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대의 악녀 세상 밖으로” 술렁
▲ 출소 후 인터뷰에 응한 호몰카. | ||
지난 1990년대 캐나다를 온통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던 ‘악의 화신’을 기억하는가. 당시 자신의 어린 여동생을 포함한 10대 소녀 세 명을 강간하고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었던 카를라 호몰카(35)가 얼마 전 12년 형을 모두 마치고 마침내 석방되었다. 그녀의 남편이자 공범자였던 폴 베르나르도(41)는 현재 1급 살인죄 및 강간죄, 불법 감금죄, 유괴죄, 신체 상해죄 등으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이다. 당시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 남편에 비해 가벼운 처벌을 받았던 호몰카가 다시 세상에 나오자 캐나다 전체가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은 물론. 비록 자신은 “나는 절대로 위험한 존재가 아니다. 앞으로는 그저 조용히 살고 싶다”며 참회의 눈물을 흘리고 있지만 그녀에 대한 캐나다 국민들의 비난과 경계심은 쉽게 누그러지지 않을 전망이다. 현재 여러 권의 책을 비롯해 영화로도 만들어질 예정인 이들 부부의 잔인하고 엽기적인 연쇄 살인 행각을 되짚어보았다.
모든 악은 사실 ‘집착’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남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호몰카의 ‘집착’, 그리고 베르나르도의 ‘순결한 처녀’에 대한 ‘집착’이 그것이었다.
이들이 처음 만난 것은 지난 1987년. 당시 토론토대학에 재학중이던 베르나르도는 잘생긴 외모와 터프한 성격으로 뭇여성들로부터 꽤나 인기가 좋았던 ‘킹카’였다. 여성편력이 심했던 그는 하지만 강간에 버금가는 성폭력을 휘두르는가 하면 구타와 폭언을 일삼는 탓에 만나는 여자들마다 오래 관계를 지속하지는 못했다.
그러던 중 그의 앞에 마침내 오래도록 꿈꿔왔던 ‘이상형(?)’이 나타났다. 자신의 명령에 묵묵히 복종할 줄 아는 순종적인 여자를 원하던 그에게 당시 동물병원 보조원으로 근무하던 고분고분한 호몰카는 제격이었다.
더욱 결정적인 것은 그가 “내가 만약 강간범이라면 어떻게 할거야”라고 묻자 “정말 멋질 것 같은데요”라며 대답하는 그녀의 태도였다. 이에 더욱 더 호몰카와 사랑에 빠진 그는 마침내 본격적인 강간을 일삼기 시작했다.
그의 수법은 늘 동일했다. 버스에서 내리는 여자에게 다가가 뒤에서 순식간에 잡아 끈 다음 한적한 곳으로 가 ‘일’을 치르는 것이었다. 늘 항문섹스를 즐겼던 그는 간혹 호몰카에게 강간 장면을 비디오 카메라로 찍도록 시키기도 했다. 이렇게 그가 강간했던 여성의 수는 2년 새 11명으로 늘어났으며, 그때마다 현장을 지켜 보고 있던 호몰카는 묘하게도 그에게 더욱 집착하기 시작했다.
피해자가 점차 늘어나자 마침내 당시 이들이 거주하던 지역명을 딴 악명 높은 ‘스카보로 강간범’에 대한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곧 경찰의 수사도 시작됐지만 호몰카와 베르나르도는 가까스로 법망을 피해 나갈 수 있었으며, 아무 일도 없다는 듯 1990년 마침내 약혼을 하기에 이르렀다.
자신의 약혼녀가 금발의 미녀인데다 또 순종적인 든든한 파트너였건만 베르나르도에게는 한 가지 커다란 불만이 있었다. 바로 그녀가 ‘처녀’가 아니란 점이었다.
베르나르도가 이런 불만을 털어 놓을 때마다 호몰카는 ‘그가 떠나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렸다. 어떻게 해서든 그를 붙잡고 싶었던 호몰카는 마침내 넘지 말아야 할 선까지 넘어서고 말았다.
