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전 37승 ‘승승장구’…형편 어려워 개인레슨 못 받지만 꿋꿋이 훈련
미국 워싱턴 주 페드럴웨이(시애틀 인근)에 거주하는 ‘골프 신동’ 성재현(미국명 제프)은 만 8세의 나이에 전 세계 주니어 선수들이 참가하는 US월드 주니어 골프 대회에서 톱5 안에 들면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때가 골프를 시작한 지 불과 1년 8개월 만의 일. 시애틀 노스이스트 타코마 브라운스 포인트 초등학교 4학년이 되는 성재현은 3세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골프장을 다니기 시작했고, 7세가 되면서 정식으로 골프 레슨을 배운 이후 출전하는 대회마다 3위 이상의 성적을 내고 있다. 핸디가 이븐인 그는 2016년 6월 11일 클래식 골프장에서 14번 파5에서 알바트로스를 달성했고, 이글을 10회나 이뤘다. 타이거 우즈를 롤 모델로 삼고 있는 성재현과 그의 아버지 성복식 씨를 미국 시애틀의 한 골프장에서 만났다.
미국 워싱턴 주 페드럴웨이에 거주하는 골프 신동 성재현은 그동안 출전한 40개 대회 가운데 3개 대회를 제외하고 모두 1등을 차지했다.
성복식 씨는 원래 주말 골퍼였다. 유일한 취미가 골프이다 보니 주말만 되면 골프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어느 날 아내의 눈치가 보이기 시작한 성 씨는 만 두 살 된 아들을 데리고 골프장으로 향했다. 아들에게 어린이용 골프채를 쥐어 주고 혼자 놀라고 한 다음 자신의 골프에 집중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아들의 손에 골프채가 들리면 아빠를 찾지 않고 골프채만 갖고 노는 걸 목격하게 된다. 자신을 닮아서 골프에 소질이 있다고 생각했던 성 씨는 아들이 일곱 살이 되던 해에 정식으로 골프 레슨을 받게 했다.
이후 성재현은 고속 성장을 한다. 정식으로 골프를 배운 지 2개월 만에 한인 골프대회에서 챔피언을 차지했고, 참가하는 대회마다 3등 안에 들었다. 다음은 아버지 성복식 씨의 설명이다.
“재현이가 어려서부터 골프에 재능을 발휘했다. 처음엔 골프채를 갖고 놀다가 점차 흥미를 나타내더니 제대로 배우고 싶다고 말하더라. 그래서 일곱 살 때부터 레슨을 시작한 것이다. 재현이의 승부욕이 엄청나다. 보통 독종이 아니다. 자기보다 키가 큰 형들이랑 라운딩을 해도 절대 질 줄을 모른다. 미국골프협회(USGA)에서 주관하는 12세 이하 대회에 열 살의 나이에 출전했었는데 워싱턴 주 대표로 참가해서 형들을 다 이기고 1등을 차지했다. 어차피 퀄리파잉을 통과했다고 해도 본선 무대에는 나이 제한으로 출전할 수 없었지만 12세 이상의 선수들과 붙어도 뒤지지 않는 실력이란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만 18세 이하의 선수들은 대회에 출전할 때마다 참가비를 내고 경기에 임한다. 보통 150달러에서 250달러 수준이다. 그러나 일반 가정집에서 참가비에다 항공과 숙박비 등을 지급하며 1년에 4만 달러 정도를 들여 골프를 시키는 건 경제적인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내가 3년 전 교통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지금은 직업을 갖고 있지 않다. 고속도로에서 트럭과 정면충돌하는 바람에 어깨, 허리, 목 수술을 받았고 지금도 재활 치료 중이다. 몸이 성치 않지만 재현이 골프를 위해 이를 악물고 재활 치료를 받았다. 아이가 다른 건 몰라도 골프장에만 데려다 달라고 졸라서 병원에 누워있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아이 엄마가 일을 하고 있고, 재현이의 골프는 내가 전담 중이다. 개인 레슨도 경제적인 부담 때문에 지금은 잠시 중단한 상태다.”
