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러리하다 본격 외도? 흑역사들 오버랩
김성한 전 KIA 감독(왼쪽), 문재인 후보(가운데), 김응용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회장. 연합뉴스
[일요신문] 19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임박했다. 그만큼 각 후보들의 선거 운동이 치열하게 이어지고 있는데 이번 대선에선 유독 연예인의 선거 운동 참여가 크게 줄어들었다. 반면 전직 스포츠 스타들의 선거 운동 참여는 오히려 더 늘고 있는 추세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비롯한 스포츠 현안이 많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체육계에선 현역에서 은퇴한 전직 스포츠 스타들의 거듭된 정치권 진출이 이런 분위기를 부축이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 대선으로 몰리는 스포츠 스타
지난 4월 18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광주 유세에서는 야구팬들에게 낯익은 얼굴이 등장했다. 과거 ‘해태 왕조’의 상징 김응용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회장과 김성한 전 KIA 타이거즈 감독이 유세장에 나타나 문 후보에 대한 지지를 호소한 것. 김 전 감독은 유세 현장에서 “문 후보와의 면담 이후 팬이 됐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김 전 감독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문 후보를 돕게 된 계기로 “지난 2월 만난 자리에서 지역격차 해결이나 지방분권 정책 등 문 후보가 하고 있는 나라를 위한 고민에 많은 공감을 했다“며 ”나라가 위기인 상황에서 믿을 수 있는 후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 광주 유세 이외에도 다른 지방 유세, TV 찬조 연설 등으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광주에서 해태 유니폼을 입고 시민 앞에서 환하게 웃어보였던 문 후보는 부산에선 롯데의 푸른 유니폼을 입고 야구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자리에는 롯데 레전드 박정태 전 2군 감독이 함께했다. 문 후보와 박 전 감독은 롯데 응원 문화인 ‘주황색 봉다리’를 머리에 얹고 공식 응원가나 다름없는 ‘부산갈매기’와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열창했다. 이를 두고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부산선거대책위에서는 “문 후보는 스포츠를 정치에 이용하는 구태를 부르지 말라”며 “한국 야구 레전드를 정치에 동원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KIA와 롯데 두 구단의 열성팬인 양 위장 퍼포먼스에 실망감을 느꼈을 팬들에게 문 후보는 진심으로 사과해야 할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아시아의 인어’ 최윤희 여성스포츠회 회장 등 체육인 2000여 명도 지난 4월 11일 문재인 후보 공개 지지를 선언했다. 2000여 명의 명단에는 최 회장을 비롯해 임오경(핸드볼), 임춘애, 이봉주(이상 육상), 박찬숙(농구) 등 다수의 스타들이 포함됐다. 지난 3월에는 문재인 캠프에 인기 치어리더 박기량이 합류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최윤희, 임오경, 박찬숙 등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고 나선 체육인들. 연합뉴스
체육인들의 대선 후보 지지가 문 후보에게만 몰리는 것은 아니다. 지난 4월 20일에는 전 복싱 세계챔피언 장정구, 올림픽 복싱 금메달리스트 김광선, 탁구 금메달리스트 양영자 등 40명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를 지지하고 나섰다. 하지만 그 과정이 매끄럽지만은 않았다. 40명의 명단에 포함돼 있던 홍수환 전 챔피언이 안 후보를 지지한 적 없다며 반발했기 때문. 홍 전 챔피언은 “정치를 싫어한다”며 “국민의당을 선관위에 허위사실 유포로 고발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다만 홍 전 챔피언은 지난 대선에서는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를 적극 지지했었다. 그는 한 방송 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준비된 대통령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처럼 많은 스포츠 스타들이 각각 대선 후보들에 대한 지지선언을 하고 나섰지만 이를 보는 대중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이는 그간 스포츠인들의 정치참여가 긍정적 결과로 이어진 경우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 순조롭지 못한 영웅들의 정치 도전
스타들이 유세장으로 몰리는 것은 이번 대선이 처음이 아니다. 그동안 많은 스타들이 공식 지지선언을 하거나 선거철 유세 현장에 얼굴을 내비쳤다. 나아가 일부는 직접 선거 후보로 나서며 정치판에 뛰어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이 지속적으로 존경받는 정치인으로 활동을 이어나간 경우는 드물다. 이들은 과거 선수 시절만큼 정치판에서 큰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거나 당적을 옮기는 등의 행보로 대중들에게 비판을 받았다.
현역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는 스포츠 스타는 ‘바둑황제’ 조훈현 자유한국당 의원이 있다. 그는 지난해 20대 총선에서 당시 새누리당 비례대표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조 의원이 비례대표 순번을 배정받을 무렵 국민적 관심이 쏠린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이 있었다.
또한 ‘최순실 게이트’ 국면에서 ‘대통령 탄핵 주저 의원’으로 지목되며 일부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최근 그는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인 홍준표 후보의 선거운동을 돕고 있다.
국회에 몸담았던 태권도 선수 출신 문대성 전 의원. 일요신문 DB
문 전 의원은 임기 말에는 “정치현실이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며 차기 총선 불출마와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대표의 만류로 재선에 도전했지만 결국 낙선했다. 재선 도전 과정에서는 논문 표절로 취소된 박사학위 허위학력 기재 혐의로 고발당하기도 했다.
이에리사 전 의원도 국회 비례대표 의원으로 활동했다. 19대 국회 비례대표 의원이었던 그는 20대 총선에서 지역구 의원으로 의원 생활을 이어나가고자 했지만 당내 경선에서 탈락했다. 그는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당시 ‘승마 공주’ 정유라 씨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쏟아낸 의원으로 지목돼 비판을 받았다.
이만기 용인대 교수도 대표적 스포츠 스타 출신 정치인이다. 국민적 사랑을 받은 씨름선수였던 그는 지난 2004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국회의원 선거에 나서 낙선했다. 이후 장모와의 방송 출연 등으로 인기를 구가하던 이 교수는 2015년 말 돌연 방송에서 하차하고 지난해 20대 총선에 도전했다.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출마한 경험이 있는 그는 두 번째 도전에서는 새누리당을 선택해 ‘철새’라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또한 한국 축구의 전설 허정무 프로축구연맹 부회장도 지난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비례대표에 도전했다. 허 부회장은 당시 “국민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많을 것 같다”며 출사표를 던졌다. 하지만 곧 공천 취소 소식이 이어졌다. 비례대표 후보자 명단에서 당선 가능성이 낮은 32번에 배정되자 본인이 사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좋은 결말을 맺지 못한 스포츠 스타들의 정치 도전이 이번 대선을 계기로도 이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지선언이나 선거 운동을 돕다가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들 수 있다는 것. 더불어민주당 중앙선대위 체육지원단장, 호남선대위 본부장, 광주·전북·전남 공동선대위원장 등을 맡고 있는 김성한 전 감독이 특히 이런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며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기에 더욱 의혹을 받기 쉽다. 선거 운동 이후 정계 진출 의향에 대해 김 전 감독은 “선거 이후로 이쪽에서 활동할 생각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괜한 오해를 사지 않으려고 방송 해설 등 두세 가지 일에 사표를 쓰고 나왔다. 선거가 끝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계획”이라면서도 “나중에 체육계 정책 등과 관련해 요청이 온다면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는 있다. 체육계에 몸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