▲ 남편이자 공범자인 폴 베르나르도와 카를라 호몰카의 결혼 사진. 이들은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부부였지만 10대 소녀 3명을 강간한 후 살해한 엽기부부였다. | ||
당시 15세였던 여동생 타미를 강간하기 위한 계획은 치밀하게 이루어졌다. 때는 1990년 12월23일. 호몰카의 부모와 여동생 둘이 모두 모인 크리스마스 가족파티에서 일은 벌어졌다. 베르나르도는 당시 동물병원에서 가져온 마취약을 탄 술잔을 타미에게 건넸고, 타미를 포함한 모든 가족이 잠자리에 들자 서서히 작업을 시작했다.
베르나르도가 한 손에 비디오 카메라를 들고 잠든 타미를 겁탈하는 동안 호몰카는 혹시 동생이 깨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수면제를 적신 옷으로 동생의 얼굴을 틀어막고 있었다. 하지만 잠시 후 타미가 구토를 하기 시작했고 놀란 호몰카는 동생을 거꾸로 들고 응급처치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타미가 한참을 구토하는가 싶더니 결국 질식사하고 만 것이다.
뜻하지 않은 사고에 놀란 이들은 급히 타미의 옷을 입힌 후 마치 사고인 양 위장한 채 구급차를 불렀고, 이렇게 이 사건은 오랫동안 단순한 질식사로 가족들의 가슴에 멍으로 남게 되었다.
그 후에도 베르나르도는 만족하지 못했다. 타미가 죽은 후 줄곧 “너 때문에 타미가 죽었다. 죽지만 않았어도 계속 갖고 놀 수 있었는데 말이다”라며 호몰카를 비난했고, 그때마다 그녀는 그를 만족시키기 위해 다음 사냥감을 찾아 헤매야 했다.
약혼자를 위한 ‘섹스 제물’은 반드시 10대 소녀인 동시에 ‘처녀’여야 했다. 그러던 중 이웃에 사는 15세 소녀 제인이 호몰카의 레이더에 잡혔다. 평소 호몰카를 따라 다니던 제인은 죽은 동생인 타미를 쏙 빼닮은 까닭에 제물로는 더없이 안성맞춤이었다.
이에 당장 제인을 집으로 초대한 호몰카는 약혼자에게 전화를 걸어 “당신을 위해 선물을 하나 준비했다”고 말했다. 이번에도 역시 술잔에다 수면제를 탄 후 강간을 한 이들은 모든 과정을 비디오 카메라에 담아 놓는 대범함까지 보여주었다.
그녀의 이런 ‘깜짝 선물’에 고무된 베르나르도는 지난 1991년 마침내 한참을 미뤄오던 결혼식을 올렸고 호몰카 역시 비로소 마음을 놓는 듯했다.
하지만 이들의 엽기 행각은 결혼 후에도 계속되었다. 당시 캐나다와 미국 국경을 넘나들며 담배 밀수를 하던 베르나르도는 차번호판을 훔치기 위해 동네를 어슬렁거리던 중 한 소녀를 즉흥적으로 납치하는 사건을 저질렀다.
이 소녀의 이름은 레슬리 마하피. 당시 14세였던 이 소녀를 집으로 데리고 온 그는 곧 소녀의 눈을 가린 채 옷을 벗긴 후 비디오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잠에서 깬 호몰카도 이에 동참했던 것은 물론이었다. 남편이 명령하는 대로 그녀가 소녀의 몸을 애무하는 동안 그는 계속해서 모든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고, 이윽고 소녀를 강간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역시 항문성교를 했지만 결국 소녀는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더니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녀의 사체가 발견된 것은 약 2주 후 한 호수에서였다. 어부에 의해 발견된 여러 개의 콘크리트 박스 안에는 각각 전기톱으로 처참하게 절단된 팔 다리가 담겨 있었다.
한편 범행을 저지른 후 한동안 침울해있던 남편을 위해 호몰카는 간간이 제인을 집으로 초대했다. 하지만 자신이 아직 처녀라고 굳게 믿고 있던 제인은 단지 ‘오럴 섹스’만을 허용했으며, 이에 베르나르도는 “이제 지겹다”면서 ‘새로운 장난감’에 대한 흥미를 점차 잃어가고 있었다.
