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도범들 CCTV 피하기 기상천외 범죄행각
그러나 약 보름 만에 검거된 범인의 머리에는 머리카락이 비교적 풍성했다. 전과 22범으로 알려진 범인 김 아무개 씨(36)는 범행 당시 CCTV를 피하기 위해 대머리 가면을 사서 착용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핼러윈 등 파티 용품을 파는 웹사이트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고무 재질의 가면이었다. 얼굴 부위에 눈썹과 코, 입술 등이 달려있어 얼핏 보면 가면이 아니라 그대로 사람 얼굴처럼 보인다. 김 씨는 쓰레기통에서 우연히 가면을 줍게 된 뒤 이를 범행에 이용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씨가 붙잡힐 수 있었던 것은 CCTV의 역할이 컸다. 대머리 가면을 뒤집어 쓴 채 범행 현장에 나타난 김 씨의 뒷모습에 머리카락이 삐져나온 것이 CCTV에 포착됐기 때문. 경찰은 김 씨가 대머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아파트에 설치된 CCTV에 찍힌 ‘가면을 벗은’ 김 씨의 동선을 파악해 그를 검거할 수 있었다.
CCTV 설치가 점점 증가하면서 절도범들이 범죄 은폐를 위해 각종 기상천외한 방법들을 동원하고 있다. 지난 11월 17일에는 옷을 모두 벗은 뒤 윗옷을 얼굴에 뒤집어쓰고 식당과 술집 등을 돌며 금품을 훔친 30대 남성이 붙잡히기도 했다. 이에 앞서 같은 달 11일에는 우산으로 얼굴을 가린 채 사찰을 돌며 불전함을 턴 40대 남성이 경찰에 검거됐다. 이들은 모두 CCTV에 얼굴이 찍힐 것을 우려해 필사적으로 ‘얼굴’만을 가렸다.
바람대로 현장에 설치된 CCTV에 그들의 얼굴은 전혀 찍히지 않았다. 그러나 옷차림은 물론 걸음걸이 등 특이한 신체 특징은 그대로 찍혀 경찰은 걸림돌 없이 수사에 임할 수 있었다. 더욱이 현장 인근 도로에까지 연결된 CCTV에 서둘러 도망가는 범인의 모습까지 촬영되면서 결국 완전범죄를 꿈꾼 이들의 소망은 무너지고 말았다.
2016 행정자치통계연보에 따르면 CCTV 통합관제센터는 2013년 120개에서 2014년 149개, 2015년 12월 기준으로 총 171개가 설치돼 있다. 지역 전체에 CCTV는 2015년 12월 기준으로 총 73만 9232개가 설치돼 매년 증가하고 있다. 이 가운데 범죄 예방을 위해 설치된 CCTV는 2012년 10만 7528개에서 지난해 34만 758개로 약 3.3배가량 증가했다.
최근에는 휴대전화 등 모바일 기기가 경찰의 범죄 수사에서 디지털 증거분석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CCTV 분석은 여전히 다양한 범죄에서 범인 검거를 위해 적절하게 사용되고 있다. 2015년 경찰통계연보에 따르면 CCTV, 내비게이션 등 디지털 기기 증거분석 현황은 2008년 51건에서 2015년 712건으로 증가했다.
CCTV가 가장 크게 ‘효자 노릇’을 하고 있는 절도 범죄의 경우 2005년 18만 8599건 발생, 이 가운데 8만 677명을 검거해 검거율이 약 42.7%에 머물렀다. 그러나 CCTV가 대폭 증가한 2015년에는 24만 5853건이 발생해 이 가운데 12만 7368명을 검거, 검거율이 51.8%에 달했다.
한 지방경찰청 생활범죄수사팀 소속 경찰 관계자는 “흔히 절도범들은 범행 현장에 설치돼 있는 CCTV만 신경 써서 현장에서 찍히지 않으면 완전범죄를 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라며 “그러나 최근 CCTV는 건물 내부, 외부에 설치된 것은 물론이고, 아파트 등 다세대 주택이라면 설치된 CCTV 전체가 연결돼 있기 때문에 어느 한 곳에라도 찍힌다면 검거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자신했다. 실제로 지난 11월 9일에는 범행 현장에서 CCTV에 찍히지 않은 범인이 범행 전 다른 장소에서 음료수를 마시는 장면이 또 다른 CCTV에 찍혀 덜미를 잡혔다. 경찰은 이 범인이 버린 음료수병에서 지문을 채취해 그를 검거할 수 있었다.
굳이 범인이 변장하거나 CCTV를 피하지 않더라도 카메라의 화소가 낮아 범인이 찍혔어도 제대로 된 인상착의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이를 위한 경찰의 분석 방법이 바로 ‘법보행 분석’이다. 범인의 신체적 특징이 그대로 드러나는 걸음걸이를 분석하는 방법으로 다리의 모양, 걷는 방식 등을 종합해 분석한다.
지난해 4월 보험금을 타기 위해 친구를 살해한 ‘금호강 살인사건’ 역시 낮은 화소의 CCTV 사진으로 범인을 정확히 특정할 수 없었지만, 범인만이 가진 독특한 걸음걸이를 분석한 ‘법보행 분석’이 인정돼 대법원에서 무기징역형이 확정됐다. 경찰 관계자는 “범죄자들이 CCTV를 피해 점점 기상천외한 범죄 행각을 벌이고 있지만 그만큼 경찰의 수사 방법도 진화하고 있다. 범죄자는 반드시 흔적을 남길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실상 이들이 바라는 완전범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게 무방하다”라고 말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