성 씨는 교통비와 숙박비를 절약하기 위해 중고 밴을 구입해선 그 안에서 잠도 자고 식사를 해결한다고 설명했다. 다른 선수들은 대회 이틀 전에 골프장에 도착해서 연습 라운딩을 하지만 성재현은 비용 문제로 대회 전날 도착해서 제대로 연습도 못하고 대회에 참가하는 것이다. 아들이 골프에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지 않았다면 일찌감치 골프 선수로 키우는 걸 접었을지도 모른다는 성복식 씨.
성재현은 2016년 8월 22일 벌어진 워싱턴 노쇼어 주니어 오픈 토너먼트 대회 우승에 이어 USGA가 주최하는 ‘드라이브·칩&퍼트 콘테스트 마스터스 챔피언십’ 9세 이하 부문에서 정상에 오른 바 있다. 이 대회는 각 지역 예선을 거쳐 서부에서 1~2위를 차지한 선수들이 참가했는데 성재현은 이 대회 우승으로 2017년 4월 미국 조지아 주 오거스타에서 개막된 PGA 마스터스 특별 이벤트 대회에 참가 자격을 획득했었다. 다음은 성재현이 말한 내용이다.
“마스터스 대회에 가서 유명한 골퍼들을 많이 만났다. 그중 조던 스피스와 애니카 소렌스탐과의 만남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조던 스피스는 대회를 마치고 따로 만났는데 내게 좋은 선수로 성장해 프로에서 꼭 만나자고 말씀해주셨다.”
아버지 성복식 씨도 조던 스피스와의 만남 자체가 굉장한 이벤트였다고 설명했다.
“조던 스피스의 캐디가 시애틀 출신이라고 하더라. 재현이의 기록과 영상을 이미 다 찾아봤다고 말했을 만큼 관심이 대단했다. 조던 스피스의 말로는 아홉 살 나이에 공식 대회에서 알바트로스를 기록한 건 타이거 우즈도 자신도 못 이룬 일이라며 재현이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마스터스 대회를 앞두고 열린 이벤트 대회에 남녀 80여 명의 주니어 골퍼들이 출전했는데 그중에서 재현이가 가장 돋보였다면서 재현이가 골프를 싫증내지 않도록 잘 키워달라고 따로 부탁을 하기도 했다.”
성복식 씨는 아들이 공부와 골프를 병행하길 바란다. 지금도 학교 수업 마치면 골프장으로 데리고 가서 두세 시간씩 연습을 시키고, 집에 돌아가선 학교 숙제를 마쳐야 잠자리에 들 수 있다고 말한다. 성 씨는 “골프에 인생 교육이 다 들어 있다. 항상 양보하고 도와주는 게 몸에 배어 있어야 골프를 더 잘할 수 있다는 걸 재현이에게 강조한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성재현은 5, 6년 후 프로 데뷔를 계획하고 있다. 최장 비거리가 238야드까지 나온다는 그는 정말 골프 천재일까. 아버지는 천재형보다는 노력형에 가깝다고 말한다.
“기본적인 감각이나 재능은 있지만 정말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스타일이다. 학교에 가지 않는 주말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훈련에 집중한다. 내가 오히려 훈련량이 늘어나는 걸 막을 정도다.”
아버지 성 씨는 지난해 애리조나에서 열린 PGA 아카데미 스쿨에서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전문적인 지식 없이 아들을 가르치는 게 아쉬워 정식으로 코칭 스쿨에 들어간 것이다.
“아직까진 내가 재현이를 가르치는 입장인데 요즘에는 내가 재현이의 골프 실력을 따라가지 못해 벅차다는 생각이 든다. 스폰서가 생긴다면 전담 코치를 두고 재현이를 지원해주고 싶지만 아직까진 그런 형편이 아니라 어려움이 많다. 골프는 두 가지다. 돈으로 키우느냐, 아니면 실력으로 키우느냐인데 좋은 선수로 성장하려면 실력으로 키워야 한다. 우리가 가진 돈은 없지만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재현이를 보면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 한다.”
인터뷰 말미에 수줍음 가득한 성재현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했다.
―골프가 왜 좋니?
“그냥 재밌어요.”
―공부보다 더?
“공부도, 골프도 좋아요.”
―골프가 하기 싫을 때는 없었어?
“(단호한 목소리로) 네버!”
미국 시애틀=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