베르나르도가 따분해할수록 그리고 자신에게 멀어질수록 호몰카는 더욱 열정적으로 ‘제물’을 찾아 헤맸다.
그러던 중 또 한 건의 소녀 유괴사건이 발생했다. 인기 많고 활달한 여고생이었던 크리스틴 프렌치(15)가 1992년 4월 교회의 한 주차장에서 돌연 사라진 것이다. 당시 목격자의 증언에 따르면 차 안에서 길을 묻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끌려갔다는 것이다.
이 역시 호몰카와 베르나르도 부부가 치밀한 계획 하에 저지른 범죄였다. 훗날 법정 증거물로 채택되었던 비디오 테이프의 녹화 내용을 보면 납치 후 소녀가 얼마나 치욕스런 성고문과 성희롱을 당했는지 고스란히 담겨있다. 여기에는 베르나르도가 소녀의 얼굴 위에 소변을 누거나 쪼그리고 앉아 대변을 보는 흉내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루 혹은 이틀 후에 무참하게 살해된 것으로 추정되는 프렌치의 알몸 시체는 배수구에서 발견되었으며, 앞서 토막살해된 마하피와는 달리 멀쩡했다. 뒤늦게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는 행여 경찰이 두 사건을 동일범의 소행으로 보지 않도록 하기 위한 이들의 치밀한 작전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 (왼쪽부터) 이들이 살해한 호몰카의 여동생 타미와 10대 소녀 마하피, 프렌치. | ||
더욱이 이들 부부의 집을 수색한 결과 다량의 증거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베르나르도가 연쇄 강간 내용을 조목조목 적어놓은 수첩이 발견되었는가 하면 포르노와 연쇄살인범에 관한 책과 비디오가 무더기로 발견되었다. 더욱 결정적이었던 것은 호몰카가 두 명의 여인과 동성애 행각을 벌이고 있는 비디오 테이프였다.
마침내 이들 부부는 지난 1993년 일련의 연쇄 강간 사건과 마하피와 프렌치 두 소녀에 대한 살해혐의로 기소되었으며, 각각 법정에 서서 법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호몰카는 교묘했다. “나 역시 피해자다. 늘 남편으로부터 성적인 고문과 폭력에 시달렸으며, 목숨과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강간과 살해에 동참했다”며 배심원과 언론의 동정심을 산 것. 호몰카는 마침내 베르나르도에 대한 불리한 증언을 하는 대가로 가벼운 처벌을 받을 수 있었으며, 종신형을 선고받은 베르나르도와 달리 12년형을 선고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역시 모두 그녀의 연극에 불과했다는 것이 드러난 것은 몇 달 후였다. 검사측이 증거물로 제시한 일련의 비디오 테이프가 공개되자 호몰카 역시 ‘적극적인 공범자’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테이프 속에서 그녀는 적극적으로 남편의 강간 장면을 카메라로 찍는가 하면 수면제로 적신 옷으로 소녀의 얼굴을 틀어막으며 미소를 짓거나 프렌치를 질식사시킨 후 드라이로 머리를 말리는 등 사악한 모습들을 보여 주었다.
당시 그녀가 제도상의 허점을 이용해 캐나다 법정을 비롯한 온 국민을 기만했다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현재 그녀는 모든 형을 마치고 자유의 몸이 된 상태다. 물론 완전한 자유는 아니다. 정기적으로 자신의 소재를 경찰에 알려야 하는 것은 물론, 정신과 치료를 받거나 혹은 16세 미만의 청소년과절대로 접촉해서는 안 되는 등 행동의 제약을 받고 있는 것.
하지만 ‘카를라 틸’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개명도 하고 머리도 검은색으로 염색하면서 새 삶을 꿈꾸고 있는 그녀가 과연 성공적인 ‘제2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대다수의 캐나다인들이 “그녀가 계속 살인을 저지를 것이다”고 굳게 믿고 있으며, 그녀를 사회적으로 고립시키기 위한 캠페인도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희대의 마녀’라고까지 불리며 온갖 비난을 받았던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에 당분간 캐나다의 눈과 귀가 쏠릴 것만은 틀림없는 듯하다.