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대출…뒷돈 챙겨도…‘피해는 소비자 몫’
저축은행의 무리한 영업 확대로 인한 부실 대출 및 도덕적 해이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1972년 설립된 상호신용금고가 전신인 저축은행은 지역기반의 서민금융기관이자 생계형 대출이 많은 중저신용자를 위한 금융기관이다. 그러나 시중은행 상품이 다양해지고 경쟁이 심해지자 저축은행들은 기업대출을 강화하고 고금리 과다대출도 마다하지 않는 등 무리한 영업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입수한 ‘청년·여성 고금리 대출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3~2016년 말까지 저축은행의 가계대출 잔액 25조 7930억 원 중 12조 2480억 원이 여성과 청년 대출로 나갔다. 여성·청년 등은 저축은행에서 평균 23.5% 금리를 적용받았다. 이러한 고금리 대출을 받은 여성의 절반가량이 소득이 일정하지 않은 것으로 추측됐다. 제윤경 의원은 “대부업체와 저축은행 등의 대출 규모가 최근 몇 년간 커졌다“며 ”갚을 여력이 되는 고객들을 찾기보다 갚기 어렵지만 급전이 필요한 금융 약자들에게 영업망을 확장한 원인이 크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이 지난 2일 발표한 ‘저축은행의 2017년 1분기 중 영업실적’에 따르면 영업 중인 79개 저축은행의 지난 1분기 당기순이익은 2496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3.6% 증가했다. 이러한 저축은행의 성장에는 꼼수영업과 불법행위도 있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지난 5월 경기페퍼·OSB·충북아주·HK 등 저축은행 여러 곳이 금융당국의 조사 끝에 검찰에 고발됐다. 해당 저축은행 행원들이 대출모집인으로부터 대출중개수수료를 받아 챙긴 혐의 때문이다. 대출모집인은 금융회사와 전속 계약을 하고 개인 대출 고객을 끌어오는 사람을 말하는데, 유치한 대출금액의 일정 부분을 수수료로 받는다. 이 과정에서 일부 행원이 대출모집인에게 대출을 해준 데 대한 수수료 명목으로 일부를 돌려받았다는 것이다. 이들 행원이 수수료의 일부를 돌려받을 수 있었던 까닭은 대출이 어려운 사람들에게도 무리하게 대출을 승인해줬기 때문이다. 저축은행 행원들이 이런 방식으로 부당수취한 금액은 50억 원 이상이라고 알려졌다.
해당 저축은행들은 한결같이 “관련 사항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금융당국에서 저축은행을 대상으로 정기적 조사를 한 것은 맞다”며 “하지만 조사 결과에 대해 구체적인 조치가 아직 내려진 바 없으며 당시 문제가 됐던 직원들은 대출모집인을 관리하는 계약직원이었고 현재 회사에 근무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저축은행이 서민을 위한 금융기관인 만큼 금융당국의 올바른 정책적 유도가 필요하다. 연합뉴스
하지만 저축은행업계에서 대출모집인에 대한 처우가 좋지 않다 보니 무분별한 고금리대출 권유 행위가 관행처럼 지속돼왔다. 금융당국에서 대출모집인의 처우 개선과 저축은행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있지만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생각이다.
저축은행업계의 이 같은 구조적 문제는 결국 저축은행 부실을 야기할 수 있고, 금융소비자의 부담을 상승시킬 수 있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장은 “소규모 저축은행이 많고 직원처우나 내부 시스템이 제대로 정비돼 있지 않다”며 “결국 저축은행의 도덕적 해이는 금융소비자에게 비용으로 전가될 수 있어 금융당국의 제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저축은행에서는 상식적인 수준의 내부통제도 되지 않고 있으며 대출모집인 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며 “금융당국에서도 감시망을 좁히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법정 최고금리를 현행 27.9%에서 20%까지 낮추겠다고 공언했다. 사업 포트폴리오가 다양하지 않은 채 대부분 수익이 예대마진에 쏠려 있는 저축은행으로서는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하다. 중금리 대출시장을 타깃으로 출범한 인터넷전문은행이 인기몰이를 하는 것도 저축은행으로서는 큰 부담이다.
저축은행 한 관계자는 “정부나 여론이 저축은행을 무조건 악으로 보는 것이 안타깝다”며 “최고금리 인하 등 소비자를 위한 규제는 찬성하지만 저축은행이 다양한 신사업에 나아갈 수 있도록 정부가 창구를 열어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제1금융권에서 외면받는 저신용자 서민들에게 저축은행은 필요한 존재다. 저축은행을 무조건 규제하고 압박하기보다 합리적인 관리감독을 통해 더욱 투명화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금융감독원은 저축은행과 양해각서(MOU)를 맺고 대출모집인 교육관리·감독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규모가 천차만별인 79개 저축은행을 빠짐없이 감독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장은 “저축은행에 대한 금융당국의 제재 기준의 설정을 더 구체화하고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