은 “심사 결과 증권신고서의 형식을 제대로 갖추지 않았고 중요사항의 기재나 표시 내용이 불분명해 투자자의 합리적인 판단을 저해하거나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며 정정신고서 제출을 요구했다. 이에 같은 달 29일 영진약품은 정정신고서를 제출했으나 금감원은 지난 5월 12일 또 다시 같은 이유로 영진약품에 신고서 정정을 요구했다.
현행법상 3개월 내 정정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해당 증권신고서는 수리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영진약품은 오는 8월 11일까지 정정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합병 철회로 처리된다. 영진약품은 당초 7월 1일 합병 후 7월 중순에 신주를 상장할 계획이었다.
영진약품의 KT&G생명과학 합병 발표 이후 주가는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만일 합병이 철회되면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일요신문DB
합병이 늦어지자 주주들은 혼란에 빠졌다. 합병 발표 이후 영진약품의 주가는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발표 직전인 4월 1일 영진약품의 주가는 3965원이었으나 지난 7월 29일 기준 1만 800원으로 3배 가까이 올랐다. 한국거래소가 지난 5월 현저한 시황변동에 대한 조회공시를 요구했을 때 영진약품은 “KT&G생명과학과 소규모 합병을 결의“를 이유로 들었다. 그런데 자칫 합병이 철회되면 상당한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앞의 영진약품 관계자는 “주주들에게 계속 문의전화가 오고 우리도 답답한 상황이라 빨리 일을 처리할 계획”이라며 “아직 합병 철회에 대한 것은 정해진 게 없으며 철회를 하더라도 영진약품 단독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양사가 합의해서 해야 한다”고 말했다.
KT&G생명과학은 합병 철회 계획이 없다는 반응이다. KT&G생명과학 관계자는 “합병을 철회할 생각이 전혀 없다”며 “영진약품이 KT&G생명과학의 자료까지 취합해서 증권신고서를 제출하기 때문에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합병을 철회해도 금감원 차원에서 제재를 가하거나 불이익을 주지는 않는다”며 “금감원의 역할은 정확한 정보를 공시하는 것이고 공시에 따른 영향은 회사가 책임져야 할 일”이라고 전했다. 만약 합병을 철회한다면 회사는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은 채 합병에 따른 시너지 효과와 실적 개선을 기대하고 영진약품에 투자한 투자자들만 손해를 볼 수 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
KT&G 이전에도 자회사 합병 논란 있었는데… KT&G의 자회사이자 ‘꽃을 든 남자’ 브랜드로 잘 알려진 소망화장품은 지난 6월 24일 KT&G의 또 다른 자회사 KGC라이프앤진을 흡수합병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 달도 채 안 된 7월 22일 소망화장품은 “그룹 전체적인 관점에서의 사업구조 등 다각적인 재검토 필요성 부각에 따라 모든 합병에 대한 사항을 취소한다”며 번복했다. 합병의 본래 목적은 경영 효율화였다. 소망화장품은 2011년 KT&G에 인수된 이후 실적면에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합병 전인 2010년 1220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지만 최근 3년간 매출은 700억 원대에 머물러있다. 한편 KGC라이프앤진은 화장품 도소매 및 방문판매 기업이다. 양사는 이원화된 화장품 사업을 하나로 묶어 관리할 계획이었다. 소망화장품 관계자는 “KT&G 본사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았고 당사자들끼리 전체적으로 검토한 것”이라며 “단기간 내에 다시 합병에 대해 논의할 계획이 없다”고 전했다. KT&G 관계자 역시 “KT&G 본사는 담배 사업만 담당하고 있고 다른 사업 부문은 자회사에 맡기고 있어 본사가 관여할 바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